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고종 29)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농민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양민의 재산을 갈취하는 등 탐학(貪虐)을 자행하고 만석보 밑에 다시 보를 축조, 불법으로 700섬의 수세(水稅)를 징수하였다. 이에 농민 대표와 함께 그 시정(是正)을 진정하였으나 거부당하자 1894년 1월 1000여 명의 농민과 동학교도를 이끌고 관아(官衙)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고 강탈당하였던 세곡을 농민에게 배분하고 부패한 관원들을 감금하였다.
근대적 무기와 화력을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의 반격에 패배를 거듭하다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대패하였다.
이로써 패색이 짙어지자 농민군을 해산하고 순창(淳昌)에 은신하여 동지 손화중(·김덕명(·최경선(등과 재거를 모의하던 중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12월 2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1895년 교수형을 당하였다.
[출처] 전봉준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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