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마이어 - 백색의 건축가, 백색건축의 찬미자
리차드 마이어는 소문 없이 자신의 건축언어를 일관성 있게 유지, 발전 시켜왔는데, '모더니즘의 시학, 테크놀러지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건축은 "하나의 전통이며 기나긴 연속체로, 전통과 단절하든지 아니면 이를 강화하든지, 우리는 여전히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작업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질서를 찾아내고 다시 정의하고, 어떤 용도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라고 그는 분명히 말한다.
초기에는 르 꼬르뷔제의 작품사상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점차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통하여 자신의 디자인 원리를 확고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백색건축을 발전시켜온 탓에 「게티센터」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이어의 주거건축 작품에 나타난 건축적 특성은,
▪ 도로에서의 진입축과 건축이 이루는 축이 대부분 상이하다.
▪ 초기 주택은 대부분 목구조에, 그리드 시스템에 의한 철재 기둥들이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었고, 공간의 자유로움을 구사하였다.
▪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확연히 구분되었고, 공적 공간은 전망이 좋은 쪽에 위치하며 상하층이 개방되었다. 사적 공간은 뒤쪽에 위치하되 아침 햇빛이 유입되도록 고려되었다.
▪ 경사로를 평면 중심에 위치시켜 사람의 움직임을 집안 전체가 느끼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수법은 공공 건축이나 뮤지엄 건축 디자인의 주요 요소로 발전된다.
▪ 일부에 필로티(pilotis)를 도입하고 곡면을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다른 기능의 건축에서는 필수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 표피(skin)는 백색으로 처리되어 자연 환경과 의도적으로 대비를 시켰다.
또한 공공건축이나 뮤지엄 건축 작품에 나타난 건축적 특성은,
▪ 대부분 주거 건축에서 나타난 특성들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일관된 작품 특성을 볼 수 있다. 즉, 자연 조건이나 주변 환경에 의한 여러 가지의 축을 통하여 계획되었으며, 매우 논리적이다.
▪ 구성은 정방형 그리드 시스템에 의한 평면 구성이 대부분이며, 평면 일부에 곡면을 사용하여 그 건물의 특성과 변화를 나타낸다.
▪ 메이저 스페이스에는 상하층이 개방되고, 천창으로부터 자연광이 유입되며, 경사로를 설치하여 상하 이동을 하며 내·외부공간을 다양하게 체험토록 하고 있다.
▪ 건물 일부에는 반드시 필로티를 두었고, 진입부에는 포디엄과 같은 상징적 벽을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인지도를 높여준다.
그의 독자적 접근 방법은 초기 주택에서부터 공공 건축이나 뮤지엄 건축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며, 그의 작품이 선명한 것은 그의 건축 이념인 논리적 사고가 정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신선하지만 그와 반대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공간이 아니라 분명하고 적절한 부피를 가진 공간이어서 쾌적함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건축 미학을 빛의 도입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 순백의 형태로 자유로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으며, 건축문화와 연관된 질서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독자성을 가진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자료(source)들은 건축사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가 이처럼 건축사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건축에 있어서의 불변성, 연속성, 우수성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리차드 마이어는 백색건축의 찬미자라 할 수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백색건축에 대해 1984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마이어는 그의 자녀들과의 대화를 인용하면서 "너희들은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하니?"라는 질문에 4년 9개월 된 아들 죠셉(Joseph)은 '초록색'이라고 대답하면서 "초록은 잔디 색깔이며, 나무색이에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초록을 볼 수 있어요. 또한 초록은 봄과 지폐의 색이기도 하지요"라고 설명하였다. 또 3살짜리 딸 애나(Ana)는 '파란색'을 좋아한다면서 "하늘은 파란색이며, 풀장과 연못 그리고 호수도 파란색이죠."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그 아이들은 아버지인 마이어에게 "아빠, 아빠는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하세요?"라고 되물었다. 그의 대답은 당연히 '흰색(white)'이라고 했더니 "하지만 흰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빠가 말씀하셨잖아요?"라고 반문하였다.
흰색은 색이 아니다. 그는 흰색을 '무지개 색에는 없으나,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무지개 색에 있는 색은 볼 수 있으나 흰색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흰색은 빛의 투영과 여러 가지 색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시각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색깔이 아니라 항상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색이다. 흰색은 결코 흰색이 아니며, 하늘과 구름, 태양과 달과 같이 거의 항상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된다고 믿고 있다.
관례적으로 흰색은 항상 완전한 순결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다른 색과 달리 흰색은 절대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의 형태와 표피, 빛에 의한 공간 연출, 규모의 변화와 운동과 정지를 이용하여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순백은 명백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날카로운 통찰력과 강한 힘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백색을 통하여 조화로운 공간과 실험으로 명확성을 추구하였고, 밝고, 생기 있고, 독창적이며,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앞으로도 그는 끊임없는 정열로 일관성 있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며, 그가 이룩한 업적은 그를 '근대주의 최후의 건축가'라고 명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왜 백색의 건축가인가?
미국의 현대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 1934~)는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 케빈 로쉬(Kevin Roche),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제3세대 건축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60년대 뉴욕의 진보적인 건축가 그룹 '뉴욕 파이브(New York 5)'1) 멤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국 내 인지도를 높여갔고, 19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신망을 받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는 그가 일관성 있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백색건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고, 자신만의 순수한 건축 이론과 이 시대의 건축 문화를 접목시키고자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모든 작품의 디자인 체계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Museum of Decorative Arts)」이나 아틀란타의 「하이뮤지엄(High Museum of Art)」과 같은 세계적인 프로젝트 지명 설계 경기 공모에 당선되어 21세기 건축을 이끌어 가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그 명성을 더해 가고 있다.
그는 매 작품마다 ①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연축과 주변 조건으로부터의 대지축을 찾아 배치 계획에 반영, ② 정확한 프로그램을 통한 공간 구성, ③ 합리적인 건축 구조 체계, ④ 인지도를 높인 위치에 입구 설정 등 시각, 지각적 원리를 이용한 디자인 적용, ⑤ 체계적인 수직 동선의 위치 설정, ⑥ 공간을 에워싸는 윤곽 등을 통해 논리적 디자인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논리 전개 방식은 모든 작품마다 다이어그램을 이용하여 검증이 가능하다.
마이어의 작품집 서문을 쓴 조셉 리크웰트(Joseph Rykwert)는 그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리차드 마이어는 동시대 작가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그의 작품 특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의 비판자나 옹호자들마저도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의 연장선에서만 마이어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 같은 논의를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의 스타일은 누구의 것을 계승한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것임을 주장해 왔다. 신중한 성격의 마이어는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면서도, '백색건축(white architecture)'에 빠져 들었고, 이를 대처할 대안(代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백색건축의 절정을 이룬 「하이뮤지엄」
마이어는 '백색'을 좋아한다. 백색에 관한 철학은 그의 작품집이나 연설문을 통하여 자주 언급되고 있다. "백색은 모든 자연색 내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색채로 백색표면을 이용하면 딱딱한 벽과 부드러운 개구부(開口部)2)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가능하다. 백색은 전통적으로 완벽함과 순수함 그리고 명료함의 상징이며, 가장 인상적인 색채이므로 나의 작업에서 가장 개성적인 특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백색을 이용하면 시각적인 형태의 힘이 강화되고 건축개념이 명백해진다. 또한 백색은 추상적 공간이나 스케일 그리고 자연과의 조합과 관련하여 공간을 정의하고 질서화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백색은 가장 아름다운 색이며, 항상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되며, 하늘과 구름과 태양 그리고 달이 그러하듯 백색은 항상 순결의 상징이며, 다른 색들은 그들의 배경에 의존한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백색은 절대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백색을 좋아한다."
따라서 그는 규격화된 백색 재료로 일관성 있게 백색건축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독특한 그의 건축기호가 되었다. 그의 백색건축은 낮에는 밝게 빛나고 밤에는 은빛을 내면서 항상 변화하는 힘을 가지며, 이로 인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상징물이 되었다. 백색건축의 찬미자인 마이어의 주요작품은 크게 1960년대 주거건축과 1970년대 공공건축,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뮤지엄 건축으로 구분된다.
1960년대 대표적인 주거건축으로는 「스미스 하우스(Smith House)」, 「더그라스 하우스(Douglas House)」등 많은 백색주택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그는 쉽게 세상에 알려질 수가 있었고, 1970년대에는 브롱스에 있는 「재활센터(Bronx Developmental Center)」를 비롯한 공공 건축 작품,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Museum for Decorative Arts)」을 비롯한 뮤지엄 건축들을 통하여 신임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된다.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던 백색건축 시대를 결산하고 방향 전환을 시도하겠다던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게티센터(Getty Center)」 프로젝트도 결국은 그 동안의 백색건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 그의 백색건축은 절정을 이루었고, 그는 백색건축의 찬미자로 인정된다.
그가 백색건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것은 자연 속에서 정형적 형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려는 의도였으며, 그로 인해 대중들에게 큰 감명을 줄 수 있었다. 특히 「게티센터」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는 도시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디자인과 자연의 통합작업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된다.
건축이념
초기에 마이어는 르 꼬르뷔제의 5원칙을 즐겨 사용했고, 라이트의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 그리고 미스의 '벽은 공간을 둘러싸는 수단으로서 구조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건축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이태리의 「쥬빌리 교회(Jubilee Church)」(1996~2000) 1년간 심사 끝에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영국건축가)과 후미히꼬 마끼(Fumihiko Maki, 일본건축가)를 제치고 선정된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건립된 「게티센터」, 「TV와 라디오 뮤지엄(The Museum of Television & Radio)」(1994~1996),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1987~1995), 헤이그의 「시청과 도서관(City Hall & Library)」(1986~1995), 아틀란타의 「하이뮤지엄(The High Museum of Art)」(1980~1983), 「수공예미술관(Museum for the Decorative Arts)」(1979~1985) 등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단순한 평면과 일부분 곡면의 사용, 경사로(ramp) 사용, 건물의 입면 처리기법 등과 알바 알토의 빛을 끌어들이는 수법과 극적인 동선 처리 등 르 꼬르뷔제의 영향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의 건축들은 과거 모더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건축이념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건축에는 백색마감, 넓은 면적의 개구부, 길게 뻗은 경사로가 일관성 있게 나타나 있다.
백색마감은 용도와 관계없이 그의 건축 대부분에 나타난 경향이고, 길게 뻗은 경사로도 주택이나 뮤지엄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요소이다. 또한 얇으면서 넓은 면적의 개구부는 입구를 상징적으로 강조하며, 순수한 형태의 조각과도 같은 외부조형은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건축적 특성 요소들을 통하여 극적으로 동선을 처리하고, 풍부한 빛을 실내로 유입시킨다. 또한 그의 작품은 아트리움(atrium, 중앙의 넓고 높은 홀)이나 위층 또는 아래층으로 뚫려 있는 공간에 의해 강한 개방감을 확보하게 되어 더욱 투명하면서 순수해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은 설계원칙을 가지고 디자인되고 있다.
기하학(geometry)적 해결,
구조(structure)의 독립성,
선명한 동선(circulation)과 대칭적 수직 동선 처리,
건물의 컨텍스트(context),
명확한 프로그램(program),
건축의 요소들(elements),
형상과 배경(figure ground),
솔리드와 보이드(solids vs voids, 막힘과 뚫림)의 대비,
대지와의 관계(site relationship) 등의 원칙을 논리적으로 작품에 적용하고 있어 그의 작품은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기하학적 요소는 평면뿐 아니라 건축물 전체의 형태에도 큰 영향을 나타내며 심지어는 공간 속에서도 느껴지는데, 공간자체에도 솔리드와 보이드, 개방감과 폐쇄감, 사적 영역(private area)과 공적 영역(public area) 등의 공간 개념을 강하게 대비시켜 긴장감을 부여한다.
컨텍스트(context), 즉 대지와의 관계는 평면과 입면의 기하학적 형태나 스케일, 외부 전망의 이입 등에 의한 기존 건축물이나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의 다른 특색은 빛을 충분히 활용하여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되고 절제된 공간을 창출해 낸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에는 마이어 자신을 포함하여 꼬르뷔제의 영향을 받은 젊은 건축가 다섯 명이 '뉴욕 파이브'라는 칭호를 받으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함께 백색건축을 모체로 하여 출발하였으나 그 중 4명은 모두 다른 길로 가고 마이어만이 아직까지 한 길을 고수하고 있다. 마이어는 실무를 시작한 지 10년 동안 7개의 주택과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을 설계하였고, 「벨 전화연구소」를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개조하였으며, 다른 사무실과 연계하여 헬스센터를 설계하기도 하였다.
그는 단독 주택뿐 아니라 상점 건축, 공장, 병원, 교육시설, 사무소, 미술관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하여 미국건축가협회(AIA)상과 주택상, 그리고 로마와 밀라노에서 주는 건축상을 받았으며, 1984년에는 건축 부문의 노벨상이라고 할 프리츠커(Pritzker) 건축상4)을 수상하였다. 또 다른 상으로 1998년 AIA 골드 메달, 2000년 AIA상 등을 수상하였다.
작품 활동을 하는 바쁜 중에도 건축 교육을 위해 모교인 코넬 대학을 비롯하여 하버드(Harvard), 쿠퍼 유니온(Cooper Union), 프렛(Pratt), 프린스턴(Princeton), 시라큐스(Syracus), 예일(Yale) 등 많은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일하였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르 꼬르뷔제의 이론을 추종하고 있어 그의 건축 작품 원칙 즉, 지면을 해방시키고, 진입부를 개방시키기 위한 필로티(Pilotis)5)의 사용, 구조로부터 벽을 독립시키기 위한 캔티레버(Cantilever)6)의 사용, 자유스러운 평면 또는 곡면, 원색, 옥상 정원, 경사로, 천창(Sky light) 등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고 있다.
또한 마이어는 당시 하버드 대학 주임교수인 교육자이자 거장인 월터 그로피우스나 IIT 대학 주임교수인 거장 미스의 가르침과 미스가 설계한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1957)의 구조를 통하여 그의 초기 미적 형성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마이어의 작품은 명료하면서도 복합적이고, 세련되면서도 힘이 넘치는, 그리고 합리적이면서도 시적이다. 그의 일관된 스타일이 그를 동시대 건축가들 사이에 가장 일관성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그의 질서 정연한 기하학적 성향은 그의 성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컨텍스트에 의해 변화축을 갖는다.
마이어는 고대 그리스 사원에서부터 팔라디오의 16세기 빌라의 조명이나, 남부 독일의 빛으로 가득 찬 바로크식 성당, 르 꼬르뷔제의 기하학적 요소 등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정수들을 미국으로 흡수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유럽에 건축된 그의 작품은 미국 특유의 명확함과 활력이 나타난다.
그는 '근원(sources)'에 대한 토론에서 역사에 대한 그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건축은 과거와 관련이 있다.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곳에는 공간을 다루는 방법이 있고, 우리는 삶을 통해 그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르 꼬르뷔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리고 알바 알토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만큼 베르니니(Bernini)와 보로미니(Borromini), 그리고 브라만테(Bramante)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1930~1940년대의 근대 건축과 오늘날의 근대 건축이 서로 다른 점이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건축의 역사와 연계되어 있으며, 또한 불행히도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 없는 인간의 실용적 관심과 연결되어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공간을 만들어내고 또 그 공간창조를 위한 수단을 만들어내는 방식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점이다."
마이어 작품에 나타나는 변화의 축을 의미하는 도안
1997년에 개관된 「게티센터」는 지금까지 그의 백색건축 스타일에서 벗어나 유럽의 전통과 그의 미국적 감성을 융합시킨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건축이념을 지키면서 그가 추구하는 '차분하고 질서있는 절제된 문화의 오아시스'를 만들어냈다.
「게티센터」에 나타난 유럽풍 양식이 미국 특유의 명확성으로도 보인다.
백색건축의 찬미자인 마이어는 1984년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 연설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건축관을 피력하고 있다. "나의 작품은 빛과 공간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이는빛, 휴먼스케일(human scale, 人間尺度)7), 건축 문화와 연관된 질서와 정의의 공간 창조이며, 볼륨과 스킨(volume & skin)8), 빛의 행위, 규모의 변화, 운동과 정지를 이용한 작업이다." "내가 사용하는 자료(source)들은 건축사(史)와 관련되는 것이나 나의 건축 언어와 표현은 건축사에 있는 그대로가 아닌 주관적이고 순수한 건축적 접근으로부터 이루어진다. 건축사를 중요시 한 것은 불변성, 연속성, 우수성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나의 명상은 본질적으로 공간과 형태와 빛,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건축에도 감성과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당시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들도 심사평에서 "조화로운 공간과 실험으로 명확성을 추구한 그는 생기있고, 독창적이며, 개성있는 건축을 디자인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결국 공간, 형태, 그리고 빛이다. 그의 목표는 환상보다는 현실이다. 왜냐하면 건축의 영혼과 정신을 과거의 건축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본질적으로 생명력과 인내를 함유한다. 그는 작품의 본질을 궁극적으로 무한한 전통 문화로부터 찾았고, 인간의 질서를 끊임없이 정의하여 자신의 건축 스타일로 만들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옛 건물의 양식을 흉내 내기보다는 그 스케일을 고려하는 특성을 가진다. 그 좋은 예로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과 같이 기존의 건물이 가지고 있는 스케일을 그대로 자기 작품에 반영하여 기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 점을 들 수 있다. 1980년 가을 하버드 대학 초청 강연 내용에서도 그는 '무엇을 해 왔는가(what has been)'와 '무엇을 할 수 있는가(what can be)'와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했으며, 현재성과 영원성을 모두 과거 문화에서 발췌하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