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과 짐(Jules et Jim 1961) :'성의 정치'에 항거한 여성의 자유선언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감독
줄거리;
독일인 쥘과 프랑스인 짐은 고전적인 인생과 문학을 논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약간 고답적이고 평온해 보이는 이들은 정원의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여인을 꿈꾼다. 이른바 피그말리온 증후군. 과연 그들 앞에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자유분방하며 생동감 있는 여자 까트린느를 만나고, 그들은 동시에 즉흥적이며 매력적인 그녀에게 사로잡힌다. 이들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평화롭게 살 무렵, 철교 위를 뛰어가던 모습은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윽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헤어졌다가 변함 없이 다시 만나고, 쥘의 적극적인 구애로 까트린느는 쥘과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쥘과 까트린느의 사이가 소원해질 즈음, 짐이 나타난다. 까트린느는 부드럽고 우유부단한 쥘의 매력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소 냉정한 짐에게 이끌린다. 물론 짐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거절한다. 이들 사이에는 편지가 왕래되고, 약간의 오해 끝에 쥘과 짐의 역할은 뒤바뀌어 짐은 까트린느의 연인이 되고 쥘은 아내의 헌신적인 친구로 남는다. 그러나 짐은 곧 옛 연인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파리로 돌아간다. 마침내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은 파괴하라는 본능의 목소리에 따라 그녀는 그와 함께 동반자살하게 된다. 홀로 남은 것은 쥘뿐이다.
ㅡ곽재용
해설;
1953년, 73살의 앙리 피에르 로셰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첫 소설 『쥘과 짐』을 발표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당시 21살. 랑글루아가 만든 시네마테크의 악동이자 앙드레 바쟁의 「카이에 뒤 시네마」로 평단에 입문한 그는 언젠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61년, 트뤼포는 기어코 그 꿈을 이루게 된다.
<쥘과 짐>은 두 남자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상투적인 멜로드라마에서 닳고 닳도록 써먹은 소재다. 그러나 트뤼포는 진부한 삼각관계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성의 자유와 그에 대한 남성의 반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쥘과 짐>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쥘이나 짐이 아니라 카트린이다.
두 남자와 친구이자 부부, 연인의 관계를 유지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카트린은 이상주의자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누구에게 이해를 바라기보다는 행동으로 여성의 ‘해방’을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화적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불안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유럽의 사회적 배경은 그가 설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사실 카트린이 이루려고 했던 자유는 쥘과 짐이 스스로에게 던진 과제이기도 했다. 그 과제를 카트린만이 목숨을 던져가며 쟁취하는 것이다. <쥘과 짐>에서 가장 강력한 나름대로의 자기 해방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트린은 쥘과 짐에게, 아니 트뤼포에게 아나키스트인 동시에 대지의 어머니다.
이처럼 1960년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매우 지적이며, 또 남성들에 비해 당당하고 진취적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여성을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할 뿐이다.
트뤼포의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삼각관계는 필연적으로 소외를 야기하는데, 트뤼포는 이를 언어의 문제로 파악한다. 쥘의 독일식 악센트는 그를 타자와 분리시킨다. 쥘과 짐은 다른 트뤼포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언어가 가장 중요한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카트린의 문제는 언어로는 풀리지 않는다.
확실히 트뤼포는 같은 랑글루아와 바쟁의 아이이면서도 고다르처럼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성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쥘과 짐, 카트린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장 기초적인 정치집단, 즉 가정에 대한 관심의 일면이기도 하다. 정치란 가정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사랑이야기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결혼이 불완전한 제도임을 인정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카트린의 죽음은 ‘성의 정치’에 관한 항거다.
르누아르에게는 일상적 삶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을, 히치콕에게는 영상의 힘과 감각을 배운 호모ㅡ시네마티쿠스 트뤼포는 이러한 그의 주제의식을 때로는 서정적 스타일로, 또 때로는 낯선 사진 효과와 편집 효과(스톱 프레임, 스위시 팬, 점프 컷 등)로 엮어나간다. 말하자면 대중성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누벨바그의 실험정신을 잃지 않는 조화로움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쥘과 짐>은 누벨바그 영화를 따분하게 생각하는 대중들에게조차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ㅡ김지석
출처: 이승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