CAFE

법문 자료

[스크랩] 나비 죽이기

작성자최영훈|작성시간26.06.12|조회수2 목록 댓글 0

나비 죽이기

 

 

모든 존재는 먼저 '나'를 

생각하면서 자아에 집착하고.

 

'나의 것' 을 생각하면서

물건에 애착을 찾는다

찬드라키르티 <입중론>

 

 

●●●

 

서양과학이 발달하기 

수 세기 전에  이미 붓다는

 

고통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하자면 보는 사람의

'눈' 에 달려 있다는 이해에 도달했다.

 

붓다가 사용한 용어들은 

 

오늘날의 생물학자와 뇌신경과

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용어들과는 다를 수 있지만,

 

그가 제시한 통찰은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초기 팔리어로 쓰인

'두 번째 고귀한 진리' 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두카..즉. 고통은 '탄하' 

 '갈망' 이라고 부르는 마음

근본 조건으로부터 일어난다.

 

이 초기 팔리어본을 번역한 

사람들은 이 근본 원인을 '트리쉬나'

곧 '갈증'이라고 정의했다.

 

붓다의 가르침이 티베트로

전해지면서 그것은 다시 '진파' 곧

'붙잡음' 으로 번역되었다.

 

어겠든 이 세 가지 용어들은

무상의 반대가 되는 영원과 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갈구를 의미한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것들은 무상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이런 갈망의 가장 근본적인 성향은

 

▪︎'나'와 '다른 사람',

▪︎'주체'와 '객체',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의

 

모든 상대적 구분들이 본래부터

독립되게 존재하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서는 이것을

종종 '무지'라고 표현한다.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무지는 매운 소스 병에 붙은 상표를

매운 소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람, 장소, 사물이

본래부터 독립적으로 견고하게

실재하는 이라 여기는

 

관념으로부터 두 가지

강한 충동이 똑같이 일어난다.

 

욕망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충돌은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정의내린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고

계속 지니고 있으려는 갈망이다.

 

혐오라고 알려진 두 번째 충동은

 

우리가 '나쁜 것'이라고 정의

내린것들을 피하고 제거하기 위해

반대쪽으로 달아나려는 욕구이다.

 

지. 욕망, 혐오를 합쳐서

불교 경전에서는

삼독 즉 '세 가지 독' 이라 부른다.

 

이것들은 너무도 깊게 뿌리박혀 있어서 

어떤 경험을 할 때 구름으로 

마음을  가려 독이 되는 습관들이다.

 

그것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합동해서  수없이 많은 또

다른 태도와 감정들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자만심, 

완벽주의. 열등감. 자기혐오,

 

내가 승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동료가 승진할 때 느끼는 질투심,

 

병들고 나이 든 부모를 볼 때 

우리를 압도하는 극도의

픔과 절망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몇몇 가르침들은

이러한 태도와 감정들을

'번뇌' 혹은 '무명'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에 한계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우리의

잠재 능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나' 와 '내가 아닌 것' 이라는

근본적인 구분을 지니게 되면

 

우리는 '나의 것'과

'나의 것이 아닌 것',

 

'내가 소유한 것'과

'내가 소유하지 않은 것',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식으로 

모든 경험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망가진 고물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사고로 차체에 손상을 입은

벤츠나 롤스로이스 같은 멋진

자동차가 옆을 지나간다고 해 보자.

 

당신은 자동차 주인에게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끼겠지만 

 

그차에 대해서는 분명 아무 애착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 

 

당신은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가 되어 중고차 시장에 들린다.

 

그곳에 아주 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벤츠와 롤스로이스가 있다.

 

바로 몇달 전 당신이 보았던

사고로 손상된 그 자동차이다!

 

설령 당신이 그 사실을 안다 해도 

상관없다. 이제 그 차는 당신 것이다.

 

하지만 차를 집으로 몰고 가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 때문에

앞 유리창에 금이 가 버렸다.

 

이런 비극이 있나!

'나의 차' 가 파손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수리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은 몇 달 전 

스쳐 지나가면서 본 

사고로 파손된 바로 그 차이며.

 

옆을 지나갈 때는 그것에 대해 

별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제 그것은 당신의 자동차이며.

만일 앞 유리창에 금이 갔다면

 

당신은 분노와 절망감, 그리고

아마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중단하면 안 될까?

 

독과 그 독의 결과물들을

냥 놓아 버리면 안 될까?

 

만일 그것이 쉽다면 이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우리

모두는 붓다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과

여러 스승들의 주석에 따르면

 

세 가지 독과 그것들로부터 생겨난

모든 심리적 감정적 습관들은 

사실 '고통의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은 그것들에 대한 집착

에서 일어난다.것이 티베트어

'진파' 의 본래 의미에 가장 가깝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단어는  종종 

'붙잡음' 으로 풀이되지만 '고착' 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고 나는 들었다.

 

고착이란 병적인 집착을 말한다.

 

진파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간과 장소 안에

고착되어 있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최근에 나에게서 명상을

배운 한 사람이 이렇게 소리쳤다.

 

"그것은 나비를 죽이는 것과 같아요!"

 

그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묻자

 

그녀는 어떤 사람들은 나비를 

아서 죽인 다음 나비의 몸체를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장식용 

케이스안에 핀으로 고정시켜 놓는

취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채집한 것을 바라보는 

짜릿한  쾌감,그리고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기쁨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름답고 연약한 생명체를

그런 식으로 죽이는 거예요.

 

나비들의 운명은 하늘을 나는 거예요.

만일 날 수 없다면 더 이상 

나비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녀의 말이 옳다.

 

우리가 우리의 견해에 

고착화될 때 우리는 날 수 있는

능력을 실해 버린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나무아미타불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