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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도의 애칭 2 (사 62:1-5)

작성자장덕수|작성시간26.06.12|조회수20 목록 댓글 0

성도의 애칭 2 (사 62:1-5)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오늘도 “성도의 애칭”입니다. 성경에 애칭으로 불려진 사람이 많습니다. 시몬을 반석 같은 사람이 되라고 베드로라 부르셨고, 요셉에게는 위로의 은사가 충만하자 바나바라고 불렀고, 야곱에게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스라엘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독특한 애칭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애칭은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급하여 큰 일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을 조절하라고 붙여주신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럼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1절)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애칭은 무엇일까요?

 

3. 그때의 애칭은 쁄라입니다.

 

4절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쁄라란 뜻은 ‘나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헵시바가 사람을 향한 애정이라면, 쁄라는 땅을 향한 애정입니다. 은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은혜 받지 않았다면 그 반대입니다. 본문의 평행법 문장임을 참고할 때 은혜 이전에는 황무지였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사람이 거하지 않는 황무지가 된 이스라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앗수르의 잔혹한 학살과 바벨론의 초토화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백성이 칼에 죽거나 비참하게 사슬에 매여 이방 땅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거리는 통곡 소리조차 끊긴 채 시신들만 뒹굴었고, 밭은 잡초만 무성해져 짐승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흑암의 황무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쁄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진실로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환경까지도 바꿔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자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그 땅을 고쳐주십니다. 대하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땅"은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나 공동체의 회복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은데, 삶의 터전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공동체의 회복은 신앙생활하는 교회의 복을 가리킵니다. 전2:26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과 물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좋은 교회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디가 세계적인 부흥사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던 두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두 여성은 새라 쿡과 하우허스트 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디가 인도하는 예배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날마다 무디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1871년 11월 어느 날, 무디가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임하는 강력한 성령의 불을 체험하게 됩니다. 무디는 훗날 이때의 경험을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이 너무도 강력하게 밀려와 마치 죽을 것만 같아 그 손길을 멈추어 달라고 부르짖을 정도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무디를 위한 두 여인의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내가 변하고 모두가 변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 쁄라라고 불러 주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때의 애칭은 신부입니다.

 

5절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청춘 남녀가 사랑할 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연애는 스스로 떨어지면 모를까 강제로 떼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강제로 떼어냈다가는 둘이서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이처럼 하나님의 기쁨을 평행법 문장으로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은혜 가운데 살 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기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평안과 사랑을 모르고 산다면 왜 그런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빛같이, 이루신 구원이 아직 횃불같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주여 주여지 주를 주님답게 높이고 그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육에 속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마음 드리지 못해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깊이 누리지 못해서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뮤지컬 돈키호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한 창녀가 어떻게 귀부인으로 변화되는지 그 과정을 다룹니다. 라만챠의 사나이는 어느 창녀를 “나의 아름다운 둘친네아(귀부인)”이라고 부릅니다. 창녀는 “날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난 더러운 창녀예요.” 그러나 사나이는 끝까지 그녀를 신뢰하고 믿어주며 둘친네아(정결한 귀부인)라고 강조합니다.

 

뮤지컬의 종막에 사나이는 실연으로 병들어 누웠습니다. 바로 이때 아름다운 스페인 아가씨가 그의 병상으로 다가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여자는 그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 이름은 둘친네아예요.” 전에 창녀였던 여자는 마침내 자기를 사랑하는 라만챠의 믿음대로 자기 자화상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우리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고, 이제 할 일은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순종만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하십니다.

 

습3:16-17에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기뻐하시고 안아주시고 복주시는 사랑은 우리가 회개하여 그 은혜 가운데 살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었다면, 이제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의와 구원이 나타나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이 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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