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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담

[기억속으로][그리고 그 어딘가] 길고 긴 아름다운 ‘엘로라’ 석굴

작성자이키리아|작성시간07.09.28|조회수342 목록 댓글 0

2007년 1월 22일

 


 “엘로라요? 세 시간이면 충분히 다 본다고 하던데.”


 어제 길거리에서 만났던 한 한국인 관광객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엘로라라는 존재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그분의 말은 그 당시에는 전부였으나 우리의 눈으로 길고 긴 굴들을 보고 난 후 우리는 그분이 들었던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엘로라, 아름다운 이름. 어째서 ‘엘로라’라고 칭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엘로라로 들어가는 커다란 길 앞에 서서 석굴들을 바라보는 나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이름에서 연상되었던 것이겠으나)‘엘도라도’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엘도라도는 ‘황금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돌로만 가득한 엘로라 석굴과 어울리지 않는 의미였지만, 길고 긴 석굴들을 보면 개척자들이 비단 엘도라도가 아닌 이곳으로 황금을 캐러 와도 좋을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로라 사원은 아잔타 석굴과 함께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엘로라가 특이한 점은 유일하게 세 가지의 종교가 공존한다는 것인데, 34개의 석굴 중 1번부터 12번까지는 불교 사원, 13번부터 29번까지는 힌두교 사원, 그리고 나머지 30번부터 34번까지는 자인교 사원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인도 종교의 다양성을 보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로 손꼽곤 한다. 각각의 종교가 상징하는 바가 다르고 모시는 신이 다른 것만큼 각각의 석굴 내부에 새겨진 조각과 그 조각의 모양들도 불교, 힌두교, 자인교 모두가 달랐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우리는 가장 처음인 1번, 불교 사원부터 시작해서 유일하게 입장료가 있는 16번 사원(인도의 최고신인 시바신을 모신 사원으로 힌두교의 가장 빼어난 건축물로 대접받고 있다고 한다)까지 호흡을 가쁘게 쉬며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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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신가요? 이 아이들을 가르치시나요?”


“네! 제가 선생입니다. 이 아이들은 내 학생들이죠.”


“와, 안녕 얘들아, 선생님 죄송하지만 사진 한 장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 그럼요. 얘들아 이쪽에 와서 이렇게 서봐, 사진찍자!”


“감사합니다!”


 귀여운 교복을 입고 마치 유적지 답사를 온 듯한 작은 여학생들 무리를 만났다. 신기한 듯 우리를 바라보는 조그만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악수도 나누며 그들의 선생님처럼 보이는 한 청년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인도에서 늘 그래왔듯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영어로 내게 능숙하게 이야기하는 선생님을 입을 벌리고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눈망울이 무척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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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학생들과 나, 앞에 수줍게 앉아있는 숭훈이)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으므로 땀은 계속해서 비 오듯 쏟아졌다. 바지를 당장 벗어 던지고 싶은 생각을 거듭해서 하며 열여섯 번 째 사원 앞에 다다랐다. 어떻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높은 석굴의 내부에는 촘촘히 인도의 신들과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으며 어떤 방은 굉장히 넓게, 또 어떤 방은 작지만 무언가 가득 차 있는 듯 하나하나가 정교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입장료가 결코 싼 편은 아니었으나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입을 벌어지게 하는 16번째 사원의 높이를 계속해서 가늠하며 그늘에 등을 기대 잠시 쉬기로 했다. 앞서 갔던 상화와 숭훈이는 저만치 멀어져 이미 2층, 3층을 돌고 있었고 나는 내 옆에 거대한 시바신의 조각을 보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재작년에 들렀던 에페스 유적지가 생각난다. 왕복 10km는 훨씬 넘을 거리를 친구와 함께 다리가 부을 정도로 걸어 다녔었는데, 나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지난 십 수 년 동안 열을 올렸던 그리스-로마 신화의 산 증거지인 에페스에 방문하는 것이었으므로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친구를 부추기며 그곳을 활보했었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곳도 그때의 에페스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리스 신화만큼 누구에게도 견주어 지지 않을 정도로 인도의 신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지만 인도에 와서는 미리 알고 있던 지식보다 배워 나아가는 지식도 의미가 있고 재미있다는 것을 매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눈에 띈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 조금 소란스러워질 무렵,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시바신 곁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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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라, 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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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게 아름다운 16번째 사원)

 


 인도에서 거리를 걷다보면 유독 많이 보이는 작은 조각들이 있다. 그것의 모양은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아래에 놓여있고 거대한 그릇모양을 하고 있는 받침대였고 다른 하나는 그 받침대의 중앙 위에 안전하게 올려져 있는 원기둥 모양의 돌이다. 아래의 돌은 여성의 성기(Vagina)를 뜻하고, 위의 돌은 남성의 성기(Penis)를 뜻한다. 인도인들은 이것을 매우 신성시하게 여겨서 매일 누군가는 그 돌을 청소하고 닦고 때때로 행사가 있을 때 꽃을 올려놓고 기도하곤 한다고 한다. 이 두 개의 형상을 나는 엘로라에서 굉장히 많이 보았는데,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마다 빠지지 않고 놓여 있는 이 돌들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남성과 여성의 결합에 의미를 두는 지 알 수 있었다. 16번 사원 군에서 나와 상화에게 이것을 설명해주던 남자는 굳이 에로틱 사원을 보러 카주라호까지 갈 필요 없이 ‘카마수트라’가 이곳에도 존재한다며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열심히 말을 건넸다. 비록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역시 우리에게 소액의 돈을 요구하긴 했지만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난 뒤 우리의 기분은 한층 행복해졌으므로 상화와 나는 흔쾌히 그에게 10Rs씩을 주었다. 웃으며 돌아서는 자칭 ‘가이드’에게 고맙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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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를 비유하는 두 개의 돌)


 때때로 박쥐의 울음소리도 듣고 그와 함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들어가며 구름 한 점 없는 엘로라 ‘산맥’을 우리는 계속해서 넘었다. 불교 사원부터 시작할 때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흘렀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마지막 사원인 40번, 자인교 사원까지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간단히 목을 축이고 다시 발을 옮긴 우리는 보기에도 더워 보일 정도의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힌두교 사원을 지나 자인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돌연 28번 석굴을 지나 29번 석굴로 가는 길에 놓인 거대한 호수와 절벽이 잠시 우리를 주춤하게 만들었는데, 문제는 절벽위로 충분히 위태로워 보이는 협소한 길이었다. 신고 있던 샌들을 신고 가다가는 미끄러질 것 같았고 신고 오라면서 운동화를 주고 자신은 쏜살같이 달려가 버린 맨발의 선동오빠를 보고 있자니 저 운동화를 편한 듯 신을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운동화를 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떤 외국인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보기보다 별로 안 위험해요. 그 샌들만 벗으면 괜찮을 걸요? 그걸 신고 가다 미끄러질 것 같은데, 차라리 맨발이 나아요. 나를 봐요.”
 자신의 발을 보여주며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샌들을 벗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샌들을 벗어들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상화는 나보다 더욱 난감해하며 조심스럽게 나의 뒤를 걸어왔고 햇볕에 달구어진 뜨거운 돌을 성큼성큼 밟고 지나가려니 빨리 발을 내딛지 않으면 발바닥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상화와 나는 그 절벽을 지나갔고 이윽고 나온 29번 석굴 앞의 긴 계단에서 우리는 풀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발바닥은 여전히 뜨거웠고 나는 앉아있으면서도 위험하지는 않을까 싶어 샌들을 신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발목을 어루만지니 순간 오른쪽 발등 위로 미세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프진 않았지만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이제 슬슬 움직이자고 재촉하는 숭훈이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샌들을 다시 신고 그들을 뒤쫓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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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번 사원에서 나와 드디어 기다리던 목적지, 자인교 사원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불교와 힌두교 사원은 붙어있는 데 반해 자인교사원은 풀숲을 지나 한참 가야 그 모습을 빼꼼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으나 현존하는 종교 중 가장 오래된 종교이고 인도의 경제와 상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종교라고만 알고 있는 자인교 석굴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도로와 돌, 풀 위를 걷고 또 걸었다. 자인교 사원의 첫 머리인 30번 사원의 몸통이 확연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나는 재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돌 머리에 풀썩 주저앉아 지친 다리를 두들겼다. 생각보다 작고 별다른 것 없는 자인교 사원을 눈대중으로 훑어본 뒤 ‘조금 더 자이나교에 대해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사원 입구에 놓인 거대한 코끼리 조각을 바라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모두 너무나 지쳐있었고 너무나 허기져있었다.


 “뭐가 제일 먹고 싶어?”


 “탕수육! 아, 삼겹살 먹고 싶다, 한국가면 실컷 먹어야지.”


 “고추 잡채 꽃빵에 찍어 먹고 싶어.”


 “꽃빵이 뭐야?”


 “왜 있잖아, 꽃빵 몰라? 중국집가면 밀가루 이렇게 둘둘 말아서 만두같이 생긴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그거 맛있어?”


 “응! 그거 그대로 먹어도 맛있긴 한데 밍밍해서 어디 찍어먹어야 맛있어.” 


 “난 보쌈 먹고 싶다. 김치도! 따끈따끈한 보쌈이랑, 겉절이!!”


 “라면도 생각나, 소주도 그립군. 왜 이렇게 먹고 싶은 게 많지? 우리 배가 너무 고픈가?”


 “아아, 갑자기 먹고 싶은 게 밀려오네! 숭훈아, 전주가면 맛있는 거 사주는 거야?”


 “그럼, 전주 음식이 제대로지. 우리 가게 오면 고기는 원없이 줄께!”


 “전주, 전주, 전주! 아, 배고프다.”


 모두들 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 숙소로 돌아가는 뜨거운 도로 위로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쏟아냈다. 우리는 그렇게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한바탕 웃으며 이런저런 음식 이야기를 하고 뭐가 맛있는데 이건 좀 아니라는 둥, 마치 한국에서 점심을 뭐 먹을까 궁리하는 것처럼 실컷 떠들어댔다. 그렇게 우리는 엘로라에 도착하고 다섯 시간을 넘기고 나서야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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