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선관위'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 누가 책임지고,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
■ 선거관리 부실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무소불위의 '괴물 선관위'는 우리 모두가 키운 합작품이다. 선거관리를 정쟁의 도구로 삼은 정치권, 통제의 문을 닫은 헌법재판소, 입법을 미룬 국회, 감시를 저버린 언론, 그리고 이제 와 법리 뒤로 숨는 행정부가 그 공범이다.
6·3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부실은 충격적이다. 투표용지 인쇄량이 유권자 수의 절반에도 못 미친 투표소가 전국 1,371곳, 열 곳 중 한 곳에 달했다.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고, 인쇄율 50% 미만 투표소도 있었다. 추가 인쇄·교부 과정의 관리 부실, 관리 지침의 자의적 적용 등 총체적 부실이 국민의 참정권을 정면으로 훼손했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가 6·10 항쟁 기념일에 시국선언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요구는 곧 전 국민의 목소리이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건강한 외침이며, 진영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헌법적 요구이다.
■ 이 사태의 뿌리 — '괴물 선관위'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1. 헌법재판소의 무책임한 판단
헌법재판소는 2025. 2. 27. 선관위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위헌이라며 낸 권한쟁의심판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인용했다. 사실상 외부의 감시·감독을 전면 봉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권한쟁의심판이야말로 헌법기관 사이의 권한을 경계짓는 가장 정치적인 재판이다. 헌재는 권력분립의 심판자로서 국가권력의 지형을 판정하는 기관이지, 정해진 답을 기계적으로 '발견'하는 곳이 아니다. 헌재는 이 사건에서 '선관위의 독립성'과 '국민에 의한 통제의 필요성'을 저울에 올려 형량했지만, 독립성을 절대화하고 통제를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선택을 한 이상, '우리는 법리를 따랐을 뿐'이라며 헌재가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비켜설 수는 없다.
더구나 헌재는 스스로 "이 결정이 선관위를 부패의 성역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위험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자백이다. 위험을 식별하고도 그 위험을 막을 유일한 외부 장치를 손수 닫아 버린 것, 이것이 이 결정의 치명적 자기모순이다.
헌재에는 다른 길이 있었다. 결정 이유에서 외부 통제 공백을 메울 입법적 보완의 시급성을 분명히 적시할 수도, 보충의견을 통해 대안적 통제장치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 길을 모두 외면하고 전면적·절대적 인용으로 통제의 빈자리를 그대로 남긴 것은, 정치적 선택을 '독립성'이라는 순진한 법리로 포장한 책임회피의 전형이다. 독립성은 공정선거와 참정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목적을 잃은 독립은 무책임이며, 헌재는 수단을 목적 위에 올려놓고 그 뒤에 숨었던 것이다.
2.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책임
대통령이 이 사태의 책임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논리는 하나뿐이다. "선관위는 헌법 제114조의 독립기관이고, 헌재마저 감사원 감찰을 위헌이라 했으니 나는 관여할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법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첫째, 선관위의 독립성은 행정부가 선거관리 기능에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 대통령 자신의 헌법상 의무를 면제하는 면죄부가 아니다. '권한 없음'과 '책임 없음'은 전혀 다른 명제이다.
둘째, 대통령에게는 선관위를 통제하지 않고도 행사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 분명히 있다. 예산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권한(헌법 제54조), 정부 법률안을 제출할 권한(제52조), 헌법개정을 발의할 권한(제128조), 그리고 행정권의 수반으로서 책무(제66조 제4항), 취임시 선서한 헌법 수호와 국민 복리 증진의 책무(제69조)가 그것이다. 외부 통제의 공백을 메울 입법과 개헌을 앞장서 발의하는 일은 선관위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헌법이 대통령에게 명한 '책무'인 것이다.
셋째, 헌재의 2025년 결정은 '감사원 직무감찰'이라는 하나의 수단만을 위헌으로 판단했을 뿐, 대통령의 입법·예산·개헌 발의권이나 정치적 리더십까지 봉쇄한 것이 아니다. 그 결정을 근거로 '전적 무권한'을 주장하는 것은 결정에 대한 명백한 오독이고 책임회피일 뿐이다.
넷째, 설령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헌법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이 결정과 제도적 공백이 전임 정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공백이 국민의 참정권 침해로 현실화된 지금 이를 방치하는 것은 오롯이 현 정부의 책임이다.
오히려 외부 통제의 공백이 드러난 지금, 그 공백을 메울 제도 개혁과 개헌 논의를 선도해야 할 국정 최고책임자의 책무는 가중된다. 법적 면책을 정치적 무책임의 알리바이로 삼는 태도, 사후에 "취할 수 있었던 조치는 없었다"는 법적 구성을 찾아 책임 밖에 서 있으려는 태도야말로 직무의 본질을 저버리는 것이다. 회의를 한 차례 소집한 것은 책임의 이행이 아니라 책임의 출발점일 뿐이다.
3. 국회의 입법·예산을 통한 통제 방치
헌재가 외부 감사의 길을 닫았다면, 그 공백을 메울 일차적 책임은 국회에 있었다. 국회는 선관위에 대한 예산 심의·확정권과 입법권을 통해 얼마든지 대체 통제장치를 설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야는 선거 때마다 선관위를 제 편의 유불리로만 저울질했을 뿐, 채용 비리가 거듭 드러나는 동안에도 실효적 감독 입법을 미뤘다. 국정감사는 호통과 한 철 구경거리로 소비됐고, 구조 개혁 입법은 번번이 회기와 함께 사라졌다. 통제할 권한을 가진 자가 통제하지 않은 것, 그것이 괴물에게 가장 넓은 활동 공간을 내주었다.
4. 레거시 언론의 감시 실패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선관위의 구조적 부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누적된 것이었음에도, 다수의 레거시 언론은 선거 국면의 정파적 공방만 중계했을 뿐 그 부실의 뿌리를 끈질기게 파고들지 않았다. 진영의 입맛에 맞는 의혹은 키우고 불리한 사실은 외면하는 보도 행태는, 국민의 눈을 가려 견제의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뜨렸다. 감시견이 제때 짖지 않을 때, 권력은 괴물이 된다.
■ 이제 필요한 것은 진심 어린 사과와 실질적 행동이다.
대통령, 국회, 정치권, 헌법재판소, 그리고 언론까지 모두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독립기관'이라는 명분도, '법리'라는 형식도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가 될 수 없다.
■ 해결의 실마리는 '범국민대책회의' 구성에 있다.
이 회의는 정파의 전유물도, 정부의 들러리도 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이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1.위상과 근거
한시적·독립적 기구로 출범하되, 권고의 무게를 담보하기 위해 국회 여야 합의에 따른 특별법 또는 국회 결의에 근거를 둔다. 활동 시한(예: 6개월)과 결과 보고 의무, 권고에 대한 국회·정부의 이행 의무를 명문화한다.
2. 구성 — 공동위원장 체제
특정 진영이 주도하지 못하도록 여·야·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하고, 위원은 아래를 균형 있게 포함하여 구성한다.
▶ 국회 여야 교섭단체 추천 인사
▶ 법조계·헌법학계·선거관리 전문가
▶ 시민사회단체 및 선거감시 시민단체
▶ 청년·대학생 대표 (이번 시국선언 주체의 직접 참여)
▶ 장애인·고령자 등 참정권 취약계층 대표
▶ 언론·정보보안 등 분야별 외부 전문가
3. 분과 편제
역할을 분명히 나누어 다음 네 분과를 둔다.
▶ 진상규명분과 — 투표용지 부족·투표 중단·추가 인쇄 및 교부 과정의 경위와 책임 규명 (국정조사·특검과 연계)
▶ 제도개혁분과 — 선관위 구조 개혁, 외부 감사·감독 체계 재정립, 인쇄·비축·배포 시스템 개선
▶ 개헌·입법분과 — 2025년 헌재 결정의 한계를 메울 입법 및 개헌 과제 설계
▶ 참정권구제분과 — 피해 유권자에 대한 실질적 구제 방안 마련
4. 운영 원칙
▶ 모든 회의는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기록을 남긴다.
▶ 권고는 권고로 끝내지 않고, 국회·정부에 이행 의무와 정기 점검 절차를 부과한다.
▶ 정쟁 도구화를 막기 위해 운영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명문으로 보장한다.
■ 맺음말
청년들의 시국선언을 진영 논리로 왜곡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보수와 진보를 넘어 '선거 공정성'이라는 공동의 가치 아래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 분노를 제도 개선의 동력으로 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참정권은 민주공화국의 기초이다. 지금은 행동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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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이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