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연락 - 22. 5. 5
낮에 국립극단에서 하는 상반기 청소년극 오픈 리허설을 보고 왔습니다. 러허설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배우와 작가, 협력학교에 참여하는 학생이 같이 하는 워크숍을 지켜보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역시 전문가들이 하는 것은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창작극에 대한 열의를 더 불태울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오가는 시간을 더해서 5시간쯤 바깥에 나갔다 왔는데 어찌나 피곤하던지 저녁을 먹고 나서 청소를 좀 하려고 했는데 기운이 없습니다. 좀 뒹굴뒹굴하다가 자리에 누워서 살풋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누군가 싶어 발신자를 봤더니 2월에 졸업한 이준이입니다. 9시 30분이 갓 지난 때에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 조이준~ 반갑네. 무슨 일이야?”라고 약간 들뜬 목소리로 물었더니 묵직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병찬이하고 연락했는데 노쌤이 아프다는 말을 들어서요.” 아니! 전화 온 것만 해도 이렇게 반가운데 예전 모둠 선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어떤 일인지 살펴봐 주다니!!! 이준이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곧바로 전해져서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15분쯤 막 주고받았는데 아직 씻지 못했다고 해서 아쉽지만 통화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준이 목소리를 들어서 좋았고, 졸업하고서도 학교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고,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선생 노릇을 하는 기쁨이 차올라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작년 일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좋았던 일,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아이들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해서 다투거나 서로 마음이 상했던 일이 여전히 미안하기만 합니다. 늘 잘했던 것보다 못한 것, 잘해주지 못한 게 먼저 떠오르고 마음 깊이 남는 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졸업하고 난 뒤로 작년 한 해를 다들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작년 여섯 청소년들은 저에게 조금 남다른 제자들이었습니다.(학교에서 제자라는 표현을 쓰는 게 처음이네요.) 2년 하고도 한 달을 한 모둠에서 지내서 애틋한 마음이 크고, 제가 그렸던 청소년 교육과정을 온전히 다 펼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지금 작년처럼 다시 해보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요.
그렇게 뜻깊게 지낸 청소년들과 졸업하고 나서 연락을 자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서로 필요에 의해서 문자를 주고받을 때가 가끔 있지만요. 여섯 청소년은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해 가느라 바쁠 것이고, 저도 또 다른 6학년 두 아이와 학교 일에 빠져 살고 있거든요. 물론 제 성격 때문에 연락을 잘 하지 못한 것이 있기도 합니다. 드문드문 학교에 있는 동생들을 통해서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잘 지내는 것 같아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졸업한 지 이제 두 달 반 정도 되었으니 아직은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중일 테고 이준이 말로도 재밌으면서도 힘들다고 하니 어떻게 지낼지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게 있기도 합니다.
이준이와 한 통화 내용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선택 수업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글쓰기 수업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면서도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초등과는 다르게 중등 과정으로 가면서 뭔가 하고자 하는 뜻이 뚜렷해진 것도 같고, 자기 필요와 뜻에 따라 하나씩 배움을 채워가는 것 같아 잘 자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삶을 잘 만들어 가고 있을 것 같아 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오늘 뜻하지 않게 반가운 연락을 받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을 얻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영향을 받고, 마음이 힘들면 몸도 덩달아 아파지는 법인데 요즘 제가 지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실제 약을 먹고 몸을 회복하는 중이니 몸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늘 아이들 속에서 즐겁게, 기운차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 해도 더 처지지 말고 큰 힘을 얻고 좋은 기운을 받았으니 내일은 또 새로운 마음과 기운으로 재미나게 아이들과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