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으로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쥐고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청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넷플릭스의 디스토피아 스릴러나 삼류 병영 부조리극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26년 6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의 예비군 훈련장에서 국가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차갑고도 기괴한 실제 상황이다.
사건의 전말을 건조하게 쪼개어 보자. 훈련 첫날 점심으로 제공된 제육볶음 도시락을 먹은 예비군 89명이 집단으로 복통과 설사 증세를 호소했다. 상식적인 국가라면 즉각 급식을 중단하고 환자들을 격리해 치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재명 체제의 군대는 달랐다. 그들은 식중독에 걸린 청년들에게 지사제 몇 알을 쥐여주며 "위에서 그냥 하는 게 좋겠다고 하니 훈련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다음 날에도 '업체와의 계약'을 핑계로 똑같은 도시락을 또다시 배식했다.
우리는 이 그로테스크한 텍스트 이면에 흐르는 군에 대한 자세를 읽는다. 그것은 국가가 청년의 목숨과 건강을 대하는 지독한 경멸이다. 계약이라는 행정 편의주의와 상부의 지시라는 맹목성 앞에서, 개인이 겪는 육체적 고통은 그저 무시해도 좋은 사소한 결함으로 취급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군대의 기강 해이나 행정 착오가 아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가 개인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톱니바퀴나 소모품으로 다루는, 가장 노골적이고 완벽한 전체주의적 폭력의 현장이다.
현역또한 마찬가지지만, 애초에 예비군은 민간인의 희생을 담보로하는 곳이다. 도대체 무슨 깡다구인건가?
좌파의 서늘한 이중잣대와 내로남불을 상상해보자. 만약 대기업 공장 식당에서 89명의 노동자가 쉰내 나는 고기를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렸는데, 사측이 "계약 때문이니 오늘도 똑같은 밥을 먹고, 지사제를 삼키며 기계를 돌리라"고 강요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재명과 민주당, 그리고 민노총은 당장 '자본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라며 핏대를 세우고 광장으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악덕 기업이라며 국회 청문회를 열고 기업 총수를 불러내 조리돌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자본가가 아니라 '국가'가 될 때, 그리고 그 피해자가 강제로 징집된 '2030 청년'들이 될 때, 인권과 생명을 그토록 신성시하던 좌파 카르텔은 쥐죽은 듯 침묵한다. 이재명 치하의 군대에서 청년의 인권은 촛불이 든 종이컵보다도 가볍다. 국가의 부름에 응하다 쓰러져간 예비군 소식이 불과 한달도 안지났다. 군인이 예비군이 무슨 비품인가? 이게 바로 그들이 떠들어대는 인권의 진짜 해상도다.
이재명은 틈만 나면 전 국민에게 25만 원을 뿌리며 '기본사회'라는 달콤한 환상을 팔아먹는다. 그러나 그 배급표를 쥐여주는 그 손의 뒷면을 보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달려온 청년들에게 안전하고 온전한 5천 원짜리 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것이 이 정권의 진짜 실력이다. 배식을 독점한 국가가 썩은 고기를 먹이고, 병든 몸을 강제로 굴리며, 계약을 이유로 항의하는 입을 틀어막는다.
이것만봐도 배급을 핑계로 국민을 사육하고 통제하려 드는 이재명식 '기본사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파시즘의 결과를 '미리보기' 한 셈이다.
썩은 제육볶음을 씹어 삼키며, 복통을 참은 채 사격장의 표적지를 겨누어야 했던 89명의 청년들은 그날 화약 냄새 진동하는 훈련장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가장 아프게 체득했을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희생을 헐값에 착취하면서도,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켜주지 않는다는 그 잔인한 진실을 말이다. 이 참담한 야만에 분노하지 않는 사회는, 이미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에게 영혼을 먹혀버린 것이다.
펌)박주현 페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