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피재~댓재)(250511. 일)(낙동산악회 19-31구간)
□ 때 : 2025. 05. 11(일)
□ 곳 : 댓재~황장산~큰재~자암재~지각산(환선봉)~덕항산~구부시령~푯대봉~건의령[환의령]~피재[삼수령](南進)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4명
□ 날씨 : 햇볕
□ 길 : 흙길+진잎 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5. 05. 11(일) 02:08~13:02(10시간 54분, 쉰 시간 포함)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08 댓재(803.6m) 나섬.
○ 02:30 황장산,
○ 03:47 큰재,
○ 04:10~04:20 큰재에서 산길[임도]를 따르다 길을 찾지 못해 10분 이상 헤맴.
○ 04:25~04:32 뒤에 오는 대원들 기다림.
○ 05:18 자암재[장암재],
○ 05:42 헬기장
○ 06:05 지각산(환선봉)(1080m-‘푯돌’)
○ 06:26~06:42 아침밥
○ 07:05 덕메기산[덕항산](1071m-‘푯돌’)
○ 07:31 구부시령
○ 10:05 푯대봉 삼거리
○ 10:08 푯대봉(1009.2m-‘푯돌’)
○ 10:12 (다시) 푯대봉 삼거리
○ 10:31~10:38 건의령[한의령], 머묾.
○ 11:14~11:17 머묾.
○ 11:43~11:55 머묾. ※ 시술
○ 12:51 아스팔트 길
○ 12:58 Y 갈림길, 여기 아스팔트 길에서 왼쪽 산으로 들어섬.
○ 13:02 피재[삼수령], 산행 마침.
노루삼
란선 님이 꽃 이름을 묻는데 무심코 '미나리냉이' 라고 잘못 대답하고 나서 무슨 꽃이더라 한참을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이 났는데, 헛 정보를 말해 미안했다
피나물
피나물
벌깨덩굴
현호색
박새
노랑제비꽃
개별꽃
개별꽃 밭에 우뚝 선 '참나도히초미'(?)
확실하지 않다.
처음에 '관중' 인줄 알고 '관중'이라 말했으나 관중은 아니다.
괭이밥
피나물
얼레지
잔털제비꽃(?)
확실하지 않다.
제비꽃은 종류도 많고, 구별하기 어렵다
시닥나무
지각산 환선봉
붓꽃
'노랑무늬붓꽃' 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나 정식 이름은 아닌 것 같다.
노랑무늬가 있기는 하지만...
환선굴로 이어지는 길과 계곡
풀솜대
딱총나무
산괴불주머니가 꽃밭을 이루고 있다.
홀아비꽃대
둥근털제비꽃(?)
확실하지 않다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5. 5. 11(일) 02:01.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 몇 굽이를 돌아 댓재에 닿았다.
“댓재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와 활기리~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조릿대가 많아 ‘죽현’(竹峴) 또는 ‘죽치령’(竹峙嶺)으로 불렸다. 과거부터 영서와 영동을 잇는 주요 관문으로 산촌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변형하여 따옴》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날씨는 쌀쌀했다.
그 시각 댓재 기온이 8.7℃였다.
댓재에 있는 산신각을 구경하고 사진 찍을 생각을 접었다.
댓재 푯돌 뒷면에는 이곳 출신이라는 정일남 시인이 쓴 「댓재」 라는 시 가운데
“...불같은 진달래 무더기로 피던 능선
바위에 앉아 옷고름 날리던 님은
머슴살이 십년을 기다려 주었네...”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원인 00 님이 댓재를 노래하는 시를 썼다면 이에 못지않은 작품을 선보였을 것 같다.
02:08 댓재를 나서 22분쯤 뒤 황장산에 닿았다.(02:30)
댓재에서 0.6km 거리다.
우리가 지나왔던 경북 문경시에 있는 황장산과 똑같은 이름이다.
두 황장산 일대에서 옛날 궁궐에 썼던 황장목을 가꾸고 조달했던 모양이다.
황장산에서 1시간 17분쯤 뒤 큰재에 닿았다.(03:47)
댓재에서 5.0km 거리다.
댓재에서 산길[임도]을 따라 걷다가 10분 이상 헤맸다.
어쩌다 보니 대원들이 몇 무리로 갈라져 뒤에 오는 대원들을 10여 분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대간 길을 찾았다.
대간 길 동쪽 가파른 낭떠러지 지형 아래 있는 환선굴 갈림길인 자암재에 닿았다.(05:18)
큰재에서 3.4km, 이곳에서 환선굴까지 1.7km 거리다.
낙동산악회 7기 때 환선굴까지 갔다온 기억이 엊그제같이 뚜렷했다.
자암재는 ‘장암재’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자암재[장암재]에서 24분쯤 뒤 헬기장에 닿았다.(05:42). 자암재에서 0.9km 거리다.
자암재에서 부터 구부시령까지는 가히 ‘들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산괴불주머니, 피나물 따위가 많았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00 님은 들꽃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헬기장에서 23분쯤 뒤 지각산(환선봉)(1080m-‘푯돌’)에 닿았다.(06:05)
환선봉 동쪽은 아주 가파른 낭떠러지로 푯돌 뒤 봉우리에 올라서면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환선굴로 이어지는 길과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안개가 끼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 봉우리에 가지 않았다.
부지런한 권 대장 님외 몇 명은 그 봉우리에 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환선봉에서 20분쯤 가다 바람이 덜 부는 곳에 자리를 잡고(06:21)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치르고 길을 나서(06:42) 23분쯤 뒤 덕항산(1071m-‘푯돌’)에 닿았다.(07:05)
‘덕항산’은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오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편편한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고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으로 되었다,,,.”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한자 숭상 풍토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한자 투로 된 이름을 한글로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덕메기산[덕항산]에서 19분쯤 뒤 길 푯말(↓댓재 12.5km)이 있는 ㅜ 갈림길을 만난다. 이 갈림길에서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굽어진다.
이 갈림길에서 7분쯤 뒤 구부시령에 닿았다.(07:31)
구부시령은 덕항산에서 1.2km, 건의령까지는 6.8km 거리다.
구부시령은 피재~댓재 구간 중간쯤 되는 위치다.
“구부시령은 강원도 태백기 하사미동의 외나무골에서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이라 하였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푯말 해설 글이 철저히 ‘남존여비’ 사상을 반영한 표현인 것 같다.
이 글을 보면서 나는 발칙한 상상을 했다.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은 사람으로 변신한 구미호로, 구미호는 피에 굶주린 나머지 비실비실한 남자들을 꾀어 잡아먹은 것은 아닐까? 하고...
1960~70년대 TV에서 상영된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직한 허무맹랑하게 각색한 이야기처럼 꾸며낸 ‘웃자고 한 애기’...
어찌 되었건 현실 세계에서 있음직한 설화, 전설 같은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무심한 나는 구부시령을 걸으면서 ‘인생’, ‘삶’ 같은 묵직한 주제를 잠깐 떠올렸다.
구부시령에서 푯대봉 삼거리까지 5.7km 구간은 길 푯말을 촘촘하게 세워 둬 내가 어디쯤 걷고 있는지 가늠하기 쉬워 좋다.
구부시령에서 2시간 34분쯤 뒤 푯대봉 삼거리에 닿았다.(10:05)(중간에 머문 시간 7분쯤 포함)
푯대봉 삼거리로 오르는 길에는 새로 심은 듯한 소나무가 잘 자라면서 우거져 앞을 가려 걷기 어렵다.
푯대봉 삼거리에 닿았을 때 권재구 대장 님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축지법을 쓰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졌다.
촛대봉 삼거리에서 3분쯤 뒤 100m쯤 떨어져 있는 푯대봉(1009.2m-‘푯돌’)에 닿았다.
(10:08)
전에는 작은 푯돌이 있었는데, 「태백시 한마음 산악회」에서 커다란 푯돌을 세워 둔 것을 보았다.
사진을 찍고 되돌아 나왔다.
다시 푯대봉 삼거리로 돌아와서( 10:12) 19분쯤 뒤 건의령에 닿았다.(10:31)
건의령은 ‘한의령’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건의령은 구부시령에서 6.8km, 피재까지는 6.0km 거리다.
“건의령은 강원도 태백 상사미동에서 삼척 도계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고려 말 때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려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건의령[한의령]은 의리와 옛 임금을 섬기는 선비들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슬픈 사연을 가진 고개다.
어느 기록에 따르면 “댓재~건의령까지는 약 19.7km” 라고 한다.
건의령에 머물면서 물을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서 7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서(10:38)
2시간 13분쯤 뒤 ‘삼수령 800m’ 길 푯말이 있는 아스팔트 길에 닿았다.(12:51)(중간에 두 번 15분쯤 머문 시간 포함)
아스팔트 길을 7분쯤 걸은 뒤 ‘삼수령 400m’ 길 푯말이 있는 Y 갈림길에 닿았다.(12:58)
여기 아스팔트 길에서 왼쪽 산으로 들어서 4분쯤 뒤 피재 「삼수정」과 피재[삼수령] 조형물이 있는 곳에 닿아(13:02) 산행을 마쳤다.
산행을 기획한 회장 님, 산행 길잡이 한 세 분 대장 님, 기사 님, 대원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과일, 과자, 떡을 나눠준 난이, 란선, 무쏘꿈, 미정 님(가나다 순)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자암재[장암재]에서 환선굴을 다녀온 일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7기 26구간(피재~댓재 구간)을 걷던 2009. 7. 26(일).
당시에 축지법을 쓰듯 대간 길을 휘젓고 다니던 대원 몇 사람이 있었다.
김00, 정00 님 외 1명이었다.
그날 그들과 발을 맞춰 걸었다.
백두대간 길 자암재[장암재]를 지나면서 몇 번이나 환선굴을 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환선굴 행을 내가 제안했던 것 같다.
환선굴을 다녀오기로 마음을 모은 넷은 자암재에서 환선굴 행을 바로 결행했다.
늦을까 봐 걱정되기도 했으나 넷은 주저 없이 자암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달렸다.
비를 맞은 듯 땀으로 흠뻑 젖은 몸으로 환선굴에 들어섰더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에어컨 바람이 없어도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시원하게 느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내친김에 40여 분을 환선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왔다.
환선굴을 나와서는 허겁지겁 자암재로 올라 댓재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대원들에 견줘 많이 늦었다.
대원들에게 미안했고, 회장 님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감행했던 일탈이 엊그제같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피재~댓재 구간, 아니 덕항산, 지각산, 자암재 이름만 들어도 유쾌했던 당시 일이 늘 떠오른다.
다른 대원과 회장 님께 미안한 일이었지만...
2. 하루 내내 눈·비 맞고 옷도, 장갑도 젖어 오들오들 떨었다
백두대간 낙동산악회 9기 26구간(댓재~피재)(2011. 2. 27(일)
댓재에 내렸을 때부터 비가 조금 내렸다.
큰재에서 비옷을 갈아입었다.
비옷 바지를 등 가방[배낭] 속에 넣고 있었으나 많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멋대로, 편리하게 생각하고 입지 않았다.
내리던 비는 함박눈으로 바뀌었고, 고어텍스 장갑이 아닌 일반 겨울 장갑을 꼈다.
장갑은 사진 찍고 벗었다 꼈다 반복하는 바람에 비와 눈에 완전히 젖어 손이 얼마나 시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손이 시렸으면 젖은 장갑을 벗고, 젖은 손을 닦고 나서 등 가방[배낭]에 예비로 넣고 다니던 고어텍스 장갑으로 갈아 끼어야 했으나 조금 가다 갈아 낄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걸었다.
그날 내 모습은 영락없는 ‘비 맞은 닭’이었을 것이다.
손 시렸던 그날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눈·비 내리는 날 대비를 잘해야 함을 느꼈던 날이었다.
3. 귀네미 마을
「귀네미 마을」은 자암재[장암재]~큰재 구간 서쪽에 위치한 「광동댐 이주 단지」다.
광동댐을 만들면서 수몰된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귀네미 마을 외 몇 곳에 이주시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이곳 주민들은 백두대간 언저리에서 산을 개간하여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짓는다.
큰재 일원에서 귀네미 마을을 향하는 길 푯말을 보고 산사랑제이 님이 “귀네미 마을”에 100살이 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그럴만한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도회지와 떨어지고, 백두대간 언저리에 위치해 공기가 좋을 것이다.
둘째, 해발 고도 대략 800~900m쯤 되는 곳이므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폐활량이 튼튼해져 심장이 좋을 것이다.
셋째, 그들은 각박한 도회지를 떠나 고랭지 채소를 가꾸면서 적당히 노동하면서 몸이 튼튼해질 것이다.
넷째,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림으로써 정신과 마음이 살찌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없앰으로써 암과 같은 현대인이 걸리기 쉬운 질병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다섯째, 공동체를 이뤄 서로 교류하고 대화함으로써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위에 든, 내 추측성 여건 외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요인이 겹쳐 100살을 넘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이것은 과학적 근거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내 아둔한 추측일 뿐이다.
현대인이 고민하는 건강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시닥나무(?)
○ 두릅나뭇과 갈래 : 음나무[개두릅나무, 엄나무, 아목(牙木), 해동(海桐)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 미나리아재빗과 갈래 : 조희풀[병조희풀, 선모란풀]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일본잎갈나무, 전나무[젓나무, 종목(樅木)]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 인동과 갈래 : 딱총나무[지렁쿠나무], 붉은병꽃나무[물병꽃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사스래나무, 자작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마가목[남등(南藤), 석남등, 정공등], 산딸기나무[산딸기], 산벚나무, 조팝나무, 줄딸기[덩굴딸기], 찔레나무, 팥배나무[감당 01(甘棠), 왕잎팥배, 왕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산앵두나무, 꽹나무, 당채, 산이스랏나무, 이스랏나무, 천금동],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나무
○ 다랫과 갈래 : 다래나무[다래, 다래너출, 참다래나무, 등리(藤梨), 등천료(藤天蓼)]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떨기나무
○ 백합과 갈래 : 청미래덩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식물
○ 볏과 갈래 : 조릿대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까치취[솜나물], 단풍취, 분취(?), 우산나물, 참취(?)
○ 꿀풀과 갈래 : 벌깨덩굴
○ 노루발과 갈래 : 노루발
○ 마타릿과 갈래 : 쥐오줌풀
○ 면마과 갈래 : 관중[관거, 관절, 미나리아재비, 참나도히초미(?), 투구꽃(?),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박새[동운초, 여로(藜蘆) 02], 비비추(?), 산옥잠화(?), 선밀나물, 애기나리, 얼레지[가재무릇], 원추리, 풀솜대[솜대]
○ 붓꽃과 갈래 : 각시붓꽃[산난초], 붓꽃(?)
○ 석죽과 갈래 : 개별꽃[미치광이풀],
○ 양귀비과 갈래 : 피나물
○ 앵초과 갈래 : 까치수염, 구슬붕이
○ 장미과 갈래 : 쇠스랑개비[양지꽃]
○ 제비꽃과 갈래 : 남산제비꽃, 노랑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제비꽃, 졸방제비꽃, 털제비꽃(?)
○ 쥐방울덩굴과 갈래 : 족두리[족두리풀, 민족두리풀, 조리풀, 세초].
○ 현호색과 갈래 : 산괴불주머니, 현호색,
○ 홀아비꽃댓과 갈래 : 홀아비꽃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