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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능력을 회복하자 1 (막 3:1-5)

작성자장덕수|작성시간26.06.13|조회수28 목록 댓글 0

(초고, 저녁예배용, 한 본문으로 1편, 2편이 작성됩니다.)

능력을 회복하자 1 (막 3:1-5)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이 시간에 “능력을 회복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때 우리 함께 능력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능력을 잃으면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과 같이 되고 맙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유혹에 못 이겨 능력의 비밀을 알려줘 머리카락을 삭도 당하고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 결과 눈도 빼임 당하고 매일 경기장에 불려가 사람들 앞에 놀이꺼리가 되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능력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예수 안에서 능력 받았음을 믿는 것입니다.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눅6:6에는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했습니다. 왜 이렇게 자세히 기록했을까? 거기에 담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오른손은 권능의 상징입니다.

 

언제부터 오른손이 말랐을까요? “손 마른”을 원문으로 보면 (헬, 엑세람메넨)이 단어는 본래 물기가 바짝 말라붙어 '가뭄이 든 땅'처럼 굳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시제로 보면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그의 손 마른 것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임을 보여줍니다. 본래 손이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믿을 때 이미 능력을 받은 사람입니다. 능력의 예수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빌4:13에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고, 눅10:19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지체요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은 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신비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탄이 만지지도 못할 만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능력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찬양할 때 나 구원 받겠네가 아니라 '나 구원 얻었네.' 나 성령 받겠네가 아니라 '나 성령 받았네' 해야 합니다.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성령 받는 이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능력은 바로 이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2. 신앙의 병을 고침받아야 합니다.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이 한편 손 마른 사람에 대해서 기독교 초기의 여러 문헌에는 그가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이 석공은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오른손이 힘이 빠지고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팔에 얼마나 많은 충격이 있었을까요? 어떤 이유로 질병이 온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능력을 가진 자로 거듭났어도 신앙에 병이 들면 능력을 잃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함도 병입니다. 불신도 의심도 게으름과 나태도 병입니다. 염려와 근심도 미움과 증오도 병입니다. 교만도 자만도 소리가 약해지고 열심을 잃은 것도 병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을 진단하지 않으면, 마음의 정원은 금세 세상 염려와 탐욕이라는 잡초로 무성해질 것이다."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랍니다. 다 영적 기운을 막는 것들입니다. 삼손의 능력이 사라졌다면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면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계2: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여기 “생각하고”(헬, 므네모뉴에)는 머리로 한 번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억하고 묵상하여 뼛속 깊이 생각하라'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내 신앙의 병이 어디서부터 깊어졌는지 집요하게 추적하여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도가 약합니까? 보혈을 모릅니까? 죄 가운데 있습니까? 기쁨을 억제하고 마음이 복음화되지 못했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단해보시기 바랍니다.

 

3. 율법의 송사를 이겨야 합니다.

 

2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여기 “주시한다”는 (헬, 파레테룬) '함정을 파놓고 걸려들기만을 사냥꾼처럼 악의적으로 째려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흠을 찾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면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고소하려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침은 진정한 안식을 주는 것인데 율법의 중심을 모르고 예수님을 고소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서 능력을 빼앗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양심이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양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했습니다.

 

양심관리 잘못해 너무 예민하면 죄 아닌 것도 죄로 인식하여 정죄에 빠지고, 양심이 너무 둔해도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해 또 죄에 빠지게 됩니다. 덧붙여 복음적인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적 양심이란 정죄 받아 마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속죄 공로로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사탄의 끝없는 참소를 받아들이는 한 우리는 어떤 능력도 잃고 맙니다. 애굽의 장자 재앙처럼 우리 심령을 죽이려는 죽음의 재앙에서 피할 곳은 오직 예수 보혈뿐입니다. '그래도 나는 보혈을 믿는다.'라는 믿음으로 나가세요. 무엇보다 이 보혈의 기초가 잘 놓여져야 합니다.

 

계12:10-11에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했고, 롬8:1-2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겨울철 아무리 좋은 난방기구라도 콘센트에서 플러그가 빠져 있으면 따뜻해질 수 없습니다. 기구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전원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해지고 신앙이 병들고 정죄에 사로잡히면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어디서부터 약해졌는지 돌아보고, 믿음에 서고 회개하여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능력으로 충만한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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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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