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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세계 100대 영화-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아서 펜(Arthur Penn) 감독

작성자그후로도|작성시간12.11.23|조회수514 목록 댓글 0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 : 부부 은행강도가 ‘뉴시네마’를 열다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는 1930년대의 부부 갱이다. 금주령 시대(Depression)의 인물인 이들은 감옥에서 나온 클라이드가 카페 여급 보니를 만나면서 강도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떠돌이 모스가 가담하고, 나중에 형 벅과 형수 블랑슈가 합세해 모두 다섯 명이 한 차에 타고 차례로 은행을 턴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를 보고 싶어하던 보니가 초원에서 어머니와 친척들을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시적이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국 ‘새로운 영화(뉴시네마)’의 효시 같은 작품이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 이 영화에 주목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스』는 1967년 12월 8일자 커버스토리로 이 작품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베트남 전쟁이 기폭제가 되어 태동했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자행한 폭력을 지켜본 젊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제까지의 미국을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이지 라이더>는 이런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소자본으로 큰 돈을 번 이 작품부터 미국의 ‘새로운 영화’가 번지기 시작한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클라이드의 형 벅과 형수 블랑슈는 도중에 부상을 입고 떨어져나가고, 모스마저 아버지에게 잡혀 돌아감으로써 결국 보니와 클라이드만이 벌집 같은 기총소사 앞에서 최후를 맞이한다(보니는 사실 전기의자에 앉아 죽어갔다). 이 기총소사의 처절한 마지막 장면에서 보니가 성적 오르가슴을 느꼈을 것이라는 평이 있다.

 

  클라이드가 성 불구자여서 잠자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평론가는 1930년대의 은행은 서민을 착취하는 기관이었으며, 클라이드의 갱단은 이를 공격함으로써 권위와 질서에 도전한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보니는 시를 썼다. 그들의 행각을 쓴 이 시는 일종의 발라드다. 그 마지막 연은 이렇다.

 

  어느 날 그들은 함께 내려갈 것이다

  아주 적은 사람들에겐 슬픔--

  그리고 법에게는 구원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위한 죽음일 뿐.

 

  데이비드 뉴먼과 로버트 벤튼이 쓴 시나리오는 프랑수아 트뤼포에게서 영감을 얻은 아서펜이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를 생각하며 지시한 것이라고 평론가 폴린 킬은 적고 있다. 제작은 클라이드 역의 워렌 비티가 맡았다. 폭력과 시정, 1930년대에 대한 향수를 발라드풍으로 구성한 이 작품에서 폭력은 베트남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아서 펜은 이 작품의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내가 이 영화에서 묘사한 것은 베트남에서 벌어진 폭력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또 클라이드가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나는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했다.”

 

  보니 역의 페이 더너웨이는 모자와 시거로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일본에서 붙인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원제는 ‘보니와 클라이드’이다.

 

  ㅡ안병섭

 

 

  1960년대 후반 미국 사회는 물리적인 폭력이 난무한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이래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지난 역사에 대해 의식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는데 서부 개척시대의 갱을 빼놓고 논의할 수 없는 것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생각하였다. 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이드(워런 비티)는 차 주인인 보니(페이 더너웨이)가 알아챈 것도 모른 채 차를 훔치려고 한다. 거세게 달려드는 보니에게 클라이드는 매력을 느끼고, 보니도 같은 감정이다. 공범 관계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보니와 클라이드에게 클라이드의 형 벅(진 해크먼)과 모스(마이클 J.폴라드), 블랑슈(에스텔 파슨스)가 합세한다. 일행이 많으니 범행 수법도 대단해지는 반면 말도 많아진다.

 

  어느 날 경찰에 붙잡힌 블랑슈를 구출해내자 오히려 그는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우긴다. 불화를 원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요구에 응하는 클라이드를 보니는 못마땅하게 여긴다. 꼬리가 길면 잡히듯이 경찰에 포위된다. 포위망을 뚫고 모스의 농장으로 피하기 위해 차를 몬다. 그러나 모스 아버지의 밀고로 이미 농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경찰의 기관총 세례를 받는다.

 

  종래의 갱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American New Cinema)의 효시이다. 196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에스텔 파슨스)과 촬영상을 수상하였고,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페이 더너웨이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ㅡ네이버 백과사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현대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된다.” 

  연출자 아서 펜 감독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공개 직후 영화 전문지 『시네마』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아서 펜은 이 영화 외에 <앨리스의 식당> <리틀 빅 맨> 등 주로 소외받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이 처한 한계를 폭력을 통해 해소시키려다 좌절당하는 과정을 담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준 연출자이다. 이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경우 1932년 봄부터 1934년 겨울까지 만 3년 동안 경찰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약탈과 살인을 자행해 피살당할 때까지 무려 12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켰던 클라이드 바로와 보니 파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한낱 범죄자에 불과했지만 아서 펜은 ‘창작의 자유’를 내세워 이들 두 남녀를 구시대적인 사회 질서의 개선을 요구하는 열혈 혁명 청년과 여성 해방론자로 탈바꿈시켜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

 

  보니는 댈러스시에서 노동자 집안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보니는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남자 친구와 16세 때부터 동거 생활을 해오다 남자가 강도 혐의로 복역 중일 때 자신보다도 더 어려운 형편에 있던 21세의 청년 클라이드를 만나 결혼식을 치른다. 영화 속에서 보니가 자신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텍사스주 유격대원 프랭크 해머에게 키스를 한다든가 늘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장면은 자유분방하고 남성들의 권위의식에 반기를 드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하나 클라이드가 보니로부터 ‘당신은 이 총을 쏠 배짱도 없을 걸’이라는 말을 듣자 총을 들고 상점을 털면서 다시 범죄의 세계로 빠져드는 장면은 이들이 매우 즉흥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정이었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마치 로빈 훗을 연상시키는 의적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자 전기작가인 존 톨랜드는 ‘클라이드는 사소한 것을 얻기 위해 총을 난사하는 등 매우 무자비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범죄자들의 삶을 미화시켰다는 비난이 만만치 않았지만 서서히 대중들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빅 히트작이 된다. 이에 대해 영화학자들은 공개 당시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와 민권 운동이 촉발됐고 청년들이 기존 문화에 반기를 드는 대항문화 운동 등이 거세게 몰려오면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두 주인공의 행동은 억눌린 자들의 반항 의식으로 동정을 받게 됐다’는 분석을 받았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4년 5월 23일 루이지애나주 아카디아 근교에서 매복해 있던 댈러스 경찰 테드 힌튼과 텍사스 유격대원 출신의 프랭크 해머 등 4명으로부터 무차별 총격 세례를 받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ㅡ네이버 지식사전

 

 

 

출처: 이승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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