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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늦게 피는 온도 / 박삼숙 ​

작성자그후로도|작성시간26.06.10|조회수19 목록 댓글 0

가장 늦게 피는 온도 / 박삼숙


​책상 앞에 앉아 반쯤 열린 창을 본다. 들어오는 바람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계절이 바뀌는 징후는 늘 이토록 애매한 공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이라 부르기엔 이르고 겨울이라 하기엔 이미 멀어진, 이 경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문득 손끝에 걸리는 기억 하나를 길어 올린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봄의 기척이 문장 사이로 스며든다.

​ 어머니에게 봄은 달력의 숫자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봄을 말로 부르거나 날짜를 세어 마중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무거운 몸이 먼저 움직였고, 그 움직임의 궤적이 곧 봄의 지도가 되었다. 새벽 공기가 여전히 서슬 퍼런 날에도 어머니는 마당으로 내려갔다. 묵직한 씨감자 자루를 끌어당기고, 눅눅한 흙을 만지며 밭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당신만의 입춘(立春)을 선포했다. 일기예보보다 빠르고 계절의 흐름보다 정확한 몸의 판단이었다. 어머니에게 봄은 확인하는 계절이 아니라, 스스로 밀고 나가는 시작의 계절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마루 끝에 턱을 괴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특별할 것 없는, 해마다 반복되는 지루한 풍경이라 여겼다. 어머니는 씨감자를 반으로 가를 때 꼭 눈의 방향을 살폈다. 칼을 대기 전 잠시 멈추던 그 정적의 시간. 그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이자 생명에 대한 예우였다. 어디를 남기고 어디를 잘라야 흙 속에서 썩지 않고 눈을 틔울지 이미 알고 있는 숙련된 손놀림이었다. 말없이 반복되던 그 단조로운 동작들이 실은 거대한 생명의 밑그림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려진 씨감자는 곧장 땅으로 가지 않았다. 단면에 재를 뿌리고, 흙의 습도를 살피며, 손으로 몇 번이고 고랑을 고른 뒤에야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모든 과정은 더디었으나 불필요한 법이 없었다. 왜 이리 시간을 끄느냐는 어린 딸의 투정에 어머니는 대답 대신 흙만 만졌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니는 늘 씨앗보다 흙이 먼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를 살폈던 것이다. 먼저 심는 기술보다, 흙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야말로 농사(農事)의 본질임을 어머니는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 심어놓은 밭은 한동안 적막했다. 흙을 덮어도 수면 위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칠이고 그 자리를 오가며 보이지 않는 땅속의 안부를 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치열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봄은 초록 싹으로 증명되는 화려한 계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둠을 견뎌내는 인고의 계절이었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등 뒤로 노을이 깔리면 부엌은 다시 분주해졌다. 봄의 음식은 늘 가벼웠으나 그 과정은 엄격했다. 쌀을 씻고 불을 지피며 김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곡식이 익어가는 속도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그 태도는 삶의 전반을 관통했다. 빨리 끝내는 일보다 끝까지 책임지는 일을 선택했고, 화려한 성과보다 정직한 과정을 신뢰했다.

​부엌 문턱에 앉아 바라보던 어머니의 등은 언제나 가족을 향한 하나의 완벽한 세계였다. 누구의 그릇이 먼저 비었는지, 오늘 누구의 기색이 좋지 않은지 말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어머니는 늘 집안의 중심에 있었지만, 결코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가장 먼저 깨어 움직였고 가장 늦은 온도에서 비로소 휴식에 들었다.

“때가 되면 다 나온다. 기다려라.”
배고픔을 참지 못한 형제들이 가마솥 주위로 모여들 때마다 어머니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독려이자 삶을 대하는 지엄한 훈계였다. 어머니는 결과보다 시간을 먼저 믿었고, 그 믿음은 우리를 키워낸 가장 큰 거름이 되었다.

​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형제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 흩어졌다. 밭은 도시의 소음 속으로 잠겼고, 어머니의 손은 마른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다. 어느 해부터인가 씨감자를 심는 어머니의 활기찬 뒷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봄이 와도 밭은 고요했고 마당의 분주함도 잦아들었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허공이 아니라 밀도 높은 기억으로 채워졌다. 해마다 봄바람이 불면 나는 여전히 흙을 만지던 어머니의 그 낮은 자세를 떠올린다.

​ 다시 현재의 책상 앞으로 돌아온다.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원고지 위를 서성인다.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계시지 않지만, 삶이 조급해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 속도를 늦춘다. 싹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생명이 멈춘 것이 아님을, 결과가 늦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의 봄에서 배운 유일한 생존법이다.

​ 어머니가 남긴 유산은 눈에 보이는 재산이 아니다. 계절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지루한 시간을 건너는 방식이다. 먼저 움직이되 앞서지 않는 법, 기다리되 책임을 미루지 않는 법.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간까지 포함하여 하루를 온전하게 살아내는 그 지독하게 따뜻한 온도였다.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결국 다시 어머니의 봄으로 돌아와 문장을 맺는다. 말없이 흙을 열던 그 투박한 손과 보이지 않는 시간을 믿었던 그 단단한 마음.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글 속으로, 내 삶의 방식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 오늘도 봄은 소리 없이 오고, 나는 그 기척을 뒤늦게 깨닫는다. 어머니가 그랬듯 계절은 말보다 실천으로 먼저 온다. 나는 이제 그 속도를 억지로 앞지르려 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뒤처지지 않게 묵묵히 나만의 씨앗을 심을 뿐이다. 기다림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글을 닫는다.

​ 가장 늦게 피는 온도로, 나의 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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