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 동네 골목길을 누비며 숨은 사람을 찾아내며 뛰놀던 공동체 놀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놀이를 숨바꼭질 이라고 하는데,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놀이지요. 전통이 오래된 만큼 이 놀이를 뜻하는 단어들이 많았고 또 다양하게 변해왔습니다.
숨바꼭질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나타난 단어는 16세기 초의 《번역박통산》에 보이는 '숨막질'입니다. 숨막질은 '숨(息)'과 '막(塞)-'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숨을 막는 행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이것은 본래 숨을 막고 물속에 떴다 잠겼다 하는 행위, 즉'무자맥질(潛泳)'을 가리키던 단어입니다. 여기에, 수면 아래로 숨는 행위와 연결되어 '숨을 죽이며 노는 놀이' 즉 '술래잡기'라는 의미가 나중에 첨가된 것입니다.
'숨막질'은 18세기에 오면 '숨박질'로 변합니다. 이 변화는 곤두막질이 곤두박질로 변했듯이 'ㅁ'이 'ㅂ'으로 교체로 이루어진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19세기에 오면 현대 국어의 '숨바꼭질'에 근접하는 '숨박굼질' 또는 '숨박곡질'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이들은 '숨박질'과 달리 4음절로 구성되어 있으나 세번째 음절을 제한다면 '숨박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숨박곡질이' 현대 국어에서 '숨바꼭질'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조항범 교수의 저서 [다시 쓴 우리말 어원 이야기 ]에서 발췌했습니다-
2. 다른 어원으로는 순(巡)바꿈질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순(巡)을 바꾸어 나가는 놀이를 뜻하는 거죠. 그리고 이 놀이는 달리 또 '술래잡기'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술래'라는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역을 맡은 아이가 살펴 '술래'와도 관계지어집니다. 순(巡)을 바꾸어 나간다는 '순'은 '술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순라'가 글자로는 '순라'지만 말하고 읽기로는 '술라'가 되는 것이고 그 '순라'가 다시 '술래'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봄. 여름에는 오후 여덟시, 가을.겨울에는 오후 일곱시에 종로의 보신각에서 종을치게 되고, 그를 신호 삼아 사대문을 닫으면서 통행금지가 시작되던 조선 왕조사회였습니다. 이는 오전 0시 직후에 다시 종을 쳐서 통금을 해제했던 것인데, 밤종소리가 나면서부터 치안을 맡은 조우포청의 엄중한 경계는 시작되었습니다.
포교와 나졸들이 장안을 샅샅이 순회했는데, 이 순회를 '순라'라 하고 이 순라하는 사람들을 '순라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은 , 이러한 순라꾼이 도둑 잡는 일에 빗대어진 것으로서 '순라'가 '술라→술래'로 된 내력을 알 수 있습니다.
-박갑천 저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에서 발췌했습니다-
숨바꼭질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나타난 단어는 16세기 초의 《번역박통산》에 보이는 '숨막질'입니다. 숨막질은 '숨(息)'과 '막(塞)-'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숨을 막는 행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이것은 본래 숨을 막고 물속에 떴다 잠겼다 하는 행위, 즉'무자맥질(潛泳)'을 가리키던 단어입니다. 여기에, 수면 아래로 숨는 행위와 연결되어 '숨을 죽이며 노는 놀이' 즉 '술래잡기'라는 의미가 나중에 첨가된 것입니다.
'숨막질'은 18세기에 오면 '숨박질'로 변합니다. 이 변화는 곤두막질이 곤두박질로 변했듯이 'ㅁ'이 'ㅂ'으로 교체로 이루어진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19세기에 오면 현대 국어의 '숨바꼭질'에 근접하는 '숨박굼질' 또는 '숨박곡질'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이들은 '숨박질'과 달리 4음절로 구성되어 있으나 세번째 음절을 제한다면 '숨박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숨박곡질이' 현대 국어에서 '숨바꼭질'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조항범 교수의 저서 [다시 쓴 우리말 어원 이야기 ]에서 발췌했습니다-
2. 다른 어원으로는 순(巡)바꿈질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순(巡)을 바꾸어 나가는 놀이를 뜻하는 거죠. 그리고 이 놀이는 달리 또 '술래잡기'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술래'라는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역을 맡은 아이가 살펴 '술래'와도 관계지어집니다. 순(巡)을 바꾸어 나간다는 '순'은 '술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순라'가 글자로는 '순라'지만 말하고 읽기로는 '술라'가 되는 것이고 그 '순라'가 다시 '술래'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봄. 여름에는 오후 여덟시, 가을.겨울에는 오후 일곱시에 종로의 보신각에서 종을치게 되고, 그를 신호 삼아 사대문을 닫으면서 통행금지가 시작되던 조선 왕조사회였습니다. 이는 오전 0시 직후에 다시 종을 쳐서 통금을 해제했던 것인데, 밤종소리가 나면서부터 치안을 맡은 조우포청의 엄중한 경계는 시작되었습니다.
포교와 나졸들이 장안을 샅샅이 순회했는데, 이 순회를 '순라'라 하고 이 순라하는 사람들을 '순라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은 , 이러한 순라꾼이 도둑 잡는 일에 빗대어진 것으로서 '순라'가 '술라→술래'로 된 내력을 알 수 있습니다.
-박갑천 저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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