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 민경준
샘 옆 낡은 평상 위에는 바리바리 싸놓은 검정 비닐봉지들이 나란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섬주섬 차에 싣다 보면 어느새 뒷좌석까지 짐칸이 꽉 찬다. 껍질을 정성껏 깐 흰 마늘부터 파, 된장 고추장은 기본이다. 요즘은 어머니가 쪼그려 앉아 밭에서 막 캐온 냉이며 달래가 봉지 사이로 싱그러운 흙 내음을 훅 끼얹는다. 때로는 손주들 주려 사다 놓은 과자 한 박스나 사과, 배도 섞여 있다.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이 평상을 채울 궁리만 하신 듯하다. 월요일엔 산나물을 뜯고, 화요일엔 장을 담그고, 수요일엔 마늘을 까며 자식 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게다. 흙 묻은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자식 입에 들어갈 것들을 챙겨두신 그 마음, 매주 토요일, 시골집 평상에서 마주하는 이 풍경은 투박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정갈한 사랑의 차림상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흙과 함께 사셨다. 봄이면 삭신이 쑤셔도 고추 모종을 심고, 여름 뙤약볕 아래서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들깨밭의 잡초를 매셨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당신 몸 돌볼 겨를 없이 살아온 세월, 그 무게를 못 이긴 어머니의 허리는 이제 자꾸만 땅으로 굽어든다. 걷는 모습도 뒤뚱거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모습이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언젠가 돌아갈 흙이 그리워 몸도 그쪽으로 먼저 기우는 것일까. 굽은 등 위로 내려앉은 노을이 유독 쓸쓸해 보이는 오후다.
그런 어머니가 아흔을 앞두고 큰 결심을 하셨다. 성당에 나가 영세를 받겠노라 선언하신 것이다. 누님의 손에 의지해 처음으로 성당에 가시던 날, 어머니는 장롱 깊숙이 넣어두셨던 가장 깨끗한 외출복을 꺼내 입으셨다. 6개월간의 긴 교리 공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흔의 노모에게 신앙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돋보기를 써도 성경 구절은 눈앞에서 뿌옇게 번졌고, 기도문을 외우려 입술을 달싹여보지만 돌아서면 말씀들은 바람처럼 모두 흩어져 버렸다. 신부님의 강론도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가 무얼 알겠느냐”며 자책하며 돌아오시는 길, 그래도 어머니는 출석부만큼은 거르지 않으셨다, 굽은 노모의 그 지극한 진심을 하느님이 어찌 모르실 리 있겠는가.
투박한 손으로 난생처음 묵주를 들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낮은 혼잣말로 하는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도 내용이야 뻔할 터였다, 그저 자식들의 안녕과 농사 풍년, 그리고 그 쌀밥이 자식들 입에 무탈하게 들어가는 모습 보는 것,
하지만 구순이 다 되어 성당 문턱을 넘은 어머니의 속내는 남들이 말하는 ‘노년의 평화’보다 훨씬 절박하고 시린 곳에 맞닿아 있었다. 몇 해 전, 차가운 산비탈 가덕 요셉 공원에 먼저 눕힌 아들 녀석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였다. 어머니에겐 성당은 형식을 갖춰 기도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아들이 먼저 가서 기다릴 ‘하늘나라’의 주소를 익히는 공부방이었고, 훗날 그곳에 당도했을 때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통행증’을 미리 준비하는 곳이었다.
“신부님 나 같은 죄인도 영세를 받으면 그 애 옆으로 갈 수 있나요?” 교리 수업 시간마다 어머니는 마디 굵은 손을 맞잡으며 아이처럼 묻곤 하셨다. 자식을 먼저 보낸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라고 믿는 어머니, 그 깊은 마음의 생채기를 씻어내고 재회를 허락받는 간절한 고해, 그것이 어머니가 성당에 가야만 했던 유일한 이유였다.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평상에 차려두지 못하는 대신, 어머니는 기도문 한 줄에 아들의 안부를 꾹꾹 눌러 담으셨다.
마침내 영세 받던 날, 하얀 미사포를 쓰신 어머니의 얼굴은 영락없는 수줍은 소녀 같았다. 깊게 파인 주름을 화장품으로 메우고 핑크빛 립스틱까지 바르니 열 살은 더 젊어 보이셨다. 신부님이 성수를 찍어 축복을 내릴 때,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기보다는, 이제야 아들에게로 향하는 확실한 길을 약속받았다는 안도의 눈물이었으리라. 미사포 사이로 흐르는 눈물자국 위로 지난 세월의 고단함과 회한이 씻겨 내려가고, 비로소 새로운 평화가 어머니의 얼굴에 머물기 시작했다.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얻고 성당을 나오며 어머니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이제 마음의 집을 하나 얻은 것 같구나” 평생 모진 풍파에 시달리며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비로소 그분 앞에 내려놓으신 듯 편안해 보였다. 하느님 앞에서는 겸손한 어린아이가 되고 자식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어머니.
성당 한구석에서 묵주 알을 굴리는 어머니의 기도는 그 자체가 웅장한 교향곡이다. “우리 자식들 가는 길에 가시 돋지 않게 하시고 밥 굶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먼저 간 그 애 옆에 나중에 편히 있게 해 주세요.” 어머니만의 투박한 문법으로 읊조리는 그 중얼거림은, 성당 안의 그 어떤 성가보다 가슴을 깊게 울린다. 평생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의 몸을 촛불처럼 태워 오신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의 그 눈물겨운 기도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건너가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제 그런 어머니를 위해 다시 기도한다. 어머니 남은 생이 뒤늦게 만난 신앙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길, 가슴속 응어리를 하느님께 다 털어내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행복하시길, 그리고 훗날 소풍을 끝내고 떠나실 때, 천국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 아들을 기어이 만나 손을 맞잡으시라 믿기에, 우리는 더 이상 너무 슬퍼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