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뜻
이 세상에 힘드는 일이 많지만 그 중에도 전쟁하는 일만큼 힘든 일이 없을 겁니다. 다른 모든 일은 목숨까지는 걸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목숨을 걸고 행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마귀를 대적하여 싸워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에도 이기는 자에게만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고 천국의 상급이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만 마귀와 싸워 이겼으면 되었지 왜 우리 인간에게까지 그 흉측한 마귀와 싸우는 일을 하게 하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바로 공동체 속에 거하면서 홀로 일 하지 않고 남이 벌어다 주는 것으로만 먹고 사는 마귀들의 생각입니다. 모든 공동체 속에서 협조를 않고 따로 조직을 형성하는 이 생각, 이것이 모든 암적 질병의 근원입니다. 온 국민이 다 열심히 일하는 데 소수의 무리들은 일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무리들, 이들이 그 국가의 암적 존재입니다.
한 몸, 곧 하나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하나되길 원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기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싸우는 전쟁에는 하나되어 싸우지 않는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손이 아프면 온 몸이 고통을 느낍니다. 그런데 손이 싸우는 데 발이 함께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은, 한 몸이 아니던지 아니면 발이 죽었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간 때문에 마귀와 싸울 뿐, 인간이 아니라면 마귀와 싸울 필요도 없거니와 또 싸울 상대가 못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냥 동산에 거하게 놔 두었습니다. 싸울만한 일도 없었거니와 싸워 볼 상대조차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록 무지하고 연약하지만 피조물 중에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마귀의 본성 곧 탐심이 그 때부터 작동하기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 인간을 가운데 두고 마귀는 하나님께 이념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피조물은 피조물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는 마귀의 주의 주장과 “피조물은 창조주를 섬기고 살아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때부터 대결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주장은 살아본 경험이 없는, 이루어 본 경험이 없는, 확실성이 없는, 결실맺어 본 일이 없는, 실험해 봐야 할 인간 철학이요, 하나님의 교훈은 실제 살아보고, 경험하고, 열매맺어 본 일이 있는, 부모로서 내어다 본 자식의 살 길입니다.
인간이 연구하고 실험해 보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이하, 곧 물질이나 동물뿐입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을 포함시켜 자기의 상전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오직 그 부모된 하나님께 교육받아 아는 일 이외에는 달리 터득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자기 자신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자는 모두가 저주 받은 사단의 종들입니다. 이들에 의하여 천태만상의 종교가 발생하고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런 철학가 내지 종교 창시자들을 우러러 존경합니다. 이런 철학가와 종교 창시자들의 습성에 의하여 태어난 공산주의, 그리고 오늘도 부모의 경험적인 생명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겁니다”하고 불륜과 방탕의 길로 행하는 탕자들이 전염병처럼 번져 갑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마귀와 싸운 싸움을 보십시오. 사단이 “하나님도 육신을 입고 태어나면 육신(피조물) 제일주의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라는 이 말이 곧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귀와 싸우도록 하게 한 선전포고입니다. 사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지 않고 마귀 자신이 지은 범죄의 정당성을 하나님께 인식시키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육신을 입고 태어나는 피조물이 되고 나면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곧 모든 피조물을 자기 차원에다 두고 도매금으로 해석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 망신은 사단이 다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단을 단번에 형벌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죽음의 포로가 된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귀의 도전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온갖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결국 예수님은 피조물의 행할 바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모본을 보였습니다. 그 예수의 영, 곧 마귀를 이겨 본 경험이 있는, 즉 질병을 이겨 본 경험이 있는 면역성의 영이 이 후부터 모든 신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예수의 피(사상, 의지, 말씀)만이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는 곧 예수의 교훈입니다. 이 예수의 피를 수혈 받는 자, 곧 마시는 자,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만이 그 사람에게 예수의 피가 흐르며 그 피가 곧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의 영을 인간에게 부은 것은, 하나님이 사단을 이긴 것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각기 사단을 이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의 피와 살을 물려 받아 태어난 자만이 참된 자식입니다. 이처럼 창조주의 참된 피, 곧 영적 피와 살을 물려 받은 진짜 자식이 되려면 부모의 피(말씀)가 사단을 이긴 것처럼, 자식에게 있는 피도 사단을 이겨야 합니다. 부모의 피는 사단을 이기는 힘이 있는 데 자식에게 있는 피(생의 길)가 사단을 이기지 못한다면 이는 부모에게 태어난 참 자식이 아니요, 사단에게 속한, 사단에게 순종하는 피만 물려받은 사생자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할 때 “너는 진짜 내 제자야” 또는 “너의 아버지 직업이 무엇인지 알겠다”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직업, 그것은 마귀와 싸워 이긴 전사입니다. 그러므로 아들도 마귀와 싸워 이겨야만 아버지를 닮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아들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하게 닮은 자는 예수님뿐입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완벽하진 못해도 그래도 어느 모로 보아 예수님과 닮은 데가 있어야만 아들로 인정받습니다.
아무튼 신자들의 남은 여생은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데 있습니다. 전쟁은 목숨을 걸고 치루는 일입니다. 마귀는 이미 죽음보다 더한 지옥형벌을 각오하고 신자에게 덤벼 드는 데, 신자는 적어도 목숨 정도는 내놓고 싸워야만 상대가 됩니다. 지옥을 각오하고 덤벼 드는 자에겐 목숨을 내놓고 대항해야 하며,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국력을 총동원해서 대적해야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가로이 부귀 영화 안일만 꿈꾸며 몸을 도사리는 신자들이 어떻게 마귀를 이길 수 있는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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