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변불경도 모르는 무직한 안규백

작성자개털과범털|작성시간26.06.23|조회수53 목록 댓글 0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월 15일 공군사관학교를 방문, 교수, 훈육관, 사관생도들과 3군사관학교 통합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안 장관은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이 중국대륙을 통치하면서 항상 가슴에 품었던 말이다. 처변불경(處變不驚), 모택동의 좌우명이 곧 내 좌우명이다”라고 말했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반가웠던 것은, ‘좌우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처변불경(處變不驚)’이라는 말은 나도 참 좋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놀라웠던 것은, 나는 이 말을 중화민국(대만)의 장개석(蔣介石.장제스) 총통이 한 말로 기억하고 있는데, 안 장관은 장개석의 숙적(宿敵)이었던 모택동의 좌우명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처변불경’이라는 말은 1971년 10월 26일,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갖고 있던 대표권이 중공(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가면서 유엔을 탈퇴하게 되었을 때에 장개석 총통의 대국민 담화 〈유엔 탈퇴에 임하여 전국의 군민에게 고함(告全國軍民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때 장 총통은 “장경자강, 처변불경, 신모능단(莊敬自強,處變不驚, 慎謀能斷)” 즉 “신중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스스로 강해지고, 정세가 변해도 놀라지 않으며, 신중하게 도모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자”라고 호소했다. 내가 '처변불경'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도, 이 때의 일을 소개하는 신문 칼럼을 통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1971년 당시는 아니고 내가 성인이 되어 접한 칼럼에서였다).
물론 ‘처변불경(處變不驚)’, 즉 ‘정세가 변해도 놀라지 않는다’는 표현은 장개석 총통의 이 담화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처변불경’이라는 말이 정치적 맥락에서 울림을 갖는 구호로 등장한 것은 장개석 총통의 이 연설이 있은 후부터였다.

알고보니 안 장관이 ‘모택동의 좌우명 처변불경’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취임 당시에도 《한국경제신문》 《한겨레》 등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좌우명은 처변불경 처변불경(處變不驚 處變不輕)이다. 어떤 변화가 와도 놀라지 않고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택동 전 주석이 신조로 삼았던 말”이라고 했다. 그밖의 인터뷰에서도 여러 번 되풀이한 걸 보면, 이 말이 그의 '좌우명'이 맞는 것 같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대목은 ‘모택동이 처변불경을 좌우명, 신조로 삼았다는 근거가 무엇일까?’하는 것이다.
모택동과 만났던 사람들이 남긴 일화에서 모택동이 자신의 좌우명-신조가 ‘처변불경’이라고 밝힌 적이 있나? 아니면 남들이 그렇게 인식할 정도로《모택동어록》을 비롯해 모택동이 남긴 수많은 논설이나 연설,어록에서 ‘처변불경’을 강조한 적이 있나?
나까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6.25 당시 중공군을 투입해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수많은 국군 장병과 국민들을 살상한 모택동이 한 말을,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워도 되느냐?’라고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장개석이 해서 유명해진 말을, 안 장관은 왜 '모택동의 좌우명'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안 장관이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장개석 뿐 아니라 모택동도 '처변불경'을 강조한 적이 있는 건가?

(참고로 구글 AI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중국 관영 매체나 사학자들이 마오쩌둥의 과거 일화(예: 1948년 서백파 시절의 위기 대응 등)를 묘사할 때, ‘마오쩌둥은 위기 앞에서도 처변불경(處變不驚)하며 군대를 지휘했다’와 같이 그의 대담한 성격을 찬양하는 성어(형용사)로 자주 사용”했지만, “마오쩌둥 본인의 좌우명이나 그가 직접 남긴 표현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로서 이 구호의 진짜 주인은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라고 단언한다.)

펌)배진영 페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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