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군대 입영을 앞두고 있으니 불현 듯 30년 전의 군대시절이 생각난다. 필자는 육군으로 입대해 6주일간의 신병훈련을 받고 30개월의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30개월의 군대생활 가운데 가장 힘들고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신병훈련소 시절이었다.
사회에서 천방지축으로 놀다가 군대에 들어가 통제된 생활 속에서 또래 전우들과 고된 훈련을 받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다가 생전에 받아보지 않았던 군사훈련은 심신을 지치게 만들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또래들과 같이 합심해 적응하니 제식훈련, 유격훈련, 각개전투, 총검술 등 온갖 훈련도 견딜만했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들의 위문편지는 군대생활을 꿋꿋이 버티게 하는 보약 같은 존재였다. 고향에서 보낸 사랑하는 가족의 편지를 읽으며 향수에 젖어 눈물을 흘렸고, 다정했던 친구들의 따스한 위로의 말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일당백 정신으로 무장된 전사가 되기 위해 몸과 정신을 연마하는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나의 어깨에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행복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열심히 훈련에 매진해야겠다는 신념이 봄날의 새싹처럼 피어올랐다.
우리 신병들을 이끌고 훈련시키는 교관이나 조교들은 호랑이처럼 무서웠고 내무반 반장은 따스하지만 때때로 무서운 얼굴로 군기를 잡았다. 전쟁에서의 실수는 바로 죽음이라며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말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갖가지 임무를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 신병들은 잔뜩 겁을 먹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생각으로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
6주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퇴소할 무렵에 하사인 내무반장이 자신의 군대생활을 추억으로 남기겠다며 모든 신병에게 그림이나 글씨 등 작품을 하나씩 제출하게 했다. 나는 무얼 제출할까 고민하다가 내무반장 이름으로 3행시를 하나 지어 제출하기로 했다.
내무반장 이름은 하사 ‘황동익’이었다. 그래서 “황폐한 땅을 낙원으로 가꾸어, 동녘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며, 익살스레 한 세상 살아갈까 하노라.”라고 지어 사인펜으로 그림을 곁들여 제출했다. 그랬더니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입대할 아들을 보니 문득 그 때가 생각나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