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3.7~1944.2.1)
네덜란드의 화가이며 칸딘스키와 함께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수평과 수직으로 대표되는 이원론을 중심으로 신조형주의 이론 완성하고 질서 및 조화와 균형미를 추구했다.
Red Tree, 1908, Oil on canvas, 70 x 99 cm (27 1/2 x 39 in), Haags Gemeentemuseum, The Hague ● 붉은 나무 몬드리안은 자연의 형태를 점차적으로 단순화함으로써 자신의 특징적인 스타일에 도달하였다. 파리에서 입체주의 영향아래 그림을 그렸던 1911~12년 사이에 나무를 그린 연작을 보면 재현적인 회화에서 추상적인 회화로 전이해 가는 과정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각 작품의 소재는 잎이 다 떨어진 나무이다. 초기작품인 <붉은 나무>1908에서는 나뭇가지가 뻗어있는 모습과 두터운 밑둥으로 나무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후기작품을 보면 나무를 거미줄같은 선으로 분해시켜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림의 균형을 맞추는 데 선 사이의 공간이 선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Gray Tree, 1911, Oil on canvas, 78.5 x 107.5 cm (30 7/8 x 42 3/8 in), Haags Gemeentemuseum, The Hague
Flowering Apple Tree, 1912, oil on canvas, Collection Gemeentemuseum Den Haag.
<검정과 흰색의 구성 No.10:부두와 해양>(1915). 캔버스에 유채, 85×108cm, 오테를로, 크뢸리-뮐러 미술관. ● 10번 구성: 부두와 해안 pier and ocean 여기서 전통적인 투시법은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위해 제거 되었는데, 이 공간에서는 대기 효과가 사라지고 그림 표면만이 선적인 형태의 리듬감 있는 패턴을 이루며 박동하고 있다. <양과 음의 구성> 이라고도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형태적 요소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 ● 구성 2 그의 화면에는 보편적인 조형 요소인 수평과 수직선만이 남았으며 색채도 빨강, 노랑, 파랑의 삼 원색만 남았다. 명암으로는 무채색인 검정과 흰색, 회색이 남아 명도를 조절했다. 그는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자 신의 메시지를 이 와같은 작품으로 보여준다. 몬드리안의 고정 주제가 된 수평과 수직선은, 수평은 여성성이고 수직은 남성성이라는 이원적 요소로 몬드리안 스스로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남성적인 원리가 수직선이기 때문에 남성은 이러 한 요소를 숲의 상승하는 나무들에서 인식할 것이 다. 그는 그의 보충을 바다의 수평선에서 본다." 모든 것을 대립되는 두 요소로 설명한 몬드리안은, 이 대립이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조화 를 회화의 기본 법칙으로 삼았다.
<빨강, 회청색, 노랑, 검정, 파랑의 구성>(1922). 캔버스에 유채, 54×53.5cm, 몬테카를로, 개인 소장. ● 빨강, 회청색, 노랑, 검정, 파랑의 구성 (*작품 제목의 '색' 순서에 따라 작품이 다르더라..) <빨강, 회청색, 노랑, 검정, 파랑의 구성>을 보면 매우 추상적인 그림이면서도 거기에 매우 다양한 리듬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듬이란 강도의 분포이다. 몬드리안은 화면에 강도를 리듬 있게 분포시키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화면을 가득 메운 빨강, 한 구석에서 단조로움을 깨는 노랑과 파랑(이들의 배분 또한 다르다), 그리고 다양한 강도의 회청색들이 적절한 리듬(강도의 분포)을 이루고 있다. 왼쪽 수직선은 화면의 끝에 닿지 않고 약간 떠 있으며, (옆으로 긴) 아래의 칸은 검게 메워져 있다. 그리고 화면 전체를 선으로 닫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은 바깥을 향해 열려 있으며, 그것이 화면 전체에 개방성과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43). 캔버스에 유채, 127×127cm, 뉴욕, 현대미술관.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평생 추상을 추구한 몬드리안이었지만, 말년의 그에게 현실의 무게는 좀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몬드리안은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다음해인 1940년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뉴욕이라는 도시, 특히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건물들, 쭉쭉 뻗은 거리들, 수직으로 높이 솟아오른 고층 빌딩들 등등이 그에게 강렬한 영감을 준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현실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던 그가 (사실상 전쟁 특수를 통해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이라는 곳에서 해방감을 느낀 것은 얄궂다. 어쨌든 그로부터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43) 같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이 그림에서는 이전의 그림에서 볼 수 없었던 현실과의 상응성이 나타난다. 초월을 꿈꾸던 몬드리안은 가장 세속적인 거리들 중 하나인 브로드웨이에 매료되었으며, 물질성과 운동성을 벗어나려 했던 그가 ‘부기우기’라는 운동성에 매료된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색깔 또한 그가 늘 쓰던 색깔들만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학적 일관성을 느낄 수 있다. ● '몬드리안'의 응용
위의 옷은 Y.M.생로랑이 1965년 파리 컬렉션에서 발표한 몬드리안 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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