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로 가는 길 – 다시 친일재산귀속법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孫婦) 허은 여사는 구술 회고록을 남겼다(‘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회고록은 만주 시절 이웃 사람 ‘정해붕’을 얘기한다. 해방 후 만주 서란현 동포들이 인민재판으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이른바 친일파이다. “당시 열서너 살쯤이던 정해붕의 맏이는 해방 후 서울에 들어와 산다고 들었는데, 지금쯤 자기네 아버지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오히려 큰소리치며 살고 있지나 않을지.”
회고록에는 온갖 일상이 묻어있다. ‘조선인이 일본군을 만주로 끌어 들였다’는 이유로 중국 군인들이 조선인 부락을 약탈했고, 봉천 육군 패잔병들은 나무하러 간 동네 사람 70명을 다섯 칸짜리 집에다 한데 모아 놓고 모두 죽였다고 했다. 동네를 보호한다고 민병을 만들더니 그들의 패악질도 그놈이 그놈이었고, 독립운동 단체가 군자금을 걷어가면 “일본놈 보기 싫어서 만주 왔더니 농사지어 놓으면 군자금 한다고 다 뺏아간다”고 퍼붓는 ‘무식한 아낙’(?)도 있더라고 했다.
6월 2일자로 친일재산귀속법 개정안이 공포되어 6개월 뒤 시행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논쟁 끝에 친일재산귀속법이 입법되었었다. 해산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고 친일 재산의 환수범위를 ‘처분 대가’까지로 확대하나 보다.
헌법 제13조는 소급입법을 금지한다(제13조 ②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2004년의 반민족규명법과 2005년의 친일재산귀속법은 전형적인 소급입법이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헌법전문의 ‘3·1 운동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근거로 반민족규명법과 친일재산귀속법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다행히 반대의견이 있었다. 재판관 이강국과 조대현은, “헌법전문에서 선언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부문만을 내세워 헌법 제13조 제2항의 명문규정에 반하는 해석을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고 비판했다.
반민족규명법에 의해 제헌헌법의 ‘전문’을 작성한 유진오도, 1948년 반민법 특별재판소에 의해 이미 ‘무죄’를 선고받은 박흥식·김연수도,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도, 2대 부통령 인촌도, 장덕수·김활란도, 노기남 주교도 망라적으로 국가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됐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이재명 정부는 재산권 박탈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벼른다. 헌법전문으로써 강고한 헌법 본문을 깨겠다는 발상은 ‘근대의 부정’이다. 도처에서 암약하는 ‘정해붕’이 중세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고자 안간힘을 쓰는 양상을 목도한다.
펌)홍승기 변호사 페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