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금)
05:30 기상. 자리에서 일어나니 술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머리가 무겁고 목이 아프다. 감기 증세가 느껴진다. 차창 밖은 아직 어둠에 쌓였다. 도착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더니 열차는 계속 달린다.
06:40 하늘이 밝아온다. 부사왈이 가까워졌다고 하차 준비를 하라고 한다. 예정시간보다 많이 연착되었다고 한다.
06:55 부사왈 역에서 내렸다.
07:00 버스에 승차하여 아잔타 쪽으로 출발하다.
여기는 데칸고원지역으로 해발 평균 400m가 넘고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이 지역에서는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곳이며 주생산 품목은 목화이며 바나나 옥수수 등이 제배된다고 한다. 인도는 히말라야산맥·인도대평원(타르사막)·데칸고원·해안과 도서의 4대 지형구로 되어 있다. 데칸고원 ( -高原 Deccan Plateau )은 인도 남부의 반을 차지하는 고원이다. 데칸이란, 산스크리트의 다크시나(남쪽)이며 원래는 아리아인 지배지의 남쪽, 즉 나르바다 강 이남의 고원을 가리킨다. 면적은 약 160만㎢에 달하며, 대부분의 평원지대와 잔구(殘丘)가 연속되는 고원이다.
서고츠산맥은 고원의 서단에서 남북으로 달리면서, 아라비아해(海) 사면과 벵골만(灣) 사면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룬다. 隆起가 우리나라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태를 이루는 것과는 반대로 서고동저(西高東低)이므로 고원 위를 흐르는 고다바리·크리슈나·고베리 강 들은 모두 동류(東流)하여 남부 벵골 해(海)로 흐른다. 북쪽 가장자리에는 나르바다 강 골짜기와 빈디아·삿푸라 양 산맥, 남쪽 가장자리서는 팔가트지구가 형성되었다. 북서부는 약 50만㎞²의 용암대지를 형성하였고, 현무암 분출에 의한 검은색 흙이 두껍게 분포한다. 이 토양은 비옥하며 보수력(保水力)이 좋으므로 목화나 각종 세립(細粒) 곡물이 재배된다. ,. 데칸고원은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서, 오래된 지층으로 구성되어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07:40 호텔에 딸린 식당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하였다.
Hotel Mabendra Jalghon(Maharashtra)
지배인 Shambha Anand(Hindu)
지배인에게 이 지역명을 물었더니 호텔명과 자기 이름까지 적어주면서 이곳에 다시 오게 되면 꼭 들리라고 한다. 그리고 인도를 방문하는 한국 여행객들에게도 널리 선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컵에 짜이(?)를 부어 준다.
08:50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아잔타로 가는 길도 파손된 곳이 많아 불편하였지만 도로 확장 및 보수공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얼마가지 않아 도로사정이 좋아질 것 같다. 고원(高原)지대라서 그런지 날씨가 맑고 시야가 멀리까지 미치고 시원하다. 고원지대라는 선입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건조한 것 같다. 길 양편으로는 목화밭과 알수 없는 작물을 재배하는 밭이 끝없이 나타난다.
버스 옆으로 소 떼가 지나갔다. 소의 뿔이 크고 길며 위로 솟았다가 안쪽으로 휘어졌다. 소가 덩치도 크고 생긴 모양이 힘이 있어 보인다. 소 떼가 지나간 후 얼마 가지 않아서 마부가 소를 몰아 달구지를 끌고 갔다. 두 마리의 소가 한 조가 되어 짐을 가득 실은 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은 그림이나 영상매체를 통하여 눈에는 익숙하지만 직접 보는 느낌은 새롭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눈이 못다 미치는 넓은 목화밭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신작로, 수확한 목화를 가득 싣고 여유롭게 지나가는 달구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덩치가 큰 가로수, 목화밭 사이사이에 솟아있는 고목들이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인도 데칸고원지대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이 여행객의 눈에는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낭만의 세계로 생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어느 소읍을 통과하였다. 이곳에서는 거리에 거지들이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거리도 비교적 깨끗하였다. 또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던 인도인들은 외국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하여 우리가 탄 버스가 정차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를 구경하려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 소도시에서 우리 일행 중 몇 분이 물건을 사기 위하여 상점에 들어간 분도 있었고 전화를 걸기 위해서 버스에서 내린 사람도 있었고, 또 버스에 그대로 앉아서 시장 거리와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가면서도 쳐다보지도 않고, 관심도 들어내 보이지 않았다. 시장에 거리를 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흰옷과 흰 모자를 썼다. 이곳에는 힌두교 원리주의자들과 자인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0:10 얕은 산줄기가 우리가 가는 길을 가로 막아 섰다. 가로변에 일군의 원숭이 떼가 나타났다. 사람들로부터 먹을거리를 바라는지 우리가 탄 버스를 주목하면서 앉아있다.
10:15 아잔타(Ajanta) 석굴 진입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젊은 사람이 따라오면서 한국말로 자기 가게에 들러서 기념품을 사라고 졸라댄다. 아잔타를 찾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접촉하여 습득한 우리말치고는 꾀 잘한다. 한국말을 하는 인도인이 대견해 보여서 한국말을 참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었더니 확실한 자기 고객을 확보해 놓은 것처럼 나에게 붙어 다닌다. 그리고는 작은 수정덩어리를 들고 아잔타 최고의 관광 기념품이라고 하면서 싼값에 팔겠다고 한다. 살 마음이 없다고 하니까 값이 내려간다. 삼천 루피가 오백 루피로 내려갔다.·기념품 살 마음도 없는데다가 값이 곤두박질치는 것도 그렇고 하여 그의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인도 상인들의 끈질긴 구매요구에 자신감을 잃은 나는 땅만 내려다보면서 갈아타야 할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버스를 탈 때까지 따라붙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여기서부터 석굴입구까지는 다른 대형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10:40 석굴을 향하여 버스가 출발하다. 버스에는 배낭여행을 온 각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 젊은이들도 만났다. 좌우로 산을 낀 협곡으로 약 20분가량 들어가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잔타 석굴 사진 책자를 턱밑에 들이대고 사라고 졸라댄다. 인도 관광지 어디를 가나 그 장사꾼들이 설쳐대는 모습은 비슷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산 중턱으로 올라서면 제1석굴부터 제28석굴까지 안쪽으로 휘어진 활처럼 이루어진 산 중허리에 자리 잡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석굴 아래쪽에는 와고라 강이 U자형으로 흐르는데 건기(乾期)라서인지 흐르는 물의 양이 아주 적어 보인다. 아잔타 석굴은 석굴이 있는 산과 맞은편의 산 사이에 강이 흐르고 협곡인데다가 깊은 산속 외진 곳에 위치하여 옛날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싶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것 같다.석굴은 산 중허리에 형성된 띠를 두룬 듯한 화강암층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암석은 검은 재색을 띠는데 제주도에서 본 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