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은 일반적으로 저승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와 비견되는 명부의 왕이지요. 불교 쪽 전승으로는 저승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다섯번째 왕이라 하고 인도의 전승에서는 최초로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하지요. 이런 걸 히브리 전승과 합하면 염라대왕의 정체는
아무튼 염라대왕의 정체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도 궁금해 한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승을 다스리는 대왕의 정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에요!
첫번째, 고려 사람 유자량庾資諒(1150~1229).
유자량은 지금의 전남 나주 출신으로 무신정변 때 살아남은 문신으로(무신들과도 친하게 지낸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음) 그 후에도 높은 벼슬을 역임하다가 1213년 은퇴하여 조용히 불법을 닦으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당대의 문필가 이규보가 묘지명을 지었는데, 그 묘지명에 이런 대목이 전합니다.
앞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죽어서 한 곳에 가니 궁전 누각이 매우 장엄한데, 지키는 자의 말이「여기는 유복야(庾僕射)가 올 곳이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 말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생각하면 공의 행적이 이미 부끄러울 것이 없고, 세상을 떠남이 이러하였으니 그 말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이 좋은 곳에서 살아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렇게 유자량은 죽어서 저승의 궁을 차지했으니,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딱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말은없습니다만...
두번째, 박우朴遇.
박우는 선조 때 문신인 박점朴漸의 증조부라고 합니다. 특별한 이력은 전하지 않습니다. 황해도 연안延安에 살던 사람 하나가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알고보니 동명이인을 잘못 잡아온 것이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염라대왕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 자식들이 서울 어느어느 곳에 사는데 살아나면 찾아가서 내게 도포 하나를 새로 지어 보내라고 하라."
"제가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한들 미친 사람 취급받지 않겠습니까? 증험할만 한 것을 알려주십시오."
"시전 3권을 보면 내 옥관자 조각이 있으니 그걸 알려주면 믿을 것이다."
"새 도포는 어떻게 대왕께 전할 수 있습니까?"
"도포를 지어서 내게 제사를 지낸 뒤에 불사르면 되느니라."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박우의 아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도포를 바친 사흘 후 모든 집안 사람의 꿈에 박우가 나타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답니다.
세번째, 김인후金麟厚(1510~1560).
김인후는 지금의 전남 장성 출신으로 이황과 동문수학하고 조정에 나왔으나 인종이 일찍 죽고 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에서 물러나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살았다는 유학자입니다. 천문지리와 역학에도 밝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김인후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김인후와 친하게 지내던 오세억吳世億이라는 인물이 죽었다가 반나절만에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세억은 저승에서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일흔일곱이 된 뒤에 보자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을 해준 이가 바로 으리으리한 자미지궁에 거처하는 김인후였습니다.
역시 엄밀히 말해서 자미지궁은 옥황상제가 있는 곳이고 김인후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을 뿐이므로 김인후가 염라대왕인지는 좀 불명확합니다. 다만 수명을 관장하는 명부를 가지고 있고 저승사자를 부리고 있으므로 염라대왕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박우는 그리 오래 염라대왕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거겠네요.
네번째, 김치金緻(1577~1625).
염라대왕으로 제일 유명한 인물입니다. 안동 출신으로 갖가지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죠. 진주대첩의 주인공인 김시민에게 입양되었으며 선조 말기에 등과해서 광해군 때는 대북파로 이이첨의 심복이었으나 광해군의 학정이 거듭되자 벼슬에서 물러났고 인조반정 전에 반정파와 통하여 처벌을 면했습니다. 천문과 역술에도 밝았다고 합니다.
김치가 흥덕현감을 하고 있을 때, 한 노파가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들 둘이 갑자기 죽어 너무나 원통하다,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데려가는 염라대왕을 불로 호통을 쳐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어이없는 주장이었지만 7일 밤낮을 울어제끼니 김치로서도 더는 말릴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김치는 비법을 써서 호출장을 만들고는 사령 고장금(이 고장금이 제주 전설에서는 그 유명한 저승사자 강림입니다)을 불러다가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합니다.
고장금은 죽었다 생각하지만 현명한 아내의 도움(제주 차사 본풀이에서는 가신(집안신)들의 도움을 받죠)으로 염라대왕 호출에 성공합니다. 염라대왕은 동헌으로 와서 본래 그 노파가 무고한 손님을 잡아서 재물을 빼았고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 원혼들이 그 집안의 아이로 환생했던 것이죠.
김치는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하고, 그 아들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 아버지 염라대왕의 도움을 받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이 김득신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화가 김득신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출처; 초록불의 잡학다식
http://orumi.egloos.com/4759896
| [노래하는 신화 | 저승 이야기 ④] |
| 염라대왕은 내 포승줄을 받으시오 |
| 사흘 머물며 임무 완수한 강림 이승 귀환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형벌로 과양상이 응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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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삶의 문제가 죽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삶의 문제는 이인칭이나 삼인칭의 문제가 아니라 일인칭인 ‘나’의 문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우리에게 ‘저승 이야기’를 통해서 어릴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가르친다.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사는 법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늘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삶은 축복이 아닐까, 환희가 아닐까? 우리 신화의 강림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강림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늘 이판사판으로 사는 자의 ‘호탕함’과 ‘연연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 강림이 어떻게 염라대왕을 잡아오는지 구경해보자. 그 힘 그 배짱 쓸 만하구나 강림이 저승문 앞에 적배지를 붙여놓고, 연주문 기둥에 망건을 벗어 머리에 베고 누운 채 배짱 좋게 염라대왕 나오기를 기다린다. 저승문 앞에서 꼬박 이틀을 기다리자 천둥 번개 치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저승문이 열리더니 앞에는 영기, 뒤에는 기류를 세우고 삼만관숙 육방하인이 길을 비키라고 외치면서 연주문을 나온다. 첫 번째 가마가 넘어가더니 두 번째 세 번째 가마가 넘어가고, 네 번째 가마가 넘어가더니 열두 사자를 앞세운 다섯 번째 가마가 멈칫 서면서 무섭게 호령한다. “연주문에 붙인 적배지가 어떤 적배지냐?” 이원사자가 큰 소리로 말하자, “이승 강림이가 저승 염라대왕을 잡으러 온 적배지입니다.” 그때 강림이 염라대왕이 타고 있는 가마 앞으로 내달려가 붕어 눈을 부릅뜨고 배에 잔뜩 힘을 실어 소리친다. “염라대왕은 포승을 받으시오.” “감히 어떤 놈이 길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난데없는 방해꾼에 염라대왕이 노하여 천둥 번개를 부르니, 세상이 캄캄해지고 천지가 요동을 한다. 강림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쿵더쿵 겁이 덜컥 솟는다. 하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죽을 힘을 다해 열두 사자를 메다꽂은 뒤 세 신선이 준 홍사줄로 염라대왕이 탄 가마를 휘휘 묶는다. “저승에 관장(官長)이 있으면 이승에도 관장이 있는 법. 아무리 저승 관장이라 해도 이승 관장 명령도 들어야 합니다.” 염라대왕, 그 배짱이 쓸 만한지라. 그도 그럴 것이 산 자가 저승의 열두 사자를 메다꽂으니 그 힘이 쓸 만하고,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염라대왕 앞에서 큰소리를 쳐대니 그 배짱 한번 쓸 만하다. “넌 누구냐?” “이승에서 온 강림이오.” “용맹이 있어서 좋다마는 지금은 심복장자네 집 아기씨가 큰 병 들어 시왕맞이굿을 하며 나를 청하는 중이니 가서 술이나 한잔하고 가자.” “그것도 좋습니다.” 굿판에 들어서니 시왕맞이하던 신녀가 염라대왕을 청해 음식과 술을 바친다. 염라대왕 말하기를, “내가 받은 술 한잔 하시게나.” 강림이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는 술에 만족하여 잔칫상에 쓰러져 잠자다 깨어보니 염라대왕 온데간데없구나. 강림이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없던 나무기둥이 보이는지라 강림이 이를 눈치채고 묻기를, “이 집은 누가 지었느냐? ” “강태공 서목수가 지었습니다.” “불러오시오.” 강림 앞에 불려온 강태공 서목수에게 강림이 기둥을 몇 개 세웠느냐고 물으니, “여든여덟 개를 세웠습니다. 이 기둥, 이 기둥은 내가 세웠습니다마는 저 기둥은 내가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톱 소톱 가져와 그 기둥을 자르시오.” 실금실작 설컹설컹 톱질을 하니 혼비백산한 염라대왕이 부엉이로 변신하여 큰 대 위를 날아오른다. 이에 질세라 매로 변신한 강림이 날아올라 날개로 덮치니 염라대왕이 이번에는 쉬파리가 되어 집구석으로 피했겠다. 거미로 변신한 강림이 거미줄을 쳐서 파리 다리를 옭아매니 염라대왕이 꼼짝없이 붙들린다. 우리 고전소설 ‘전우치전’에 나오는 강림은 모든 거지들을 모아 저잣거리를 다니며 양식을 빌어먹고 세상을 주유한다. 그 강림이 ‘손을 들어 한번 구름을 가리키니 구름 문이 절로 열리는’ 신기한 도술, 전우치를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도술을 부렸다고 한다. 전우치가 “소생이 눈은 있으나 망울이 없어 선생을 몰라뵈었다”고 사죄하고 누군지 알려달라고 물으니, “나는 강림도령이되, 세상을 희롱코저 두루 다니노라” 하였다. 세상을 희롱코저 다닌다는 강림의 술법이고 보니, 염라대왕조차도 한 수 아래로 접어둘밖에! (계속) |
출처; 주간 동아
사자후 싸이트의 염라대왕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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