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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appy하게|작성시간11.05.25|조회수15 목록 댓글 3

삼국사기》에 의하면 팔관회는 551년(진흥왕 12)에 처음 행해진 이래 4 차례의 기록이 보인다. 특히 이 때 행해진 팔관회는 모두 호국적인 성격이 짙었다. 이런 팔관회가 국가적 정기 행사로 자리잡게 된 것은 고려조에 들어서였다. 고려 태조는 〈훈요십조〉에서 '천령() 및 오악()·명산()·대천()·용신()을 섬기는 대회'라고 그 성격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팔관회는 불가에서 말하는 살생·도둑질·간음·헛된 말·음주를 금하는 오대계 ()에 사치하지말고, 높은 곳에 앉지 않고, 오후에는 금식해야 한다는 세가지를 덧붙인 8가지의 계율을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에 한하여 엄격히 지키게하는 불교의식의 하나였다. 


이같은 팔관회가 고려에서는 이미 태조 때부터 토속신에 대한 제례를 행하는 날로 그 성격이 바뀌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이런 재회()를 통해 호국의 뜻을 새기고 복을 비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팔관회는 연등회와 매우 비슷한 대회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팔관회 때는 지방의 장관들이 글을 올려 하례하고, 송() 상인이나 여진() 및 탐라()의 사절이 축하의 선물을 바치고 무역을 크게 행하는 국제적 행사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팔관회는 개경에서는 11월 15일 즉 중동()에, 그리고 서경에서는 10월 15일에 베풀어졌다. 《고려사》에 의하면 팔관회 예식에는 소회일()과 대회일()이 있는데, 대회 전날인 소회에는 왕이 법왕사()에 가는 것이 통례였으며 궁중 등에서는 군신의 헌수(), 지방관의 선물 봉정 및 가무백희()가 행해졌다고 한다. 특히 팔관회 의식이 이뤄지는 곳은 사방에 향등을 달고 2개의 채붕()을 세워 장엄하게 장식하고 불교와 민속적 요소가 합치되어 있었다. 한편 서경의 팔관회는 조상제의 성격을 띤 예조제()로서 보통 재상이 파견되었다. 이 의식은 최승로의 건의에 의해 987년(성종 6)에 폐지되었다가 1010년(현종 원년)에 부활될 때까지를 제외하고는 고려 전시기에 거의 매년 행해지던 중요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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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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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appy하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5 헷갈려하는 단어들 몇개만 클릭하여 바로나올수 있게하였습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happy하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5 맙소사!! 글씨 크기가 작구나~
  • 작성자happy하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5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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