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om/watch?v=lPFzErhF4l0&si=1o1iIyto1xolouR1
와!!!
유럽순방 10일이라지!!!
내가 북간도로 떠나기 전에 순방을 떠났다.
거의 10일이 다 되어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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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특별미사가 있었네.
북간도 순례 후 아내랑 4일만에 만나
만찬을 나눴다.
차담하며 영상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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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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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날 원본을 찾아 다시봐야겠다.
이건 편집됐으니...
아마 45분여로 편집된
앞부분 영상이 뒤에 나온 영상 이후에
실재 진행됐을 듯 보인다.
바오로의 무덤 앞 선포된 한반도 평화의 밀알
- 이재명 대통령 바티칸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 기념연설 해설
2026년 6월 14일, 로마의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특별미사가 봉헌되었다. 미사는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주례하였고, 국빈 방문 중이던 이재명 대통령은 미사 후 기념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세계 연대의 메시지를 밝혔다.
이번 미사와 연설을 단순한 외교 의전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건을 한국 천주교 250년 신앙사, 한반도 분단사의 고통, 그리고 세계 평화를 향한 보편 교회의 사명 안에서 읽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세계 앞에서 다시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평화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어떤 영성으로 분단과 적대의 시대를 넘어설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이 연설이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신학에서 장소는 우연한 배경이 아니다. 장소는 기억이며, 상징이며, 때로는 계시의 자리다.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은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황 대성전이다. 바오로는 제국의 중심 안에서 권력을 증언한 사람이 아니라, 성벽 밖에서 복음을 증언하다 순교한 사도였다. 그러므로 ‘성 밖’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변두리, 경계, 배제된 자리,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복음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한반도의 평화를 말하기에 이보다 정직한 장소는 드물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성벽 안에 갇혀 있었다. 휴전선이라는 물리적 장벽, 이념이라는 정신적 장벽, 냉전이라는 역사적 장벽, 불신이라는 심리적 장벽이 우리 안팎을 갈라놓았다. 그런데 대통령은 바로 그 ‘성 밖’의 자리에서 평화를 말했다. 이는 정치적 언어가 신학적 장소를 만난 사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는 총과 칼이 아닌 촛불로, 폭력이 아닌 평화로, 냉소가 아닌 연대로 짙은 어둠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한국 현대사의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시민들이 몸으로 써 온 공공영성의 고백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총칼의 폭력을 모방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광장에 섰고, 노래했고, 기도했고, 서로를 지켰다. 이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 정치의 성취를 넘어선다. 그것은 비폭력적 시민 영성, 곧 K-Spirituality의 한 표현이다.
K-Spirituality는 민족주의적 자기찬양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의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복수로 굳어지지 않는 영성이다.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영성이다. 광장의 외침을 미움의 언어로 타락시키지 않고, 연대의 성사로 들어 올리는 영성이다.
한국 천주교는 박해의 기억, 순교자의 피, 민주화의 거리미사, 세월호와 이태원의 눈물, 그리고 계엄과 폭력에 맞선 시민의 기도를 통해 이 영성을 길러 왔다.
이 연설의 중심에는 평화와 연대가 있다.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 평화로 이어지고, 세계의 연대가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함께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 문장이 한반도 평화 문제를 좁은 민족 문제로 가두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더 이상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동북아 평화의 문제이며, 세계 질서의 문제이며, 인류 공동체의 문제다.
가톨릭 신학에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진실과 화해가 만나는 자리다.
정의 없는 평화는 침묵이고, 화해 없는 정의는 보복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평화는 기억과 용서, 진실과 책임, 정의와 자비가 함께 움직일 때 가능하다.
대통령의 연설이 “갈등이 있는 곳에는 화해를, 불신이 있는 곳에는 신뢰를, 분열이 있는 곳에는 연대를 더하겠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가톨릭 평화 전통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이 대목은 흔히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알려진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는 기도의 어법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평화는 누군가가 도구가 되기로 결단할 때 온다.
화해는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다. 신뢰는 구호가 아니라 반복되는 책임의 결과다. 연대는 호의가 아니라 공동 운명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다.
이 연설의 결구인 “한 알의 복된 밀알”이라는 표현을 특별히 주목한다. 이것은 명백히 요한복음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평화는 대가 없이 오지 않는다. 화해는 희생 없이 오지 않는다. 연대는 자기보존의 욕망을 넘어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한반도 평화의 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먼저 땅에 떨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더 깊은 신학적 울림은 이 말이 바오로의 무덤 앞에서 선포되었다는 데 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에서 씨앗의 이미지를 통해 부활을 설명했다. 뿌려지는 것은 완성된 몸이 아니라 단순한 낟알이다. 그러나 그 낟알은 죽음을 통과하여 새로운 몸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바오로의 무덤 앞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밀알’로 말한 것은 매우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죽음의 기억 앞에서 부활의 언어로 미래를 말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한국 정치가 다시 배워야 할 언어라고 본다. 정치는 상대를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다. 정치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길을 여는 행위다. 안보는 적대의 영구화가 아니다. 안보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신뢰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평화는 약자의 언어가 아니다. 평화는 가장 용기 있는 정치의 언어다.
대통령의 연설은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을 다시 불러냈다. 6·15는 한반도 현대사에서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적대의 문법을 대화의 문법으로 바꾸려 했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물론 그 길은 멈추었고, 후퇴했고, 때로는 배신당했다. 그러나 역사의 길이 끊어졌다고 해서 평화의 소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길이 막혔을 때 다시 길을 내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며, 신앙인의 소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밝힌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가 국내 정치적 수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이 연설은 외교적 이벤트가 아니라 정책적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 위한 실질적 조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소통 채널 복원, 인도적 협력 재개, 이산가족 문제 해결, 종교와 시민사회 교류의 회복이 뒤따라야 한다. 평화는 말이 아니라 구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가 이 연설의 의미를 더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단순한 국제행사나 종교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계 청년들이 분단의 땅에서 평화를 배우고, 전쟁과 혐오와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시대에 새로운 연대의 언어를 발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순교의 기억과 광장의 영성, 그리고 거리의 성사를 세계 교회와 나눌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바티칸 특별미사와 대통령의 연설을 K-Spirituality의 공적 표징으로 읽는다. K-Spirituality는 고통의 기억을 평화의 사명으로 바꾸는 영성이다.
박해의 역사를 배타성으로 만들지 않고 보편적 연민으로 확장하는 영성이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되, 증오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 영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혼자 구원받는 길’이 아니라 ‘함께 살아나는 길’을 찾는 영성이다.
한국 천주교는 이 길을 이미 걸어왔다.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다.
독재 시대의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은 거리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인간의 존엄을 증언했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죽음 앞에서 교회는 기억의 제단을 지켰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을 성소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와 한국 시민사회가 세계에 나눌 수 있는 영적 자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분명히 말한다. 평화의 언어는 아름답지만, 그 언어가 현실을 바꾸지 못하면 공허해진다. 정부는 이번 연설의 정신을 실제 정책으로 증명해야 한다. 교회는 평화를 말하면서 침묵의 안전지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는 진영의 언어를 넘어 생명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평화는 모두의 책임이다.
바오로는 감옥과 박해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복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절망의 자리에서 보편성을 보았고, 폐쇄된 민족의 경계를 넘어 모든 민족에게 열린 복음을 증언했다.
오늘 한반도 역시 바오로의 영성을 필요로 한다. 분단의 감옥 안에서도 보편 평화를 말하는 용기, 적대의 언어 속에서도 화해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 죽음의 기억 앞에서도 부활의 미래를 선포하는 희망이 필요하다.
이번 바티칸 특별미사와 이재명 대통령의 기념연설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 연설이 한반도 평화와 세계 연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출발이 말에 머물지 않고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되고, 시민의 삶이 되고, 교회의 사명이 되기를 촉구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의 연대는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지탱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바오로의 무덤 앞에서 다시 들어야 할 복음의 요청이다.
평화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이다.
연대는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밀알은 땅에 떨어질 때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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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 전
지성용목사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