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씻으며 / 이향아
찻잔 밑바닥 꺾인 모서리에
실금 하나 얼룩졌다
봄날은 덩달아 끓어 넘치고
가을은 어영부영 지나갔어도
언제였을까
블르마움틴, 헤즐럿, 맥심, 초이스
실금에 주저앉은 수상한 자욱
까맣게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울지마, 울지마,
잊지 않아, 잊지 않아.
맹세하던 소리들은 허랑하여라
그 사람 안창 저 깊은 밑바닥
은밀히게 꺾인 찻잔의 모서리에
나 아직도 남아 있을라
실금의 땟국처럼 가라앉아서
지금 온몸이 죽을 듯이 쓰라리다
설거지통 비눗물이 스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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