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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조왕릉전도

작성시간16.03.29|조회수16 목록 댓글 0

 

 

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4호
소 유 자 - 신라오릉보존회
소 재 지 - 경주시
탑동 77(오릉경내)
분 류 - 사묘재실
수 량 - 일곽

숭덕전(崇德殿)은 오릉(五陵) 남쪽에 있으며 신라 시조(始祖) 박혁거세거서간(朴赫居世居西干)의 제향(祭享)을 받드는 제전(祭殿)이다. 실록에 의하면 조선 세종(世宗) 11년(1429)에 처음 제실(祭室)을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선조(宣祖) 33년(1600)에 중건(重建)하였다. 그 후 숙종(肅宗) 20년(1694)에 중수하였다. 지금 경내에는 조선 영조(英祖) 35년(1759)에 세운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박혁거세거서간(朴赫居世居西干)과 숭덕전(崇德殿)의 내력(來歷)이 적혀 있다.

이 제전(祭殿)은 조선 경종(景宗) 3년(1723)에 와서 숭덕전이라 부르고 제향(祭享)을 받드는 참봉(參奉)을 두고 있다. 처음에는 조선 세종(世宗)의 명으로 삼국의 시조(始祖)들에 대한 사당을 세우라는 조서에 의해 세워진 까닭에 국가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 와서는 박씨문중에서 관리 및 행사 전반에 대해 주관하고 있다. 현재에도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제향(祭享)을 받들고 있다.

▶ 오 릉

사적 172호.

오릉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과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네 박씨 임금과 시조비인 알영왕비의 능으로 담암사 북쪽에 있다고 옛 문헌에 전하여 오고 있다. 오릉에 대하여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하고 있는 바, 박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만에 승천하였는데, 그 7일 뒤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고, 이때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흩어진 유체를 모아서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다섯 유체를 각각 장사 지내고 오릉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뱀이 나타났다 하여 사릉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오릉의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외형은 경주시내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다른 많은 삼국시대 신라고분과 같이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형봉토분으로 되어 있다.

오릉의 동쪽에 있는 숭덕전은 혁거세왕의 제향을 받는 제전으로 본래 조선 세종 11년(1429)에 지었던 것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고, 현존하는 건물은 선조 33년(1600)에 재건한 것이다. 숙종 20년(1723)에 숭덕전으로 사액되었다. 경내에는 혁거세왕과 숭덕전의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는데 영조 35년(1759)에 세운 것이다.

숭덕전 뒤편에는 알영왕비의 탄생지라 하는 알영정 터가 있다.

▶ 나 정

史蹟 245 號

이곳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가 건국되기 전 경주 일대는 진한의 땅으로 6부촌장이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다.

기원전 69년 어느 날 고허촌장인 소벌도리공이 이곳 양산 기슭 우물가에서 흰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말이 있던 곳에 가보니 빛이 나는 큰 알 하나가 있었다. 이 알을 깨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으므로 하늘이 보낸 천자라 여기고 잘 길렀다. 이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인 기원전 57년에 6부촌장이 모인 자리에서 왕으로 추대되니 이 이가 곧 신라 시조 임금이다. 왕이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는 뜻에서 성을 박이라 하였고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라 하게 되었다. 그 뒤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금 나정은 돌 뚜껑으로 덮혀 있고 비각에는 내력을 새긴 비석이 있다. 조선시대 순조 2년(1802)에 세운 것이다.

▶ 양 산 재

양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이 재각건물은 6부촌장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1970년 건립되었다. 6부촌장은 신라가 건국되기 전 진한 땅에 있던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의 여섯 촌을 나누어 다스렸던 촌주이다. 서기전 57년에 알천 언덕에 모여 13살이 된 박혁거세를 고허촌장 소벌도리가 추대하여 신라의 초대 임금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정하니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 원년이 되었다.

그 후 신라 제3대 유리왕은 6부촌장들의 신라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 성을 정해 주었다. 즉 양산촌은 급양부 이씨, 고허촌은 사량부 최씨, 대수촌은 모량부 손씨, 진지촌은 본피부 정씨, 가리촌은 한지부 배씨, 고야촌은 습비부 설씨이다. 이로써 신라 초대 여섯 성씨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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