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유 소성의 역사
소금이라 함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한 소금이 도자기 소성에서 유약 대신으로 사용된 것 또한 오래 전의 일이다. 유럽에서는 12세기경부터 독일의 라인지방에서 소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6∼17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소금유 소성이 확산되어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의 회색경질토기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푸레독'이라는 것이 있었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온의 가마 번조에서 생겨난 재를 자연스럽게 녹아 내리게 하여 약간의 녹색 계열의 재유가 형성된 상태에서 약간의 천일염을 가마 안에 투척하고 그 위에 연기를 쏘여 검게 만드는 기법이다.
고된 작업에서 찾는 도예가의 정체성
이번 전시에서 박동엽은 1999년 호주에서의 개인전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시도한 소금유 소성에 대한 결과물들을 보여 주고 있다. 대학원 졸업 후 분청 작업에 몰두해 왔던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분청에서 소금유 작업으로의 전환기적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박동엽의 소금소성은 초벌, 재벌을 하지 않고 바로 본벌로 들어간다. 그의 작품의 크기로 볼 때 충분한 건조시간을 가진 다음(때로는 30일 이상 건조 후) 소성 준비를 한다. (1.7루베의 석유가마에서 평균 40시간 이상의 소성시간을 가지며, 소성온도 1300℃이다.) 작가는 소금 유소성이 갖는 여러가지 난제들-즉 소지 조성비율, 장시간의 소성, 소금의 투척량 조절 등-을 잘 풀어내고 있다. 특히나 자신의 작업에 맞는 도자기 소지와 발색을 찾아내는 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 듯 하다.
이번 전시에 나타난 그의 작업에서는 이전의 작업과는 달리 문양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작가는 꽃이라는 평이한 소재를 이전부터 자신의 작업의 영역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박동엽의 꽃은 현실 속의 꽃이 아니라 작가의 관념 속의 꽃이다. 그래서 전시장에서 보게 된 꽃에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세 잎 혹은 두 잎의 꽃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존 속의 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꽃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심고 있는 것이다. 그 꽃은 작가의 산화철과 상감기법으로 피어나고 있다. 또한, 기존 분청작업에서 그는 인화문상감, 박지 등의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왔는데, 최근의 작업에서는 주로 분청 작업에서의 상감, 귀얄, 덤벙 작업만이 절제되어 문양으로 시문되어 보여질 뿐이다. 즉 문양을 통한 작업보다는 기물이 갖는 조형미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소금유 소성의 역사
소금이라 함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한 소금이 도자기 소성에서 유약 대신으로 사용된 것 또한 오래 전의 일이다. 유럽에서는 12세기경부터 독일의 라인지방에서 소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6∼17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소금유 소성이 확산되어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의 회색경질토기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푸레독'이라는 것이 있었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온의 가마 번조에서 생겨난 재를 자연스럽게 녹아 내리게 하여 약간의 녹색 계열의 재유가 형성된 상태에서 약간의 천일염을 가마 안에 투척하고 그 위에 연기를 쏘여 검게 만드는 기법이다.
고된 작업에서 찾는 도예가의 정체성
이번 전시에서 박동엽은 1999년 호주에서의 개인전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시도한 소금유 소성에 대한 결과물들을 보여 주고 있다. 대학원 졸업 후 분청 작업에 몰두해 왔던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분청에서 소금유 작업으로의 전환기적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박동엽의 소금소성은 초벌, 재벌을 하지 않고 바로 본벌로 들어간다. 그의 작품의 크기로 볼 때 충분한 건조시간을 가진 다음(때로는 30일 이상 건조 후) 소성 준비를 한다. (1.7루베의 석유가마에서 평균 40시간 이상의 소성시간을 가지며, 소성온도 1300℃이다.) 작가는 소금 유소성이 갖는 여러가지 난제들-즉 소지 조성비율, 장시간의 소성, 소금의 투척량 조절 등-을 잘 풀어내고 있다. 특히나 자신의 작업에 맞는 도자기 소지와 발색을 찾아내는 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 듯 하다.
이번 전시에 나타난 그의 작업에서는 이전의 작업과는 달리 문양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작가는 꽃이라는 평이한 소재를 이전부터 자신의 작업의 영역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박동엽의 꽃은 현실 속의 꽃이 아니라 작가의 관념 속의 꽃이다. 그래서 전시장에서 보게 된 꽃에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세 잎 혹은 두 잎의 꽃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존 속의 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꽃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심고 있는 것이다. 그 꽃은 작가의 산화철과 상감기법으로 피어나고 있다. 또한, 기존 분청작업에서 그는 인화문상감, 박지 등의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왔는데, 최근의 작업에서는 주로 분청 작업에서의 상감, 귀얄, 덤벙 작업만이 절제되어 문양으로 시문되어 보여질 뿐이다. 즉 문양을 통한 작업보다는 기물이 갖는 조형미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