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머무르지 않는다
다툼은 왜 생기는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전쟁과 보복을 정의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율법은 원수에게는 원수로 갚으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그것이 의로움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또한 예수님은 율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뜻을 완성하고자 하셨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당시의 권세자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들이 그 지혜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부모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식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오신 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슴 아프게 느낄 일이다.
나는 성약을 품었다.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세우시고 반드시 지키신다. 그러나 그 약속을 현실 속에서 완성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믿고 따를 것인지, 외면할 것인지는 인간이 선택한다.
뜻은 하나님께서 세우시지만, 그 뜻을 이루는 과정에는 반드시 인간의 참여가 필요하다. 만일 하나님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었다면, 태초의 에덴동산에서 이미 완성되었을 것이다.
성약의 완성은 인간의 책임이다. 종교는 성숙해지고, 과학은 발전했으며, 인류의 앎은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Gp를 이루고 금통을 완성하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를 이루는 것은 어려웠지만, 이루어진 것을 복제하는 일은 훨씬 쉽다.
더 쉽고 빠른 길도 있었지만, 나는 60년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먼저 세워야 할 사람과 준비해야 할 환경이 있었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때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는 스쳐 지나간다. 기회는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참된 앎은 조급하지 않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안다.
물리학은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고 말한다. 이것이 열역학 제1법칙이다. 인간의 앎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이제는 시공을 초월하는 물리 법칙조차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때를 아는 사람은 앞서 나아가고, 무지는 앎의 빛 앞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물은 100도에 이르면 반드시 끓는다. 누구도 그 순간을 막을 수 없다.
때도 마찬가지다.
때가 오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기회는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때를 알고, 준비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2026.0620 Gp금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