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보다/ 박종희 나이 듦의 신호는 예고 없이 눈에서부터 찾아왔다. 어느 날부턴가 손바닥 안의 활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흐릿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돋보기를 코끝에 걸쳐야 겨우 책장을 넘기고, 작은 글자 하나하나를 더듬듯 해독해야 했다. 처음엔 침침해진 눈을 원망하며 노심초사했으나, 곰곰이 생각하니 이 또한 몸이 내게 건네는, 은밀하고 다정한 전언이 아닐까 싶었다. 학창 시절, 책 속에 파묻혀 혹사당했던 내 눈은 일찍부터 빛을 잃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끼워야 했던 콘택트렌즈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마흔 무렵 인위적으로 시력을 끌어올리는 라식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 후 세상은 마치 제 빛깔을 되찾은 듯 선명해졌고, 나는 그 밝아진 눈으로 닥치는 대로 세상을 읽고 채웠다. 그러나 25년 넘게 빌려 쓴 시력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요즘은 눈이 수시로 뻑뻑해져 인공눈물을 갈구하고, 안구건조증으로 안과 문턱을 드나든다. 건조한 눈에 인공눈물을 채울 때마다 세상을 너무 악착같이 담으려 했던 젊은 날의 욕심을 돌아보게 된다. 몸이 허락한 한계를 넘어 더 선명하게, 더 많이 보려 했던 그 인위적인 갈망이 그제야 자연의 섭리라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비명(非明)의 흐릿함 속에서, 조금 느리지만 더 깊이 세상의 윤곽을 음미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젊은 날엔 지척에 있는 것들이 너무 잘 보여서 문제였다. 손바닥 안에 든 작은 이익과 당장 눈앞의 성과, 타인의 작은 허물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서슬 퍼렇게 선명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남의 눈에 든 티끌을 보느라 정작 내 마음의 들보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보지 않아도 좋을 것들까지 너무나 또렷이 보였던 탓에 내 마음의 호수는 늘 잔물결이 일렁이며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생체 리듬은 나에게 망원(望遠)의 눈을 갖추라 속삭인다. 가까운 소란에서 눈을 떼고, 저 먼 산등성이와 아스라한 지평선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눈이 이토록 정직하게 퇴행하는 것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과학보다 치밀한 자연의 배려일지 모른다. 눈앞의 사소한 시비(是非)에는 적당히 눈을 감고, 대신 삶의 너른 풍경을 깊이 내다보라는 몸의 준엄한 가르침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운전대 앞에서도 확연히 느껴진다. 시력이 짱짱하던 젊은 시절, 나는 도로 위를 거칠게 누비며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흐려진 시력은 속력을 조절하게 만들고 조심성을 불러온다. 야간 운전에서는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빛줄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수시로 살피며 도로의 흐름을 확인한다. 목전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오히려 멀리까지 안전하게 내다보게 되는 아이러니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옆 차의 흐름과 뒤차와의 거리감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묘하게도, 시력을 잃어가는 만큼 운전은 더 안전해졌고 사고의 위험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앞만 보고 질주하던 시야를 넓혀 주변을 찬찬히 살피게 된 것, 이것이야말로 나이 듦이 주는 안전한 속도가 아니겠는가. 문득 평생 돋보기 한 번 쓰지 않으셨던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아버지는 작은 글씨의 성경책을 무리 없이 읽고 정갈한 필사도 마치셨다. 안경 너머 세상을 거치지 않고도 여든이 넘도록 맑게 보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는 무릎을 친다. 욕심 없는 사람은 눈도 흐려지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눈은 이미 젊어서부터 세상의 낮은 곳과 먼 곳, 즉 영원한 가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기에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던 것이리라. 비록 나는 아버지처럼 맑은 눈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이제 노안이 가져다준 불편함을 기꺼이 혜안(慧眼)으로 바꾸어 보려 한다. 가까운 곳의 시시비비를 가르는 예리한 칼날 같은 시력 대신 지나온 길을 너그럽게 품고, 다가올 시간의 노을을 평온히 응시하는 망원의 마음을 가지리라. 눈의 흐림은 이제 더 이상 결핍이 아니라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하는 은밀한 선물임을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나쁜 것들과 눈에 거슬리는 추한 것들은 일부러 슬쩍 눈감아주려 한다. 돋보기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작은 활자들은 세상의 잡다한 소음쯤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안경을 벗었을 때 그제야 환하게 드러나는 먼 산의 푸르름과 선한 사람들의 미소만 가득 눈에 담을 일이다. 가까운 것을 놓아주니, 비로소 먼 곳이 들어온다. 남은 생의 길목마다 눈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저 먼 곳의 평화가 보랏빛 노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 멀리 보는 눈은 이제 더 이상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다. 눈앞을 비워야 드디어 세상의 온화함과 넓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늦게나마 참된 시력을 얻은 듯 숨을 고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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