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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139. 11.신심과 생활 -(30)자비(慈悲)와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작성자한국불교일련정종연합회 어강의 음성|작성시간23.05.17|조회수10 목록 댓글 0
강의139. 11.신심과 생활 -(30)자비(慈悲)와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30)자비(慈悲)와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자비(慈悲)란 현실적인 생명의 역용, 사랑은 하나의 규범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자비란 단적으로 말하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또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대자(大慈)는 일체중생에게 낙(樂)을 부여하고 대비(大悲)는 일체중생의 고(苦)를 없앤다”라고 있듯이 남의 고를 없애고 낙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3종의 자비가 설해져 있습니다. 첫번째 중생연((衆生緣)-소비(小悲))은 중생을 연으로 해서 즉 불행한 사람에 접함으로써 생기는 범부의 자비이고, 두번째 법연((法緣)-중비(中悲))은 제법(諸法)은 공(空)이며 자타(自他)의 차별이 없다는 법(法)을 깨달음으로써 일어나는 성문, 연각, 보살의 자비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무연((無緣)-대비(大悲))이란 아무 것도 연으로 하지 않고 무작(無作)으로 끊임없이 생기는 부처의 대자비를 말합니다.

 

이런 구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비라 해도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의 경계에 의해 그 자체의 역용(力用)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부의 자비로는 “오직 연민(憐愍)할 뿐이며 벗어날 수 있게 하지 못하여”(대지도론)라고 말하듯이 남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도 그 고뇌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역시 부처의 대자비여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불법이 설하는 자비란 중생에 대해 발고여락(拔苦與樂)의 작용을 비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생명의 역용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리스트교가 설하는 사랑(愛)은 신(神)과의 약속이므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하나의 규범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밀어라”라고 설해져 있으나 이런 장면에 ‘노력해야 할 것’으로서 사랑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해야 한다라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설해져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눈을 감고 사랑을 강조만 하면 결국은 관념론으로 되고 현실을 변혁시킬 수 없습니다.

 

사랑을 설하는 크리스트교의 세계에서 전쟁이 끊임없었던 사실을 보더라도 그 모순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법의 자비는 단순한 규범이 아니라 진실한 불법을 실천했을 때 자신의 생명에 생기는 역용이며, 이 근본으로 되는 법을 설해 밝히는 것에 불교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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