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영국 런던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컬렉션의 규모가 가장 큰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인류학적 유물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7백만 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대영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인간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여 선정된 작품들로서 각 지역과 시대를 대변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개관한 1824년 이전에는 대영 박물관에서도 유럽회화 작품들을 전시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내셔널 갤러리 개관과 함께 유럽회화 작품들은 더 이상 전시하지 않고 있다. | |

대영 박물관 입구 <출처 : Ham at en.wikipedia>
|
대영 박물관은 내과의사이자 과학자였던 한스 슬론(Sir Hans Sloane)의 컬렉션을 기초로 1753년에 설립되었으며, 일반인들에게 컬렉션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1759년 1월 15일부터이다. 당시에도 현재의 박물관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인 블룸스베리(Bloomsbury)의 몬태규하우스(Montagu House)에서 전시를 시작했기 때문에 2백 50여 년 동안 대영 박물관은 같은 자리에서 영국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1997년 도서관(British Library)이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영 박물관은 도서관과 박물관이 같은 건물에 있어서, 관람객들이 고대 유물들을 감상함과 동시에 관련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현재는 도서관은 이전하였지만, 2000년 새롭게 개관한 ‘대정원(Great Court)’ 중앙부에 연람실(Reading Room)을 두어 유물 관람과 독서를 계속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대영 박물관은 ‘영국 문화, 미디어, 스포츠 부’의 후원을 받고 있는 국립박물관으로서 영국의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마찬가지로 입장료가 무료이다. 한 해 방문객 규모는 약 5백 8십만 명(2010년 집계)이다.
역사

문화적 예술품과 유물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대영 박물관은 개관 당시에도 ‘보편적인 박물관(universal museum)’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의 기초가 되었던 컬렉션은 한스 슬론의 컬렉션. 문화와 유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과학자 한스 슬론은 일생 동안 꾸준히 작품을 수집하여 방대한 컬렉션을 이루었는데, 사후에 컬렉션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유언을 통해 수집품을 국가와 조지 2세(King George II)에게 기증하였다. 기증 당시 7만 1천 여점이었던 슬론의 컬렉션은 4만 여점의 도서, 7천여 점의 문서, 방대한 자연사 표본, 이집트 유물, 그리스 로마 유물, 고대 근동, 극동 유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753년, 조지 2세는 그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하여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을 설립한다는 의회법(Act of Parliament)에 동의했으며, 슬론 컬렉션을 코토니언 도서관(Cottonian Library), 할레이언 도서관(Harleian Library), 왕립 도서관(Royal Library)과 합하여 대영 박물관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대영 박물관은 초창기부터 여러 모로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으로 평가되었다. 기존의 박물관들이 교회나 왕실에 속해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박물관은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써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었고, 귀족적인 회화 중심의 컬렉션 뿐 아니라 다양한 사물 및 유물들도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잡다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자잘한 물품들로 구성된 슬론의 컬렉션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의미한 사물들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혹은 문화인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관심과 지식의 깊이를 반영하는 수집품들이었다. | |
|
박물관 개관과 운영을 위해 구성된 위원회는 17세기에 지어진 저택인 몬태규 하우스(Montagu House)를 박물관 건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몬태규 가문에게 2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저택을 구입하였다. 또 다른 후보지였던 버킹험 하우스(Buckingham House)는 비싼 가격과 불안정한 위치 등의 이유로 위원회가 채택을 거부하였는데, 현재 그곳은 버킹험 궁(Buckingham Palace)로 사용되고 있다.
몬태규 하우스의 갤러리와 서재에서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린 것은 1759년 1월 15일의 일이었다. 1757년, 조지 2세가 구 로열 도서관과 대영 박물관 도서관에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을 복사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했기 때문에 대영 박물관 도서관의 장서들은 무한대로 증가할 수 있었다. 주로 자연사 유물과 도서, 원고 등이 탁월했던 대영 박물관의 컬렉션에 인류학적 유물들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1772년부터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각 문명의 유물들과 역사적 컬렉션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해밀턴(Sir William Hamilton)의 그리스 화병 컬렉션’을 비롯하여 영국 내전을 기록한 소책자들로 구성된 ‘토마슨(Thomason) 컬렉션’, 몇몇 중요한 고대 작품들을 포함한 1천여 점의 희곡 원고로 이루어진 ‘개릭의 장서(Garrick’s Library) 컬렉션’ 등이 기증되면서, 대영 박물관의 관람객들은 역사의 기록들과 당대의 유물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시대적 유물들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1778년, 세계 여행에서 돌아온 제임스 쿡(Captain James Cook)이 다른 탐험가들과 함께 여행의 기념으로 곳곳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전시하자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서적, 보석, 동전, 판화와 소묘 등의 컬렉션이 추가로 유입되자 대영 박물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 |
|
박물관 내 그레이트 코트 <출처: Andrew Dunn at en.wikipedia> | |
|
대영 박물관에 유입된 첫 번째 유물 컬렉션은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 컬렉션으로서, 나폴리의 영국 대사였던 해밀턴이 일생동안 모았던 그리스와 로마 유물들로 구성된 컬렉션이다. 1784년 대영 박물관 운영 위원회는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유물을 다른 유물들과 자연사 표본들과 함께 해밀턴에게서 구입했던 것이다.
19세기에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유물들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조각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나일강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대파한 후 대영 박물관은 이집트 조각 작품들를 대거 유입할 수 있었는데, 1802년에는 조지 3세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공개했다. 1818년, 이집트의 영국 영사로 근무하던 헨리 솔트(Henry Salt)가 보유하고 있던 [람세스 2세의 거대 흉상(Colossal bust of Ramesses II)]을 비롯한 많은 양의 이집트 유물들이 대영 박물관으로 유입되면서, 대영 박물관은 이집트 조각 컬렉션 부문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그리스 조각 부문은 1805년 유입된 찰스 타운리(Charles Towneley) 컬렉션을 시작으로 컬렉션 유입이 시작됐다. 1806년 토마스 브루스(Thomas Bruce: 오토만 제국의 대사, 1799년부터 1803년까지 오토만 제국에서 활약) 백작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으로부터 떼어낸 대리석 조각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들을 조국인 영국에 보냈고 1816년부터 의회법에 의해 대영 박물관에서 보관, 전시되기 시작했다. 고대 근동 유물들은 1825년, 클라우디우스 제임스 리치(Claudius James Rich)의 미망인으로부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유물들을 구입하면서 그 컬렉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편 컬렉션이 증가하면서 몬태규 하우스가 상대적으로 너무 좁고 낡은 공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운영 위원회에서는 몬태규 하우스의 증축을 논의할 수 밖에 없었다. 1802년 박물관 운영 위원회는 건물의 확장 및 증축을 계획하였고, 1822년에는 조지 3세의 개인 도서관이었던 ‘왕의 도서관(King’s Library)’이 소장 도서 팜플릿, 지도, 차트, 지형학적 소묘 등과 함께 기증되면서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이어서 위원회는 네오클래식 디자인을 추구했던 건축가, 로버트 스머크(Robert Smirke)에게 의뢰하여, 박물관의 동쪽을 증축하는 계획을 세우도록 했는데, 스머크는 왕립도서관의 입구가 박물관의 출구와 만나도록 한 디자인을 통해 현재 대영 박물관의 4각형 구조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 |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 |
엘긴 마블이 있는 전시장 |
|
새로운 증축 작업을 위해 낡고 오래된 몬태규 하우스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몬태규 하우스의 자리는 현재의 서관 남쪽 부문이다). 한편 1824년, 런던에 회화를 주로 전시하는 내셔널 갤러리가 준공되었기 때문에, 대영 박물관은 회화 작품들을 더 이상 전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회화관으로 쓰려던 공간은 자연사 컬렉션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변모할 수 밖에 없었다.
1827년, 동관의 지층에 들어 선 ‘왕의 도서관’은 당시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으로 뽑힐 만큼 성공적이었지만, 1857년까지는 일반 대중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진 못했다. 1851년 박람회 동안에만 예약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특별 개방을 허락했을 뿐이었다. 1840년, 대영 박물관은 처음으로 해외 발굴 작업에 가담하게 된다. 찰스 펠로스(Charles Fellows)가 고대 리키아의 주요 도시인 크산토스(Xanthos: 지금의 ‘키닉’에 해당되며 터키 서부 코카 강 하구에 위치한 도시)에 고대 군주들의 무덤을 발굴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는 일을 후원했던 것. 또한 1857년 찰스 뉴튼(Charles Newton)이 고대 왕국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BC 4세기 ‘하르키나소스의 마우솔러스(mausoleum of halikarnassos)’ 영묘를 발굴하는 것을 지원했으며, 1840년대와 1850년대에는 앗시리아의 니느웨(Nineveh)나 님루드(Carlhu, Nimrud) 같은 도시들을 발굴하는 작업에도 관여하였다. 앗시리아의 왕이었던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왕의 유물들을 발굴하면서 아슈르바니팔이 최초로 니느웨에 세웠던 왕의 도서관과 그 곳에 소장되었던 2만 개가 넘는 점토판(cuneiform tablets)과 조각들을 연구할 수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대영 박물관은 앗시리아 유물과 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
19세기 중반 대영 박물관은 처음으로 영국과 유럽의 중세와 선사시대 유물들을 유입하기 시작했다. 해외 발굴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존 터틀 우드(John Turtle Wood)는 대영 박물관의 후원으로 기원전 4세기의 유물인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 at Ephesos: 역시 고대 왕국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임)의 유물을 발견하여, 유물들을 대영 박물관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했다. | |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 <출처: Wikipedia> | |
|
|
자연사 유물들은 대영 박물관의 매우 중요한 컬렉션이었는데, 1887년 새롭게 개관한 ‘영국 자연사 박물관(British Museum of Natural History)’으로 이관되었고, 현재에는 박물관의 명칭이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으로 바뀐 상태이다. 그 즈음 몬태규 거리 바로 앞까지 연장된 새로운 건물 화이트 관(White Wing)이 개관하였는데, 연람실과 전시실에 당시 새롭게 등장했던 전기 조명이 설치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말, 대영 박물관의 컬렉션이 계속해서 증가하자 운영 위원회는 건물관 주변의 주택 69채를 구입하게 된다. 구입한 주택들을 모두 헐고 북, 동, 서향으로 박물관을 추가로 증축하기 위한 방안이었으며 그 첫 번째 단계로 1906년 북관(North Wing) 증축이 시작되어, 1914년 완공되었다. 하지만 그 후 재정 문제 때문에 추가 증축이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대영 박물관의 몇몇 컬렉션들은 웨일즈의 국립도서관, 맬번 근처의 별장, 철도회사의 우편창고 등으로 옮겨져서 보호를 받기도 했다. | |
|
1931년 아트 딜러였던 조셉 듀빈(Joseph Duveen)은 파르테논 조각상들을 전시할 갤러리를 건축할 수 있는 기금을 기부했고, 그의 뜻에 따라 1939년 미국 건축가 존 러셀 포프(John Russell Pope)가 디자인한 듀빈 갤러리(Duveen Gallery)가 완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대영 박물관의 주요 컬렉션들은 안전한 지하나 별장, 기차역 등으로 분산 배치되었고, 폭격으로 인해 듀빈 갤러리는 심각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자 대영 박물관은 각지에 분산 배치되었던 유물들을 다시 모아 전시를 시작했으며, 파괴된 듀빈 갤러리의 복구 작업도 착수되어 1962년에야 재오픈을 기념할 수 있었다.
1970년 대에도 대영 박물관의 증축은 계속되었고, 1972년에는 영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시회였던 ‘투탄카멘 보물전(Treasures of Tutankhamun)’이 개최되어 1백 69만 여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그리고 1997년에는 대영 박물관과 함께 있던 영국 도서관이 성 팬크라스(St. Pancras)에 위치하고 있는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여 독립하였다. 이로써 대영 박물관으로부터 자연사 유물과 도서관 등이 분리되기는 하였지만 대영 박물관은 고대와 근대의 세계 문화를 대표하는 물품들을 전시하는 보편적인 박물관으로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구조

대영 박물관의 메인 건물은, 그레이트러셀 가(Great Russell Street)쪽을 향해 정면이 나 있는 복고 스타일의 그리스식 건물이다. 건축가였던 스머크(Sir Robert Smirke)는 고대 이오니아의 그리스 식민 도시였던 프리에네(Priene)에 있는 ‘아테나 폴리아스(Athena Polias) 성전’에서 영감을 받아 대영 박물관의 건물을 디자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 입구에 14미터 높이의 그리스 식 기둥을 44개나 세워 고전적이면서도 웅장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며, 메인 입구 위쪽의 박공(pediment)에는 1852년, 조각가 웨스트마코트(Sir Richard Westmacott)가 [문명의 진보(The Progress of Civilization)]라는 제목으로 15개의 연작 부조를 완성하여 장식하였다.
대영 박물관의 동관(East Wing)은 내정(courtyard) 주변에 1828년 완공되었으며, 이어서 1838년에는 북관(North Wing)이, 이집트 조각갤러리로 사용되는 서관(West Wing)의 북쪽 부분은 1831년에 건축되었다. 1842년에는 서관의 남쪽 부분을 건축하기 위해 기존의 몬태규 하우스를 철거하였고, 서관 남부는 1846년 완성되었다. 남관(South Wing)은 1843년 건축을 시작해서 1847년 완성되었고, 1884년에는 화이트관(White Wing)이 건축가 테일러(Sir John Tayor)의 설계로 추가로 건축되었다. | |
|
1895년, 영국 의회는 박물관의 증축을 위해 20만 파운드를 장기 대출해줄 것에 동의하였고, 미술관 운영 위원회는 이 돈으로 박물관 주변의 주택 69채를 구입했다. 최초의 플랜은 이 주택들을 모두 허물고 서쪽, 북쪽, 동쪽 세 방향으로 박물관을 증축한다는 야심찬 장기 계획이었다. 건축가 버넷(Sir John James Burnet)은 이 증축 계획의 설계자로 지정되었고, 건물 구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물관 북쪽 방향의 주택들을 허물고 ‘에드워드 7세(Edward VII) 전시실)’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1914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현재 동양 유물들 중 소묘와 판화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후속 증축작업들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그리스, 아시리아 조각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두빈 갤러리(Duveen Gallery)는 미국의 보자르 스타일 건축가인 존 포프(John Russell Pope)에 의해 1938년 완공되었다. 하지만 완공 2년 후인 1940년, 2차 세계 대전 중 예기치 않은 폭격으로 건물은 큰 손상을 입었다. 이 폭격으로 두빈 갤러리 뿐 아니라 에드워드 7세 갤러리, 중앙 연람실이 있는 돔 건물 등이 손상되었으며 1960년대 초반까지도 복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에는 과거 왕립 도서관이 있던 자리인, 대영 박물관의 중앙부에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대정원(Queen Elizabeth II Great Court)’이 개관하였다. 건축설계회사인 ‘포스터&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설계를 맡고 건축공법 컨설팅회사인 ‘뷰로 해폴드(Buro Happold)’가 시공을 담당하여 완성한 대정원은 박물관 중앙 도서관 자리를 정원으로 꾸몄으며, 정원 위에 유리와 철제로 지붕을 올려서 유럽에서 가장 큰 지붕있는 정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정원 중앙부에는 열람실(Reading Room)이 있어서 독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 |
|
[서튼 후의 투구] 7세기 높이 31.8cm, 너비 21.5cm, 대영박물관 작품 보러가기 | |
|
운영

대영 박물관은 영국 문화, 미디어, 스포츠 부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행정부서에 속해있지는 않은,비 부처 공공기관(Non-departmental public body)이다. 3년에 한 번씩 예산에 대한 동의를 받고 있으며 그 수장은 ‘관장(Director)’이 맡고 있다. 대영 박물관은 초기에는 도서 컬렉션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기 때문에, 수장의 명칭을 ‘도서관장(Principal Librarian)’이라고 했었고, 1898년 ‘관장 겸 도서관장(Director and Principal Librarian)’이라고 개명한 후, 1973년 부터는 박물관이 도서관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분리되면서 수장의 명칭이 ‘관장(Director)’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의 일반적인 경영과 통제는 운영 위원회(Board of Trustees)가 맡고 있으며, 운영위원회는 관장과 회계담당을 포함하여 모두 25명의 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장품

고대 이집트와 수단(Ancient Egypt and Sudan)
대영 박물관은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주요한 이집트 유물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집트와 수단의 역사 상 거의 모든 시대를 커버하는 주요한 시대적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나일강 유역의 BC. 1만년, 신석기 시대부터 12세기 콥틱 시대에 이르는 1만 1천여 년의 기간 동안의 문화적 양상을 유물들을 통해 예증하고 있다.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은 박물관 초기부터 주요한 컬렉션으로 자리잡았는데, 1753년 한스 슬로안의 기증품에 160점의 이집트 유물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801년 나일강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르고, 영국군은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이 수집했던 이집트 유물들을 몰수할 수 있었고, 1803년부터 이들을 대영 박물관에서 전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몰수한 유물 중에는 유명한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영국 정부는 헨리 솔트(Henry Salt)를 이집트 영사로 임명했는데, 솔트는 이집트에서 엄청난 양의 유물들을 수집했던 인물이다. | |
-
람세스 2세의 흉상
작자 미상|BC 1250년경
-
로제타석
작자 미상|BC 196
-
사자의 서
작자 미상|BC 1300
-
노래하고 춤추는 여인들
작자 미상
-
네마분 무덤벽화
작자 미상|BC 1350년경
|
솔트가 수집한 이집트 유물들은 훗날 대부분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에 판매되었다. 1866년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 컬렉션은 1만여 점이 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영국 내에 이집트탐사기금이 조성되어 이집트 유물 출토 작업이 더욱 활발해졌고, 출토된 유물들은 속속 대영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1924년에는 컬렉션의 규모가 더욱 커져서 유물의 수가 5만 7천여 점이나 되었다. 20세기에 접어 들어서도 이집트 유물 탐사는 계속되었고 많은 유물들이 출토, 유입되었으나, 이집트에서 유물 발굴과 유물을 국외 반출에 대한 법령을 개정하면서 탐사 작업은 감소되기 시작했다. 현재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와 수단 유물은 11만여 점에 달한다.
대영 박물관에서 이집트와 수단 유물들은 가장 큰 전시 공간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 컬렉션의 4%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만큼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 컬렉션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것. 특히 4번 전시실에서는 [람세스 2세의 거대 흉상](Colossal Bust of Ramesses II)과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비롯한 대표적인 이집트 기념상들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2층 전시실들에서도 140 여점의 미라와 관들,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 유물(Greek and Roman Antiquities)
대영 박물관의 그리스와 로마 유물 부문 역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주요한 고대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10만 점이 넘는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BC.3200년 경 그리스 청동 시대로부터 AD.4세기 로마제국 콘스탄틴 1세 시대까지의 주요 유물을 고루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 문화가 꽃피었던 고대 키클라데스 문명,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의 대표적인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그리스 컬렉션 중에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분리해온 주요 조각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고대 문명의 세계 7대 불가사의(Seven Wonders of the Ancient World) 중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Mausoleum at Halikarnassos)]의 유물들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 at Ephesos)]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끄는 컬렉션이다. 대영 박물관의 그리스 로마 유물 부문에서는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의 유물들을 광범위하게 전시하고 있으며, 고대 보석류, 청동, 그리스 화병들, 로마의 유리와 은 제품 등도 선보이고 있다.
중동 유물(Middle East)
과거에는 고대 근동유물(Ancient Near East)로 불리던 이 컬렉션은, 아시아 유물 부문으로부터 이슬람 유물들이 유입되면서 그 명칭이 ‘중동 유물(Middle East) 부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약 33만여 점의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라크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리아, 바빌론, 수메르의 유물들을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으며, 컬렉션들은 고대 근동 지역과 부근 문명의 흥망성쇠를 대변해 준다. 선사시대부터 7세기 이슬람 문명 초기까지를 커버하는 컬렉션들은 고대 아시리아의 주요 도시, 님루드(Nimrud)와 코사바드(Khorsabad), 니느웨(Nineveh) 등에서 발견된 부조들과 수메르 인들의 보물들, 니느웨에 있던 왕립도서관의 유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님루드와 니느웨의 아시리아 궁전 터에서 출토된 돌로 만들어진 부조들은 고대 아시리아 인들의 진취적인 생활상과 전쟁과 사냥 모습 등을 표현하고 있어서 당시의 사회상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대영 박물관에 가장 먼저 유입된 메소포타미아 유물은 1772년, 해밀턴(Sir William Hamilton)으로 구입한 컬렉션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유입된 주요 컬렉션은 클라우디우스 리치(Claudius James Rich)의 소장품이었다. 한편 1845년부터 1851년 사이, 아시리아의 님루드와 니느웨에서 레이어드(A.H. Layard)가 실시했던 유물탐사와 발굴 작업을 통해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이들이 대영 박물관으로 유입되면서 컬렉션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 |
-
라마수 석상
작자미상|BC 710
-
죽어가는 사자
작자미상|BC 645
-
밤의 여왕
작자미상|BC 1765~1745
-
성자를 방문한 왕자
작자미상|1610년
-
아딜 샤 2세
작자미상|1615년
-
궁신의 초상
작자미상|1615년
-
명상 중인 마울라비
작자미상|1630년
-
크리슈나와 소녀들
작자미상|1710년
-
그네타는 크리슈나
작자미상|1750년경
-
음악을 듣는 여인
작자미상|1750년
|
님루드에서 레이어드는 여러 궁전들과 신전을 발견하였으며 곧이어 니느웨에서도 궁전터를 찾아냈다. 두 도시를 발굴한 결과 레이어드의 탐사팀은 수많은 라마수(Lamassu: 메소포타미아의 상상 속 동물이자 아시리아의 수호신. 얼굴을 사람, 몸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상과 부조들, 돌판 비석 등을 찾아냈다. [살만에세르 3세의 블랙 오벨리스크(Black Obelisk of Shalmaneser III)], 왕의 사자 사냥 장면 등이 조각되어 있는 니느웨 궁전터에서 발견한 부조들, 바빌론의 [사이프러스 실린더(Cyrus Cylinder)], 발라와트(Balawat)의 청동 문,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왕이 고대 최초로 니느웨에 세운 도서관에서 출토된 수많은 설형문자판(cuneiform tablets)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특히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루어진 탐사과 발굴 작업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유물 컬렉션은 그 양이 급증했다. 홀(H.R. Hall)이 지휘했던 탐사팀은 사자 머리를 하고 있는 독수리인 ‘인두구드(Indugud)’가 그려진 돌판, 인체 사이즈의 사자상, 수메르 신전의 청동 유물 등을 출토하였고, 울리(Wooley)의 탐사팀은 이라크의 남부, 우르(Ur)에서 기원전 3백 년 경의 ‘왕의 묘지(Royal Cemetery)’를 발견하여 주요 유물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당시 발견된 유물 중에 [덤불에 걸린 양(Ram in a Thicket)]이 있었는데, 두 점이 발견되어 하나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에서 하나는 대영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실제로 ‘양’이라기 보다는 ‘염소(Goat)’에 가까운 동물이 덤불에 걸려있는 형상을 표현한 조각 작품이다. 중동 유물 부문의 대표적인 컬렉션들은 13개의 전시실에 나뉘어 약 4천 5백 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이 중에는 도자기, 회화, 타일, 유리 공예품, 비문 등의 이슬람 미술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 |
-
청자 넝쿨무늬 대접
작자 미상|12세기 전반
-
아미타 폭포
호쿠사이|1827년
-
여사잠도
고개지380년
-
아미타불의 극락정토
작자 미상|8세기
|
아시아 유물(Asian)
대영 박물관의 아시아 유물 부문은 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유물들로 구성된 컬렉션이다. 한국, 일본, 중국, 중앙 아시아, 아프가니스탄, 남 아시아, 남동 아시아 등의 유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시대적으로는 BC.4000년 경 신석기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유물들을 커버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고려청자매병], [신라 시대 금귀고리], [조선 지국천왕] 등이있다. 인도의 라임스톤으로 제작된 부처 부조인 [아마라바티(Amaravati)], 일본의 고전 그래픽 아트 작품, 중국 둔후앙 동굴에서 출토된 부처 그림들, 청동 유물, 옥 제품들 등이 유명한 작품들이다. 또한 대영 박물관의 아시아 유물 부문에서는 남동 아시아에서 출토된 고대 생활 용품들과 직물 컬렉션 등도 소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대영 박물관에서는 선사 시대와 유럽 유물들, 동전과 메달 컬렉션, 판화와 소묘 컬렉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유물 컬렉션 등도 전시하고 있다. | |
미술관 정보
이 름 : 대영 박물관 (British Museum)
위 치 : 영국, 런던 / Great Russell Street, London WC1, England, UK
설 립 : 1753년
연 관람객규모 : 약 584만 명(2010)
공식 홈페이지 : www.british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