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산에 서다 황해도에서 복사골까지...
김현 창세문학회 동인
"제42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 입선" 경기도의회 의장상
"제11회 복사골백일장" 일반부 시부문 우수상
제공해주신 목차와 등장인물, 그리고 소중한 삶의 궤적을 바탕으로 한 편의 깊이 있는 단편 소설을 집필해 보았습니다. 황해도에서 시작해 강화 마리산, 인천과 대전을 거쳐 복사골 부천에 이르기까지, 거친 세파를 신앙과 열정으로 헤쳐온 한 남자의 대서사시입니다.
마리산에 서다— 황해도에서 복사골까지
김현 (창세문학회 동인) 제42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 입선 (경기도의회의장상) 제11회 복사골백일장 일반부 시 부문 우수상
1부: 바람이 품은 씨앗새 역사의 첫걸음
역사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한 인간의 삶은 그 흐름 속에 새겨지는 가장 또렷한 발자국이다. 황해도 벽성군의 푸른 들판과 연백의 갯벌 소금기가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시절, 그것은 끝이 아닌 ‘새 역사’를 향한 거친 첫걸음의 시작이었다.
황해도에서 강화도로 오다
피난의 행렬 속에서 아버지는 어린 나의 손을 꼭 쥐었다. 바다를 건너 당도한 곳은 강화도였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었지만, 그곳은 실향의 아픔을 달래주고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해준 약속의 땅이었다. 서해의 거친 바람은 낯설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비릿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리산 참성단에 서다
철이 들 무렵,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강화의 영산, 마리산으로 향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아버지는 뒤에서 묵묵히 내 등을 받쳐주셨다. 마침내 도달한 참성단. 하늘과 땅이 맞닿은 그곳에 서자 강화 앞바다는 물론, 저 멀리 두고 온 황해도 땅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큰초아(큰 주춧돌이 되라는 뜻의 아명)야, 세상을 넓게 보아라. 네가 설 자리는 이 세상 전체다." 그날 마리산 정상에서 마신 새벽공기는 내 평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초등생 마라톤에 도전하다
1초등교 시절, 학교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내 인생 첫 번째 ‘한계’ 시험대였다. 숨이 가빠와 당장이라도 길가에 주저앉고 싶을 때, 체육을 담당하던 소방수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곁을 달릴 한 구절을 외쳤다.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뛰는 자만이 결승선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를 악물고 달린 끝에 들어선 결승점. 땀방울 뒤로 몰려온 성취감은 소년의 가슴에 단단한 근육을 심어주었다.
아버지와 선수 바다에서 낚시의 추억
주말이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선수포구’로 향했다. 갯바위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며 드리운 낚싯대. 물고기를 낚는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아버지와 나누던 무언의 대화였다.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아버지는 지나온 삶의 궤적을 들려주셨고, 그 바다는 소년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준 거대한 교실이었다.
어머니와 두부 만들기
집안의 중심에는 늘 인자한 어머니, 무지개가 있었다. 명절이나 동네 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맷돌에 콩을 갈아 직접 두부를 만드셨다. 무쇠솥에서 뽀얗게 끓어오르는 콩물에 간수를 부을 때의 그 정교한 손길. "큰초아야, 서두르면 손두부는 굳지 않고 흐려진단다. 인생도 기다림과 정성이 엉겨 붙어야 단단해지는 법이야." 갓 지어낸 따끈한 두부의 고소함 속에서 나는 은연중에 삶을 대하는 숭고한 성실함을 배웠다.
청소년기에 꿈을 꾸다
2중등교를 거쳐 3고등교에 이르기까지, 사춘기의 터널 속에서 나는 밤마다 별을 보며 꿈을 꾸었다. 같은 반 단짝이었던 꿈성1과 꿈성2는 늘 나의 든든한 동반자였다. 우리는 마리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장차 대한민국을 흔들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인물이 되겠노라며 밤하늘에 대고 소리치곤 했다. 그 치기 어린 약속들이 청소년기의 거친 방황을 잡아준 버팀목이었다.
2부: 약속의 땅, 복사골을 향하여항구 도시 인천으로 건너오다
더 큰 배움을 위해 정든 강화를 떠나 항구 도시 인천으로 건너왔다. 붉은 벽돌의 창고들과 이국적인 물품들이 가득한 인천항은 나에게 거대한 신세계였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외항선들을 보며 내 가슴 속에는 새로운 열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무역상의 꿈을 품고 한밭 목산으로 가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무역상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한밭(대전)에 위치한 목산(4대무교)으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으며 상업의 논리와 세계 시장의 흐름을 간파하고자 밤낮으로 책과 씨름했다. 든든한 선배였던 구나라는 언제나 나에게 " 시야를 국내에 가두지 말고 오대양 육대주로 넓히라"며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성한 국방의무에 나서다
조국은 나에게 청춘의 의무를 요구했다.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의 차가운 연병장을 구르며, 나는 육체적 한계를 넘어 정신적인 단단함을 마주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가슴 깊이 새겨진 것은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엄연한 애국심이었다. 제대 후, 학문적 갈증을 느낀 나는 5신대원에 진학하여 깊이 있는 신학적 사유와 내면의 영성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복사골로 올라오다
운명은 나를 경기도 부천, 즉 ‘복사골’로 이끌었다. 봄이면 온 동네가 분홍빛 복숭아꽃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도시. 이곳은 내 인생의 2막을 열어줄 약속의 땅이자, 새로운 씨앗을 뿌릴 비옥한 토양이었다.
주님 뜻에 강화 아씨와 패미리를 이루다
복사골에서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이 찾아왔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고향 강화도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한 단아한 ‘강화 아씨’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다. 신앙 안에서 맺어진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믿음의 명문 가정을 이루기로 서약했고, 곧이어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두 아들이라는 선물을 품에 안았다.
복사골에서의 주거 대장정 (출애굽에서 아이파크까지)
우리 가족의 주거 역사는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출애굽기’였다.
세파의 파도를 슬기롭게 타다
돌아보면 굴곡 많은 삶이었다. 사업의 부침도 있었고, 경제적인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좌절하는 대신, 어린 시절 마리산 참성단에서 바라보았던 끝없는 수평선을 떠올렸다. 파도는 치라고 있는 법이다. 서핑을 하듯, 나는 세파의 거친 파도를 슬기롭게 타며 매번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나갔다.
3부: 열정의 강단, 그리고 미디어의 바다HD모터카에서 삶을 세우다
장성한 가장으로서 나를 단단하게 세워준 곳은 HD모터카였다. 자동차 산업의 최전선에서 발로 뛰며 신용과 성실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해 였고, 이곳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는 우리 가족의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카데미에 열정을 쏟다
내 가슴 한구석엔 늘 ‘가르치는 자’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미디어의 세상을 열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나는 글과 영상이 가진 힘에 주목했다. 단순한 교육자를 넘어 미디어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세상의 따뜻한 이야기,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기록하는 미디어 영역에서 새로운 열정을 불태웠다. 펜은 칼보다 강했고, 카메라는 진실을 담는 거울이었다.
두 아들 풍요로운 짝과 가를 이루다
부모로서 가장 큰 숙제를 마친 순간이 찾아왔다. 내 분신과도 같은 두 아들이 각각 현명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귀한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룬 것이다. 아이파크 거실에 모여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아들 부부들의 미소 속에서, 내가 황해도에서부터 이어온 이 가문의 생명력이 얼마나 울창하게 번성하고 있는지 깨달으며 가슴 깊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4부: 황혼의 참성단에서 부르는 찬가늦깎이 관광학도로 나서다
배움엔 은퇴가 없다 했던가. 인생의 후반전, 나는 ‘관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도전했다.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삶의 여정 그 자체를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싶었다.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밤을 새워 리포트를 쓰면서도 내 심장은 청년 시절처럼 뛰었다.
미디어 파트너를 만나다
이 새로운 여정길에 뜻이 맞는 최고의 미디어 파트너를 만났다. 혼자 가던 길에 동반자가 생기자 콘텐츠의 깊이는 더해졌고, 우리는 복사골을 넘어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아름다움과 사람 사는 냄새를 미디어에 담아 세상에 전파했다.
캄보디아 선교에 힘을 플러스하다
나에게 주신 이 모든 복을 나 혼자 누릴 수 없었다. 나는 눈을 돌려 척박한 땅 캄보디아로 향했다. 그곳의 헐벗은 아이들과 영혼들을 위해 내가 가진 물질과 미디어 역량, 그리고 복음의 능력을 보태기 시작했다(플러스). 메콩강의 붉은 물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어린 시절 강화도에서 바라본 서해바다를 떠올렸다. 하나님의 사랑은 국경을 넘어 흐르고 있었다.
하나님 섬기며 즐거운 미래로 산다
이제 내 나이의 시계는 황혼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내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하다. 평생을 인도해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남은 생 또한 즐겁고 활기찬 미래로 채워가고 있다.
다시금 강화 마리산 참성단에 선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랐던 그 자리에, 이제는 수많은 세파를 이겨낸 노신사가 되어 홀로 서 있다. 황해도에서 복사골까지, 굽이치던 강물 같았던 내 인생의 여정들이 저 멀리 서해의 낙조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든 것이 은혜였고,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