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개의 박물관 중의 하나는 빠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입니다. 다른 두 개의 박물관은 대영제국 박물관과 로마교황청의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루브르 박문관의 가장 중요한 전시품은 말할 것도 없이 모나리사의 초상화일 것입니다. 제가 모나리사의 초상화 앞에서 멋지게 사진을 한장 찍으려고 했으나 그 앞에 모여든 인산 인해의 관중으로 인하여 근처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한탄하는 저에게 동행한 사진 전문가 한분이 염려말라고 하고 귀국후에 정식으로 찍은 모나리사의 사진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문 사진가가 찍은 모나리사의 초상화를 컴퓨터의 사진 첩에 갖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 모나리사의 초상화가 왜 그렇게도 위대하고 인기가 있는 지를 저는 잘 모릅니다. 예술적인 눈이 뜨지 않아서 그렇겠지요. 관광단의 일원으러 빠리를 가시는 분들은 관광회사 직원들이 잘 알아서 일정을 잡아 주겠지만 개인 적으로 빠리를 가시는 분들은 화요일에는 르브르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점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그 박물관에는 렘브랑 (Rembrandts) 과 엘 그레코 (El Grecos)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도 많습니다만 90%의 방문객들은 입장하자마자 곧바로 모나리사의 초상화로 향한다고 합니다. 그 초상화에는 한시간에 평균 1500명이 관람을 한다고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사에 관한 선물을 연간 33만 개나 판매를 합니다.
모나리사의 초상화는 1963년에 미국을 잠시 방문했고 1974년에 일본에 두 달간 전시된 경우를 빼고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연속 전시가 되어 왔습니다. 물론 그 전에 나폴레옹이 그 그림을 가져다가 자기 침실에 4년 동안 걸어 놓았던 적도 있었고 1911년 8월 21일에는 이탤리인이면서 르브르 박문관의 직원이었던 빈센조 페루기아 라는 사람이 모나리사의 초상화를 훔쳐다가 이탤리로 가져 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 사람은 체포가 되었고 모나리사의 초상화는 1913년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 이탤리인이었으니 그 그림은 이탤리 그림이라고 믿은 사람이 이탤리로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그런 보물과 범인을 프랑스에 넘겨준 이탤리는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일본보다 한층 높은 문명국이었습니다.
모나리사의 초상화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도가 지나쳐서 모나리사에 보내는 팬 레터가 하루 평균 한장 정도로 도착을 한다고 합니다. 그 그림에 돌을 던진 사람도 있었고 산을 뿌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보물을 잘 간수하기 위하여 새로 꾸며진 특수실에 전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그림이 자리를 옯긴 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사를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박물관측은 이미 6천개의 관광회사들에게 통지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모나리사를 보러 왔다가 빈자리에 공고문만을 보고 노여워서 데모라도 할 우려를 박물관측은 한 것이었습니다.
모나리사는 마돈나 리사를 줄여서 시용하는 칭호입니다. 학자들이 믿고 있는 바에 의하면 1503년에 풀로렌스에 사는 부호 상인인 프란체스코 델 기오콘도 (Francesco del Giocondo)가 자기의 세번째 아내인 24세의 리사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레어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를 했다는 것입니다. 레오날르도는 4년 간에 걸쳐 그 초상화를 완성했는데 왜 그 완성한 초상화를 프란체스코 델 기오콘도에게 전달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불가사이라고 합니다. 레오날드 다빈치는 1516년에 그 초상화를 갖고 프랑스로 이주를 했습니다. 1519년에 그 가 사망을 할 당시에 그는 그 초상화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모나리사의 초상화는 에펠탑과 마찬기지로 영구히 빠리에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술 작품을 이해하든 못하든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은 모나리사의 초상화를 보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걸 보면 그 작품이 위대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글쓴이: 홍병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