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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피와 눈물이 배인 극강의 무술

작성자鈴木|작성시간11.01.28|조회수385 목록 댓글 2

 

최근 오키나와의 영유권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다시 다투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오키나와라면 무술역사에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극강의 무술로 알려진 가라데가 바로 오키나와의 피와 눈물과 영광이 배인 권법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규슈와 대만 사이 북태평양 남서제도(南西諸島)에 위치한 오키나와의 옛 명칭은 류큐(琉球) 왕국으로 조선에서는 유구국이라 불렸습니다.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화산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에서 오키나와가 가장 큰 섬입니다.


이 나라는 13세기와 14세기 중국과 한반도, 멀리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대선단을 운용해 활발한 해상 교역을 펼쳐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홍길동 설화에 등장하는 이상 국가가 바로 류큐 왕국을 지칭한다는 얘기도 있지요. 일본과 민족도 다르고, 고유 언어와 문화를 지녔던 류큐 왕국은 1609년 일본 사쓰마 번의 침공 이후 조공을 바치는 속국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류큐 지도. 출처=구글>

 

1609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 권력을 장악하여 쇼군(將軍)이 된 해입니다. 이때 히데요시의 서군에 가담했던 사쓰마는 도쿠가와 가(家)의 추격을 피해 번의 일족이 병사 3000과 함께 류큐로 피신하면서 자연스레 이 섬을 정복해 버립니다.


사쓰마의 정복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류큐 인들의 무장을 금지한 것입니다. 섬 주민들은 무기를 보관할 수도, 휴대하고 다닐 수도 없었으며, 무예 연마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키나와에 대한 사쓰마 사무라이들의 수탈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무기를 가지거나 무술 수련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형이었으며, 무례하게 구는 자는 바로 현장에서 목을 베었습니다.

 

 

<일격필살. 가라테의 주먹이다>

 

 

무기가 없는 평화의 나라.’ 훗날 류큐를 방문한 프랑스 해군 장교의 보고를 받은 나폴레옹은 깜짝 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무기 한 자루도 없이 평화를 유지하는 왕국이 동양에 있다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일이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그만큼 류큐 왕국의 금무 정책은 유명합니다. 하지만 류큐 인들이 마냥 정복자에 순종하는 그런 약한 민족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창칼을 지닐 수도, 병장 무예를 익힐 수도 없었지만 류큐의 무인들에겐 창보다 빠르고 칼보다 날카로운 손과 발이 있었습니다. 류큐의 무인들은 언젠가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또한 봉기의 그날을 기다리며 비밀스레 자신의 권(拳)과 장(掌)을 단련하였습니다. 이들에겐 손가락이 창이었으며, 주먹이 철퇴이자 칼날이었습니다. 류큐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의 소림남권이 전해져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류쿠는 일본 본토보다는 중국 본토와 대만에 더 가깝기 때문에 중국의 무술이 전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이들은 권법을 연마하면서 늘 “상대의 검 끝이 자신의 목젖에 닿아 있다”고 느꼈으며, 권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가족에게까지 숨길 정도로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였습니다. 3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이렇게 갈고 다듬은 류큐의 권법이 바로 오키나와테입니다. 여기서 테는 손(手)의 일본발음이고, 오키나와테가 곧 가라테입니다.


1879년 류큐 왕조는 해체되고, 1895년엔 류큐는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47번째 현(縣)이 됩니다. 류큐 사무라이들의 금지된 권법이었던 가라데는 1901년 마침내 족쇄가 풀려 일본 정부로부터 수련의 합법화를 허락받습니다.

 

 

 

 

< 武는 몸의 언어이자 예술입니다 >

 

 

‘무저항의 저항’이라고 불리는 류큐 인들의 독특한 가치관은 힘없는 약소국의 체념으로도 볼 수 있지만, 달리 보면 놀라운 인내력을 요구하는 생존 방식이기도 합니다. 사쓰마의 300년에 걸친 무자비한 지배에도 류큐 인들은 ‘무저항의 저항’으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의 철학은 필연적으로 가라데에도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가라데에 선수(先手) 없다.”


선수란 상대방을 먼저 공격한다는 의미입니다. 선수가 없다는 것은 내가 남을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가라데를 익혀 약한 자를 괴롭히거나 자기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경지를 지향한다는 깊은 뜻도 담겨 있습니다.


지배자의 창칼에 맞서 단련한 가라데가 오히려 평화의 주먹이라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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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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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라 | 작성시간 11.01.29 역사가 오랜 무술이다 보니 가라데도 유파가 여럿 있어서 지금의 가라데는 저렇게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쇼토칸(松濤館) 가라데라는 걸 배웠는데 이쪽은 아주 보수적이라 정말로 심신을 단련하는 게 목적이고 실전 효율은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 반대로 한국에 많이 퍼진 극진 가라데는 굉장히 공격적입니다.

    여기 올려주시는 무술 자료들 다 재미있어요 ^^ 잘 읽고 있습니다.
  • 작성자鈴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1.29 최근 많이 바쁘신 보라씨^^ 심사 수고 많으셨습니다. 역시 무술에 흥미를 가지고 계셨어요.^^ 좋은 자료를 찾아서 오렬드리겠습니다.^^ 월요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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