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버터(黄油 butter)

작성자崇祖 氣琨(Bliss)|작성시간14.06.23|조회수239 목록 댓글 0

 

조선 중종朝에 엄청난 숫자의 양이 서울에 방목되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384 

조선시대 때 이미 낙(酪), 치즈(cheese)를 만들어 먹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474

*******************************************

 

수유 酥油[명] 버터(butter). [소, 양의 젖에서 추출한 지방]---

위 사전에서 말하는 데로 수유는 버터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버터가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한반도사정으로 보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근세기까지 우리나라 즉 한반도에 젖소가 있었을까?

우리나라에 육용이 아닌 유(油)용을 목적으로 한 염소나 양(羊)이 대량으로 양육되었던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사실이다.

과거 우리나라 유가공업 수준은 한마디로 제로에 가까웠다.

1962년 이전 까지만 해도 서울에 서울우유협동조합공장 한 개에 불과하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유(油)가공업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발달하였다.

버터(butter)역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은 1968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수입에 의존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버터나 우유가 생산되지 않았던 환경이었던가?

그러나 세종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절요에서는 국가가 나서 체계적으로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지리지는 지역적으로 경상, 황해, 강원, 평안, 함길도로 기록하였고

신증에서는 함경도와 평안도에 난다 하였다.

버터와 우유가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가죽주머니나 나무통 등을 이용하는 원시적인 제조법은 지금도 서남아시아, 히말리아에서 몽골에 이르는 내륙일대의 벽지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이들 지방에서는 심한 더위에도 잘 녹지 않는 버터오일을 만들고 있다. 버터는 유럽 중세시대의 사치성 식품으로, 근세에 와서야 북유럽 여러나라에서 대량생산되었는데 1848년 술통형태의 천(churn 攪乳器)의 발명, 1878년 연속크림분리기, 1880년 동력천의 개발 등으로 공업화가 급속히 진척되었다[야후사전]-란 내용에서 보면 서남아시아가 버터 주 중심지라고 보이고 그 외 히말리아, 티베트, 몽고지역을 범위로 볼 수 있다.

세종지리지가 말하는 함길도와 신증에서 말하는 함경도가 과연 같은 지역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함길도는 서아시아지역을 두었다고 보이고 그 이후 함경도는 함길도 보다 더 확대된 영역이었을 것인데 근세기 들어 갑자기 동북쪽으로 한정하여 변형시켜 놓은 지역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 모든 가정역시 한반도 내 한정시켜 논 할 수 없다.

평안도역시 알타이 북쪽 평원지대로서 바이칼호수를 포괄하는 지역범위라고 판단된다.

함길도, 함경도, 평안도는 버터생산지임이 틀림없다.

*********************************

세종지리지 수유(버터) 생산지역

경상도 

황해도 / 황주목 / 신은현 

황해도 / 해주목 

황해도 / 해주목 / 재령군 

강원도 / 회양 도호부 

평안도 

함길도 / 함흥부 

함길도 / 영흥 대도호부 / 문천군 

함길도 / 안변 도호부 

함길도 / 안변 도호부 / 의천군 

함길도 / 안변 도호부 / 용진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함경도(咸鏡道)  정평도호부(定平都護府)

함경도(咸鏡道)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함경도(咸鏡道)  덕원도호부(德源都護府) 

함경도(咸鏡道)  문천군(文川郡) 

함경도(咸鏡道)  북청도호부(北靑都護府) 

평안도(平安道)  중화군(中和郡) 

평안도(平安道)  순안현(順安縣) 

평안도(平安道)  안주목(安州牧) 

평안도(平安道)  가산군(嘉山郡) 

평안도(平安道)  자산군(慈山郡) 

평안도(平安道)  순천군(順川郡)

*******************************

고려사절요 제21권  

충렬왕 3(忠烈王三)

정유 23년(1297), 원 대덕(大德) 원년

○十一月,遣上將軍金延壽,如元,獻人參及耽羅酥油等物。

○ 11월에 상장군 김연수(金延壽)를 원 나라에 보내어 인삼과 탐라의 수유(酥油 우양(牛羊)의 젖을 달인 기름) 등의 물품을 바쳤다.

**********************

고려사절요 제22권  

충렬왕 4(忠烈王四)

신축 27년(1301), 원 대덕 5년

十二月,遣護軍崔涓,如元獻鷂,司宰尹鄭良,進酥油,上護軍李白超,進人參

○ 12월에 호군 최연(崔涓)을 원 나라에 보내어 매를 바치고, 사재윤(司宰尹) 정량(鄭良)은 우유기름[酥油]을 올리고 상호군 이백초(李白超)는 인삼을 올렸다.

**********************

고려사절요 제23권  

충선왕(忠宣王)

기유 원년(1309), 원 지대 2년

○十二月,遣李公世,如元,獻酥油,公世亦大順弟也,初,忠烈王入覲,大順請帝詔王,以公世爲別將,帝曰,官人有法,制國有君,朕何與焉,因賜大官羊,上尊酒,令大順,自白于王,王曰,公世,校尉耳,越散員而授別將,非舊例也,大順不敢復言,後聞帝言,如是乃授之。

○ 12월에 이공세(李公世)를 원 나라에 보내어 수유(酥油)를 바쳤다. 공세도 역시 대순(大順)의 아우이다. 과거에 충렬왕이 황제를 뵈러 갔을 때, 대순이 황제에게 왕에게 조서를 내려 공세를 별장으로 삼으라고 할 것을 황제에게 청하였더니, 황제가 이르기를, “사람을 벼슬시키는 데는 법이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왕이 있으니 짐이 어찌 간여하겠느냐." 하였다. 인하여 대관(大官 황제의 음식을 공급하는 주방(廚房))의 양(羊)과 상존주(上尊酒)를 주어 대순으로 하여금 스스로 왕에게 아뢰게 하였는데, 왕이 이르기를, “공세는 교위(校尉)일 뿐인데, 산원(散員)을 뛰어넘어서 별장으로 제수하는 것은 옛 관례가 아니다." 하였다. 대순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는데, 뒤에 황제의 말이 이러하였다는 것을 듣고는 곧 별장으로 제수하였다.

**********************

태종 17년 정유(1417,영락 15)  

4월19일 (을해)

함길도·평안도·풍해도의 각 고을에 흩어져 사는 간(干)들을 군역에 붙이라고 명하다

○豐海道都觀察使上除弊事宜。 啓曰: “豐川郡人朴夫介等八名, 稱爲進上生雁干, 平山人申原稱爲司饔房差備差使員, 每年春秋, 各官散接干各戶橫行, 糜費公廩。 上項干等春秋兩等, 物名數目及所納處, 未知爲實未便。 自今每名某物幾數、某處上納, 明文相考考察。” 敎曰: “咸吉、平安、豐海道各官散接生雁干、酥油干名目推考, 其中韃靼, 仍舊定體, 平民竝屬軍役。”


풍해도 도관찰사(豐海道都觀察使)가 제폐 사의(除弊事宜)를 올렸는데, 아뢰기를,

“풍천군(豐川郡) 사람 박부개(朴夫介) 등 8명은 진상 생안간(進上生雁干)이 되었다고 칭하고, 평산(平山) 사람 신원(申原)은 사옹방 차비 차사원(司饔房差備差使員)이 되었다고 칭하면서 해마다 봄·가을로 각관(各官)의 산접간(散接干)과 각호(各戶)를 횡행(橫行)하며 공름(公廩)을 허비합니다. 윗항의 간(干)들이 춘등(春等)·추등(秋等)으로 받아들이는 물명수목(物名數目)과 소납처(所納處)도 아직 알 수 없어 실로 미편(未便)하니, 이제부터는 매명(每名)마다 어떤 물건이 얼마이며, 어느 곳에 상납(上納)하는지를 명문(明文)으로 상고하여 고찰(考察)하게 하소서.”하니, 하교(下敎)하였다.

함길(咸吉)·평안(平安)·풍해도(豐海道) 각 고을의 산접 생안간(散接生雁干)·소유간(酥油干)의 명목(名目)을 추고(推考)하되, 그 중에서 달달(韃靼)은 그전대로 정체(定體)하고, 평민(平民)은 모조리 군역(軍役)에 붙이도록 하라.”

간(干) : 신량 역천(身良役賤).

달달(韃靼) : 몽고족의 귀화인-몽고족이 귀화하였다면 모두 달단이라고 하였다는 것인데 달단(Tatar, Tartary)은 간(干)의 신분으로서 조선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 했음을 알 수 있다.

***********************************

세종 3년 신축(1421,영락 19)  

11월28일 (정해)

군역의 회피 수단인 수유치를 폐지하다

○罷酥油赤。 黃海、平安等道有酥油赤, 自言達達之遺種, 以屠宰爲業, 每戶歲貢酥油一丁于司饔房, 家無差役, 避軍者多往依之。 然酥油實難得, 或有一戶經數歲未納一丁者; 或有數戶一歲共納一丁者, 所入於國家者無幾, 而爲州縣之弊者實多。 瑞興郡有一戶壯男二十一名, 而抗拒差役, 太上王命兵曹遍考各道酥油赤戶數, 令所居官充定軍役。 參議尹淮啓曰: “酥油供御用藥餌, 且時時以賜老病諸臣, 恐未可罷也。” 太上王曰: “非汝所知也。” 遂盡罷之, 凡數百戶。

수유치(酥油赤)을 폐지하였다. 황해도·평안도에 수유치가 있는데, 스스로 달단(韃靼)의 유종(遺種)이라 하면서 도재(屠宰)로써 직업을 삼고 있었다. 매호(戶)에 해마다 수유(酥油) 한 정(丁)을 사옹방(司饔房)에 바치고는 집에 부역(賦役)이 없으니, 군역(軍役)을 피하는 사람이 많이 가서 의지하였다. 그러나 수유는 실로 얻기 어려우므로, 혹은 한 호(戶)에서 몇 해를 지나도 한 정(丁)을 바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몇 호에서 공동으로 한 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게 되니, 국가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안 되는데도 주현(州縣)의 폐해(弊害)가 되는 것은 실제로 많았다. 서흥군(瑞興郡)에 한호(戶)에 건장한 남자가 21명이 있으면서 부역(賦役)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태상왕(이방원)이 병조에 명하여 각도의 수유치(酥油赤)의 호수(戶數)를 두루 살펴서, 있는 곳의 고을에서 군역(軍役)에 충당(充當)하게 하니, 참의 윤회가 아뢰기를,

“수유는 어용(御用)의 약(藥)에 소용되며, 또 때때로 늙어 병든 여러 신하들에게도 내리기도 하니, 이를 폐지하지는 못할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상왕은 말하기를,

“그대의 알 바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드디어 이를 다 폐지하니, 모두 수백호(戶)나 되었다.

 

적(赤)붉은 빛-적 발음은[chì]이다.-수유치[sū yóu chi]

 

태상왕(太上王)은 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상왕의 그 전왕을 일컫는다.

조선의 초대 왕인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와

2대 왕인 정종 이방과,

원래 상왕이었으나 개국의 공이 인정되어 태상왕이 된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이 있다

**************************

버터(黄油 butter)

 

Butter is commonly sold in sticks (pictured 4 oz/110 g) or blocks, and frequently served with the use of a butter knife.


"버터"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보우티론 boutyron〉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라틴어의 〈부티럼 butyrum〉이라는 말이 게르만어를 거쳐 유래했다. 이것은 아마 〈소-치즈cow-cheese〉를 뜻하는("보우스"[소]bous "ox, cow" + "티로스"[치즈]tyros "cheese") 구성이거나, 또 다른 언어, 스키타이어에서 유래한 것일 수 있다. 이 어근은 썩은 버터나 파르마 치즈 같은 건조식품에서 발견된 화합물 부티르산의 이름에서 계속 쓰이고 있다.

(Another possibility may be an extended derivation from Sanskrit bhutari, meaning "the enemy of evil spirits".)


일반적으로, 〈버터〉라는 말은 다른 설명이 붙지 않으면 스프레드 유제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보통 야채로 만든 퓌레나 견과류로 만든 땅콩버터나 아몬드 버터도 가리키며, 사과 버터 같은 과일 제품, 코코아 버터와 시 버터처럼 실온에서 고체 상태로 있는 지방 제품들도 보통 〈버터〉라고 한다.


버터의 제조

균질화 되지 않은 우유와 크림은 미시적인 작은 방울 모양의 유지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방울들은 인지질(지방산 유화제)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우유 안의 지방들이 서로 뭉쳐 덩어리지는 것을 막아준다. 버터는 크림을 휘저어 제조하며, 이것은 유지방 방울을 둘러싼 막들이 손상되어 지방들이 서로 결합해 크림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버터의 견실성은 생산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버터는 세가지 형태의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데, 자유 유지방, 유지방 결정, 그리고 손상되지 않은 지방 방울이 그 셋이다. 버터가 완성되었을 때, 이 셋의 비율이 견실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지방 결정이 많은 버터가 자유 지방이 많은 버터보다 단단하다.


교유는 작은 버터 알갱이들이 크림의 물로 된 부분 위로 떠오르게 한다. 이 물로 된 부분을 버터 우유—하지만 현대의 버터 우유는 대부분 탈지 우유를 발효시킨 것이다—라고 한다. 이후, 버터 우유는 흘려보낸다. 그리고 남은 버터 알갱이들을 압박하면서 반죽한다. 이 과정을 수작업으로 할 때는 버터 비터라고 하는 목제 판을 사용한다. 이렇게 고체 덩어리로 굳어진 버터는 버터 우유나 물을 파묻어 홈을 파 작은 조각으로 분해된다. 상업용 버터는 80%의 유지방과 15%의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버터는 대략 65%의 지방과 30%의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지방은 상당량의 중간 정도 크기 포화 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글리세롤과 지방산에서 얻어진 에스테르 트리글리세이드이다.

 

〈팔레스타인의 전통적인 버터 제조법〉 20세기 초기까지도 고대의 기술은 사용되어 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1914년 3월호.

 

                       Butter sold in a London market, salted (right) and unsalted (left)


버터의 기원은 BC 3000년경의 바빌로니아로 추정하는 설과, 인도의 신화에 우유를 교반(攪拌)하여 만들었다고 하는 것에서 고대 인도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고대는 화장용이나 연고로 사용한 것 같고, 이에 대한 기록이 많다. 그리스·로마는 올리브기름을 식용으로 하였고, 지형적으로도 양·염소 등의 사육에 적합하였으므로 그들의 젖에서 치즈를 만들었으며, 소는 사역용이기 때문에 버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소의 목축이 앞섰던 알프스 북쪽에서 버터의 이용이 보급되었고 이러한 식습관의 차이는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원시적인 가죽주머니로 우유를 흔들거나 치거나 하는 방법은 현재도 히말라야나 아프리카의 일부 지방에서 볼 수 있다. 버터는 중세기까지도 귀중품이었고 근세에 이르러 북유럽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1848년 통 모양인 천(churn: 교동기)의 발명, 1878년 크림 분리기의 출현에 의해 급속히 공업화가 이루어졌다.

 

                  Woman churning butter; Compost et Kalendrier des Bergères, Paris, 1499.

 

                                                    Western-pack shape butter


버터에는 젖산균을 넣어 발효시킨 발효 버터(sour butter)와 젖산균을 넣지 않고 먼저와 같이 숙성시킨 감성 버터(sweet butter)가 있다. 미국·유럽에서는 발효 버터가 많고 한국·일본에서는 감성 버터가 대부분이다. 또 버터에는 소금을 넣은 가염 버터와 소금을 넣지 않은 무염 버터가 있는데, 가정용은 모두 가염 버터이다. 무염 버터는 보존성이 짧고 식탁용으로는 맛이 부족하므로 제과원료나 조리용으로 이용되며, 신장병 환자를 위한 특수용도에 적합하다.


수제 버터컬쳐 버터 (cultured butter)

달콤 크림 버터 (sweet cream butter)

생크림 버터 (raw cream butter)

스프레더블 버터 (spreadable butter)

위프 버터 (whipped butter)


성분 및 영양가

버터의 평균조성은 지방 81%, 수분 16%, 무기질 2%, 소금 1.5∼1.8%이고, 나머지는 단백질을 주체로 하는 커드분(curd分)으로 되어 있다. 지방 중에는 뷰티르산·데칸산과 같이 탄소수가 적은 지방산이 있으며 버터 특유의 풍미를 지닌다. 버터 100g당 열량은 721kcal이다.


품질 및 보존

버터는 지방질이 많은 식품이므로 장기간 방치하면 지방이 산화되어 산패를 일으키며, 냉장하지 않는 경우는 곰팡이가 발생하거나 녹아서 버터 특유의 텍스처가 사라지고 풍미를 해친다. 따라서 -5~0℃의 저온에서 직사광선을 피한 깨끗한 장소에 보존해야 된다. 표면이 가볍게 녹은 정도에서는 두드러진 변화는 아니지만 한번 녹은 버터는 먼저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또 냄새를 잘 흡수하므로 냄새가 독한 물건과 같이 놓아두는 것은 피한다.


생산 및 소비

한국에서 버터가 생산된 것은 1968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소량씩 수입하였다. 버터의 생산량은 우유의 생산량에 비례해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외국에 비하면 생산량·소비량은 매우 적고 1인당 소비량도 아직 낮은 수준이다. [두산백과사전]

 

 

 

세종 14권, 3년(1421년) 11월 28일

군역의 회피 수단인 수유적을 폐지하다

수유적(酥油赤)을 폐지하였다. 황해도 · 평안도 에 수유적이 있는데, 스스로 달단(韃靼) 의 유종(遺種)이라 하면서 도재(屠宰)로써 직업을 삼고 있었다. 매 호(戶)에 해마다 수유(酥油) 한 정(丁)을 사옹방(司饔房)에 바치고는 집에 부역(賦役)이 없으니, 군역(軍役)을 피하는 사람이 많이 가서 의지하였다. 그러나, 수유는 실로 얻기 어려우므로, 혹은 한 호(戶)에서 몇 해를 지나도 한 정(丁)을 바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몇 호에서 공동으로 한 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게 되니, 국가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안 되는데도 주현(州縣)의 폐해(弊害)가 되는 것은 실제로 많았다. 서흥군(瑞興郡) 에 한 호(戶)에 건장한 남자가 21명이 있으면서 부역(賦役)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태상왕이 병조에 명하여 각도의 수유적(酥油赤)의 호수(戶數)를 두루 살펴서, 있는 곳의 고을에서 군역(軍役)에 충당(充當)하게 하니, 참의 윤회 가 아뢰기를,

“수유는 어용(御用/임금이 쓰는 것을 이르는 말)의 약(藥)에 소용되며, 또 때때로 늙어 병든 여러 신하들에게도 내리기도 하니, 이를 폐지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태상왕은 말하기를,

“그대의 알 바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드디어 이를 다 폐지하니, 모두 수백 호(戶)나 되었다.

====================================================================

 

광해군 원년 명나라 사신에게 차린 조반상에 우유를 재료로 한 타락죽이 올랐다.

이처럼 조선왕조의 상층부에서는 유제품이 상식되고 있었다.

유제품의 하나로 현재에도 널리 애식되고 있는 버터는 조선 전기에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업자가 있었는데, 그들을 수유치라 하였다.

수유치들은 주로 황해도와 평안도에 살고 있었다. 이들의 명칭으로 보아서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계급이 아닌가 사료된다. 수유치들은 대부분이 달단족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며, 이들은 유목을 주업으로 하면서 버터를 제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터는 국가에 공납하는 물품이었다. 공납된 버터는 임금의 약이나 가끔 늙고 병든 신하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귀한 식품의 하나였다. 달단족들은 짐승 도살을 생업으로 하면서 버터를 제조해 사옹방에 진공하는데, 버터 제조 종사자들은 군역을 면제받는 관계로 달단족이 아닌 자들도 군역을 피하기 위해 달단족인 척하면서 붙어 사는 자가 많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태종은 수백 호나 되는 수유치의 버터 제조를 금지시켜버렸다.

====================================================================

酥油 제조법입니다.

造法 : 以乳入鍋煎二三沸 傾入盆內冷定 待面結皮 取皮再煎 油出去渣 入鍋內 卽成酥油 入藥 微火溶化用.

제조법) : 젖을 노구솥에 넣고 두세번 끓어오르게 달인 다음 항아리에 부어 식힌다. 표면에 껍질이 맺히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취해서 다시 끓인다. 기름이 새어 나오면 찌꺼기를 제거하고 남은 것을 솥에 담아 놓으면 酥油가 된다. 약에 넣어 쓸 때는 약한 불로 녹여서 쓴다.

 

타락죽
■ 준비할 재료
쌀 1컵, 물 3컵, 우유 4컵, 브로콜리 100g, 소금 약간
■ 만드는 법
① 쌀은 씻어서 물에 2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 다음 바구니에 건져 물기를 빼둔다.
② 분마기나 믹서기에 불린 쌀과 물 1컵과 브로콜리를 넣고 갈아서 고운 체에 밭친다.
③ 밑이 두꺼운 냄비에 ②와 물 2컵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끓이다가 죽 상태가 되면 우유를 조금씩 넣어가며 주걱으로 멍울이 지지 않게 저어가며 더 끓인다.
④ 우유를 부어가며 농도를 어느 정도 맞춘다. 기호에 따라 소금으로 살짝 간하여 낸다.
 쌀은 물에 2시간 이상 충분히 불려야 한다.
② 불린 쌀을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갈아준다.
③ 냄비에 갈은 쌀과 분량의 물을 넣고 저으면서 끓이다가 우유로 농도를 맞춰가며 한번 더 끓인다.
■ Tips
임금님의 조반으로 애용된 타락죽
타락이란 ‘말린 우유’라는 뜻의 몽골어 ‘토라크’에서 온 말로, 곱게 갈아놓은 쌀에 물을 붓고 죽을 쑤다가 우유를 넣어 덩어리 없게 풀어 만든 것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 우유를 먹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부터. 조선시대에는 서울 낙산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귀한 음식이라 임금의 보양제로만 진상되었다고. 이때 타락죽의 재료인 생우유를 짜는 일은 내의원 의관들이 직접 맡았다고 전한다. <동의보감>에는 타락죽이 아이의 이유식, 노인과 환자의 보양식으로 소개되어 있다.
음주 전후 우유를 마시면 숙취가 해소될까?
우유의 지방과 단백질은 위와 장에서 분비하는 알코올분해효소의 분비를 원활하게 한다. 또한 우유의 지방 중 비타민 A가 위벽에서 피막현상을 일으켜 위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버터의 기원은 BC 3000년경의 바빌로니아로 추정하는 설과, 인도의 신화에 우유를 교반()하여 만들었다고 하는 것에서 고대 인도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고대는 화장용이나 연고로 사용한 것 같고, 이에 대한 기록이 많다. 그리스·로마는 올리브 기름을 식용으로 하였고, 지형적으로도 양·염소 등의 사육에 적합하였으므로 그들의 젖에서 치즈를 만들었으며, 소는 사역용이기 때문에 버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소의 목축이 앞섰던 알프스 북쪽에서 버터의 이용이 보급되었고 이러한 식습관의 차이는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원시적인 가죽주머니로 우유를 흔들거나 치거나 하는 방법은 현재도 히말라야아프리카의 일부 지방에서 볼 수 있다. 버터는 중세기까지도 귀중품이었고 근세에 이르러 북유럽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1848년 통 모양인 천(churn:교동기)의 발명, 1878년 크림 분리기의 출현에 의해 급속히 공업화가 이루어졌다.

〈제법〉 우유를 크림 분리기에 걸어 원심력으로 비중이 가벼운 우유지방을 주로 함유하는 크림을 분리한다. 이 크림 중에는 30∼40%의 우유지방분이 함유되어 있다. 다음에 크림을 살균하고 보통 5℃ 정도로 냉각하여 하룻밤 숙성시킨다. 이것을 천이라는 장치에 넣어 과격하게 교반하면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던 크기의 지방입자가 서로 충돌하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입자 크기로 성장하여 수분과 분리된다.

이 때 얻는 지방 덩어리를 버터 입자, 수분을 버터우유라 한다. 천은 처음 통모양의 목제였으나 금속제품으로 발전했고, 근래는 연속장치로 발전하여 자동화가 되었다. 버터 우유를 제거한 버터 입자는 2∼3회 수세()한 후 기계적으로 연압()시키고 다시 소금을 가하여 균일한 조직으로 만든다. 가정용 버터는 기계적으로 절단·포장하여 여러 가지 크기로 하여 시판되고 있으며, 제과원료 등의 영업용으로는 대형으로 포장·판매되고 있다.

〈종류〉 버터에는 젖산균을 넣어 발효시킨 발효 버터(sour butter)와 젖산균을 넣지 않고 먼저와 같이 숙성시킨 감성 버터(sweet butter)가 있다. 미국·유럽에서는 발효 버터가 많고 한국·일본에서는 감성 버터가 대부분이다. 또 버터에는 소금을 넣은 가염 버터와 소금을 넣지 않은 무염 버터가 있는데, 가정용은 모두 가염 버터이다. 무염 버터는 보존성이 짧고 식탁용으로는 맛이 부족하므로 제과원료나 조리용으로 이용되며, 신장병 환자를 위한 특수용도에 적합하다.

〈성분 및 영양가〉 버터의 평균조성은 지방 81%, 수분 16%, 무기질 2%, 소금 1.5∼1.8 %이고, 나머지는 단백질을 주체로 하는 커드분(curd)으로 되어 있다. 지방 중에는 부티르산·카프로산과 같이 탄소수가 적은 지방산이 있으며 버터 특유의 풍미를 지닌다. 버터 100g당 열량은 721 kcal이다.

〈품질 및 보존〉 버터는 지방질이 많은 식품이므로 장기간 방치하면 지방이 산화되어 산패를 일으키며, 냉장하지 않는 경우는 곰팡이가 발생하거나 녹아서 버터 특유의 텍스처가 사라지고 풍미를 해친다. 따라서 -5℃∼0℃의 저온에서 직사광선을 피한 깨끗한 장소에 보존해야 된다.

표면이 가볍게 녹은 정도에서는 두드러진 변화는 아니지만 한번 녹은 버터는 먼저의 상태로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또 냄새를 잘 흡수하므로 냄새가 독한 물건과 같이 놓아두는 것은 피한다.

〈생산 및 소비〉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버터를 만드는 사람들을 수유치라고 불렀는데 버터를 왕실에 바치는 대신 군역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군역을 면제받기 위해 수유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태종이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버터 제조 자체를 다 금지시켜버렸다. 근대에 이르러 버터가 생산된 것은 1968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소량씩 수입하였다. 버터의 생산량은 우유의 생산량에 비례해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외국에 비하면 생산량·소비량은 매우 적고 1인당 소비량도 아직 낮은 수준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