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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자료실(소설)

파울로 코엘료 - 연금술사

작성자피아노 05 김은미|작성시간07.11.03|조회수121 목록 댓글 0

1부> 양치기 산티아고가 양떼를 몰고 버려진 낡은 교회에서 하룻밤을 지새던 중, 한 꼬마가 자신을 이집트 피라미드로 데려가 그곳에 오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거라늘 말을 하는 꿈을 다시 꾸게된다. 같은 꿈을 또 꾼 것이 이상해 꿈 해몽을 해주는 집시 노파에게 찾아가 해몽을 부탁하자 노파는 그 꿈은 신의 계시이며 정말 피라미드에서 보물을 찾을 것이니 만일 보물을 찾게되면 찾은 보물의 1/10을 복채로 달라고 한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원래 신학교에 다니다 세상 구경을 하려고 양치기가 된 산티아고는 양을 치며 세상을 돌아다니면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산티아고가 책을 읽고 있는데 자칭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라는 노인이 나타나 보물과 자아의 신화라는 알 수 없는 얘기를 하며 산티아고에게 양 1/10을 주면 보물 찾는 법을 알려주겠노라고 한다. 산티아고는 처음엔 그를 교활한 집시 노파와 짜고 나타난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보여준 신비스러운 힘과 그가 들려준 자아의 신화를 이룰 기회를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팝콘장사 얘기, 보석을 캐려다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보석을 찾을 기회를 잃은 사람 얘기들을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

다음 날 산티아고는 자신의 양 1/10을 노인에게 넘겨주고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표지를 잘 쫓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곤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서 헤어지기 싫었던 양들은 모두 팔아 이집트로 갈 경비를 마련하고, 곧 만나 청혼을 하고 싶었던 여인을 만나는 것도 포기한 채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난다.

아프리카로 넘어간 날, 스페인어 밖에 모르던 그는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아랍어를 쓴다는 사실에 당황을 한다. 그러던 차에 스페인어를 쓰는 이가 다가와 피라미드로 데려다 주겠다며 그의 돈을 받아들고는 도망을 친다. 외지에서 한 순간에 빈털터리가 된 산티아고는 절망과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차고 만다.

산티아고는 한 크리스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피라미드로 갈 여비를 마련하려 한다. 하지만 이집트 피라미드로 갈 여비는 그가 일 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큰 돈이었고, 그래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만 벌어서 돌아가려 한다.



2부> 산티아고는 부지런히 일했고, 상점 밖에 진열대를 설치하거나 크리스탈 잔에 차를 파는 등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가게를 키우고 일 년여 만에 잃어버린 돈의 두 배를 번다. 그가 고향에 돌아가 양들을 사서 다시 양을 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해 상점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상점 주인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집트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마크툽(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

산티아고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양치기나 크리스탈 가게 점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지금은 꿈을 쫓아 이집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대상 무리를 따라 이집트로 가게된다. 가는 길에 위대한 연금술사를 찾아 길을 떠나는 영국인과, 나일강 범람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모두 잃고 살기위해 낙타몰이꾼이 된 사람도 만나게 된다.

대상 행렬이 나아갈 수록 부족간의 전쟁 소식이 많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전쟁에 휘말리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런 가운데 대상 행렬은 마침내 중립지역인 오아시스에 도착한다.

오아시스에 사는 위대한 연금술사는 이번에 도착한 대상 무리 가운데 자신이 비밀 몇 가지를 알려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아시스에 도착한 영국인은 산티아고의 통역으로 연금술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만나지만 연금술사로부터 금을 만들어 보라는 소리만을 듣는다. 영국인은 그 당연한 소리를 듣기위해 그 먼 길을 여행한 것이다. 한편 산티아고는 영국인 대신 오아시스 사람들에게 연금술사의 소재를 묻는 과정에서 파티마라는 여인을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어느 날 산티아고는 매 한 마리가 먹이를 잡는 모습에서 군인들이 오아시스를 습격하는 표지를 보고 이 사실을 오아시스의 부족장들에게 말한다. 부족장들은 중립지대인 오아시스에 무장 군인들이 쳐들어 온다는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표지를 받아들여 남자들을 무장시키기로 한다. 단, 표지대로 군인들이 쳐들어온다면 죽은 적군 10명당 1닢의 금화를 산티아고에게 주겠지만, 무장 군인들이 쳐들어 오지 않으면 산티아고를 죽이겠다는 조건을 단다.

그날 밤 백마를 탄 기사가 산티아고를 찾아와 매의 움직임으로부터 미래를 읽은 경위를 대라며 칼을 들이댄다.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 여행하는 도중, 신이 보여준 표지를 읽었을 뿐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한다. 기사는 그가 마음에 든 듯 내일 전투가 끝난 후에도 살아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라며 떠난다. 그 백마 탄 기사는 바로 연금술사였다.

다음 날 실제로 군인들이 오아시스에 쳐들어왔고 오아시스 사람들은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덕분에 무장 군인들을 포위해 모두 죽인다. 산티아고는 금화 50닢을 받고, 마을의 고문이 되어 달라는 제안도 받는다.

그날 밤 산티아고가 연금술사를 찾아가자 연금술사는 그에게 계속 꿈을 쫓아가라고 충고한다. 만일 현재의 부와 명예, 파티마와 결혼하는 행복을 위해 꿈을 포기한다면 처음 1~2년은 좋겠지만 그 이후에는 자아의 신화를 찾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될 것이고, 파티마도 자신이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찾지 못하도록 붙잡은 것에 대해 자책을 할 것이며, 산티아고는 더 이상 표지를 해석할 능력이 없어져 고문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산티아고는 결국 자아의 신화를 쫓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파티마아게 꼭 돌아오겠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 그는 연금술사를 따라 길을 떠난다. 여정 중에도 산티아고의 마음은 계속 꿈을 쫓을 것인지, 그냥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갈팡질팡 하게 되지만, 결국 고통받지 싫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비로소 평안해지게 된다.

어느 날 여행 도중 군대를 만나 첩자로 오인을 받은 그들은 곧 죽을 운명에 처한다. 이 때 연금술사가 군대 사령관에게 산티아고가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주며 사흘의 말미를 주면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산티아고는 바람으로 변하는 것을 알지 못했고, 연금술사 때문에 사흘 후면 죽게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연금술사 덕에 사흘이나 수명을 연장한 것이고, 연금술사의 말을 들으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기 내부에 숨겨진 힘을 발견한 산티아고는 사흘 째 되는 날 사막, 바람, 해에게 바람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막, 바람, 해 들도 사람을 바람으로 만드는 방법은 몰랐으며, 다만 산티아고를 돕기 위해 시뭄이라는 사막의 폭풍을 불게 해준다. 마침내 산티아고는 모든 것을 기록하신 손에게 아무런 간구도 없는 기도를 하게 되고 만물의 정기 속으로 들어가 만물의 정기가 신의 정기의 일부이며, 신의 정기가 기 자신의 영혼임을 깨닫는다.

시뭄이 멈추고 산티아고는 그가 서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조용히 서 있었고, 연금술사는 진정한 제자를 만난 기쁨에 미소를 짓는다. 사령관은 즉시 그들을 풀어주었고 그들은 피라미드를 찾아 여행을 계속한다.

어느 수도승의 집에 도착한 연금술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며 납으로 금을 만들어 각자의 몫을 나눠준다. 연금술사는 납으로 금을 만들 수 있으면서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온 것이었다. 산티아고는 혼자 마지막 길을 떠나 결국 피라미드를 발견하고는 감사의 눈물을 터뜨린다. 그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를 지나가는 풍뎅이를 보고 표지라고 생각한 산티아고는 그 자리의 모래를 파기 시작한다. 아무리 파내려가도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 한 무장 군인들이 나타나 그가 연금술사로부터 받은 금 조각을 빼앗고, 더 많은 보물을 빼앗기 위해 그를 죽도록 때린다. 산티아고는 그들에게 맞아 죽는 것 보다 보물을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이 곳에 보물이 있다는 꿈을 꾸고 이곳을 파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하지만 이 말에 군인들은 오히려 그를 비웃으며 살려준다.

무장 군인들이 떠나기 전 군인들의 우두머리가 2년 전 이 곳에서 스페인의 쓰러져가는 교회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보물을 찾는 꿈을 여러 번 꾼 적이 있지만, 자신은 그걸 찾기 위해 스페인으로 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떠난다. 산티아고는 그가 말한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보물을 찾은 기쁨에 미소를 짓는다.

 

 

줄거리요약

신부가 되기 위해 라틴어,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한 산티아고는 어느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어 길을 떠난다. 집시여인, 늙은 왕, 도둑, 화학자, 낙타몰이꾼, 아름다운 연인 파티마, 절대적인 사막의 침묵과 죽음의 위협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를 만나 자신의 보물을 찾게 된다.

이 소설이 주는 교훈
인간은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게 되면서, 아니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여행의 여정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생각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 맹목적으로 정신과 육체를 맡겨두고 유영하는 인간은 한갓 우주의 움직이는 점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의 고통을, 생각과 의지와 세계의 갈등을 감당하고 이겨내는 인간은 비로소 우주의 한 생명으로 서 있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존재감을 온 가슴으로 충만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인간 개개인의, 그리고 우주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사물의 존재는 서로 맞물려 조화와 합일을 이루고 있는 동시에 각기 다른 고유의 존재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그들의 존재 의미에 충실한다. 그것이 존재의 성실성이 아닐까.. 존재감을 지닌 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일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타인이 지닌 존재의 이유를 바꾸려고 하거나 그것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다만 조화로 발전/변화해 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이 사유를 가지고 태어난 이유이다. 인간 전체 존재의 이유..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우주의 기를 받아들여 순환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들과의 합일을 통해 변화를 생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전언은 바로 이러한 것인 듯 하다. 생각을 안고, 그 생각 안에서 고통하고 환희를 느끼는 자라면 언제나 문득문득 생각하고 있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통해 그들은 평온한 충만함과 경이로움마저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이 책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작은 성 마을의 성직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옛 스페인 금화 세 냥으로 양치기가 된 어느 한 남자의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우리의 영혼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일상에 함몰하여 때때로 마음의 소리를 놓치고, 삶이 우리에게 특별히 부여하는 '표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퇴화시킨다.

그리고 '표지'를 식별할 수 있고, 그것을 따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라 하더라도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는 과정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의심할 수 있으되, 포기해선 안되고.. '초심자의 행운'을 누리되 방심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의 신화'의 표지를 식별하고 받아들인 자에게 삶은 '초심자의 행운'을 부여하나, 다시 '가혹한 시험'을 행한다. 과연 이 자가 '자아의 신화'를 이룩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여기서 우리는 용기와 강인한 의지와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선천적으로 고통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포기'와 '외면'을 통해 자신의 생의 의미 찾기를 포기할 수 있겠지만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진정한 울림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주는 전언이고 영혼의 목소리이다. 그러한 자를 삶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양치기는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떠난 여행 중에 우주의 만물과 화합하고 교감하는 방법과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발견과 동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공간의 거리에 사그러들지 않고, 시간의 거리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것에는 신뢰와 충만한 행복이 진중하게 자리잡아 있다. 이러한 것 또한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 한다. 끝일 것만 같은 고통에 다다라도 우리는 평정심을 지닐 수 있어야 하며, 곧 자신에게 새벽의 광명이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내 삶과의 교감이다. 때때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겠지만, 그것들에는 모두 삶이 부여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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