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꼴값하네/ 박정자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였으니 벌써 37년 전 이야기다. 남편이 놀리듯 툭 던진 그 한마디. 그 말은 마치 지워지지 않는 흉터 같았다. 그때 들은 그 한마디는 가슴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불쑥불쑥 상처처럼 아프게 되살아났다. 아프고 나면 아프기 전과 후의 삶이 달라지듯 내 삶도 그 말을 듣기 전과 들은 후가 확연히 달라졌다. 딸의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반장이었고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자녀와 함께 하는 백일장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하루 날 잡아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참석해 달라는 말에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로 딸과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했다. 용돈이라도 얻을 속셈이 따로 있었는데 남편의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꼴값하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내 귀에는 남편의 그 말만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나는 못 들은 척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남편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첫 아이를 낳고 육아일기를 쓴 것이 나의 유일한 글쓰기였다. 글을 잘 쓰는 기미라도 있었더라면 야 남편에게 따지기라도 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여긴 순간,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있었다. 남편은 뒤늦게 자신이 지나친 말을 한 것 같다며 사과의 전화를 했지만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딸과 선생님, 그리고 셋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그저 잘 아는 지인과 나들이를 나가는 기분이었다. 혹시라도 뭔가 기대할 만한 기미라도 보였다면, 설렘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날 내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어깨에 걸친 가방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왜 가고 있는 걸까?”나 자신에게 묻는 그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백일장 시제는 자유였다. 나는 그 시시한 고향, 내 집 뒤 뜰에 있는 작은 샘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높은 산도 아름다운 계곡도, 하다못해 큰 강하나 품지 못한 내 고향을 늘 시시하다고 느꼈지만 뒷마당의 작은 샘을 좋아해 스물이 되던 해, 샘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우리 모두 백일장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녁을 지을 때였다. 1층 사는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웃집 여자의 평생을 잊지 못하는 반가운 전화였다. “자기 이름 박정자 아니야?” 내가 썼던 글이 입상자 발표로 뉴스에 나왔다는 전화였다. 그다음에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국자를 내려놓은 채 허허실실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대뜸, “여보, 나 꼴값했다.” 큰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내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 쿵쾅 요동치듯 뛰었다. 마치 남편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생애 처음으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잘하는 게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날 내 글은 ‘금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받은 건 2돈짜리 금반지였다. 그날 이후 남편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농담하듯 나를 부를 때 ‘글쟁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4년 뒤 같은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다. 부상으로 받은 이십 만원 중에 꼴값한다는 남편을 위해 십만 원을 주고, 남편이 좋아하는 수석을 사 주는 걸로 다시는 내게 글을 못 쓴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두 번의 백일장은 그저 운이 좋아 상을 탄 것에 불과했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15년 육아와 살림을 하며 나는 글을 잊고 살았다기보단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빴다. 하지만 불현듯 혼자 있을 때면 무언가 내 삶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남들이 속되게 말하는 그 꼴값은 내게, 나 자신의 됨됨이와 모양 생김새를 찾아가는 숙제처럼 남겨졌다. 남편조차 조롱하듯 말하던 그 말에 대응하듯 나는 그것이 꼴값이 아닌 내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잊을만 하면 불현듯 떠오르던 그 말. 아직도 그 숙제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숙제의 해답을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서툰 솜씨로 그 숙제를 하고 있다.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