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불교 이야기

염라대왕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3.05.25|조회수539 목록 댓글 0

 염라대왕

 
티벳의 염라대왕 그림

염라대왕(閻魔大王)은 힌두교불교에서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가상의 군주이다. 힌두교 경전인 베다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산스크리트어야마(यम, Yama)이다. 티벳어로는 신제(གཤིན་རྗེ།, Shinje)라고 쓰며, 중국어로는 염라왕(閻羅王, Yanluowang) · 염마왕(閻魔王) 또는 (閻, Yan)이라 쓰며,[1][2] 일본어로는 염마대왕(閻魔大王, Enma Dai-Ō)이라고 쓴다.

염라대왕은 힌두교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염라대왕은 죽음을 맞이한 후 천상세계로 가는 길을 가장 먼저 발견한 존재로, 생전의 공덕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산스크리트어 야마(Yama)는 "쌍둥이" 라는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몇몇 신화에서는 쌍둥이 여동생 야미(Yamī)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

용수의 《대지도론》 제2권 따르면 염라대왕은 다섯 종류의 조어사(調御師: 보호하며 이끌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돕는 이로운 이) 가운데 하나이다. 다섯 종류의 첫째는 부모 · 형제 · 친척이며, 둘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법률[官法]이며, 셋째는 스승의 가르침[師法]이며, 넷째는 염라대왕[閻羅王]이며, 다섯째는 부처[佛] 즉 깨달은 자이다. 이들 가운데 처음의 셋은 현세의 조어사이며, 염라대왕은 명부[後世]의 조어사이고, 깨달은 자는 현세의 즐거움과 명부의 즐거움과 현세와 명부 모두를 뛰어넘은 열반즐거움으로 이롭게 하기 때문에 깨달은 자가장 뛰어난 조어사[師上]라 한다.[1][2]

또한 불교에서 염라대왕은 명부의 시왕(十王) 중 다섯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冥府)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살명부시왕이다. 진광대왕에서 전륜대왕까지 10명의 대왕이 있으며, 보통 살아생전 죄를 거의 짓지 않고 살다 죽은 사람은 제7 태산대왕을 끝으로 심판은 마무리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의 심판도 받아야 한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몇몇 경전에 묘사되어 있다. 《시왕생칠경》에서는, 염라대왕 앞에서 죄인이 머리채를 잡힌 채 머리를 들어 업경을 보고 비로소 전생의 일을 분명히 깨닫게 되며, 이 업경에는 죄인들의 생전에 지은 일체의 선행악행이 비춰진다고 한다. 《시왕찬탄초》에서는, 염라대왕전에서는 전보다 죄인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염라대왕은 호통을 치면서 “네가 여기에 온 것이 옛부터 몇 천만인지 그 수를 모르겠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하여 다시 이 악처에 와서는 안된다고 매번 알아듣도록 얘기했건만 그 보람도 없이 또 오게 되었느냐. 너라는 죄인의심이 많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만 하는구나.”라고 도깨비와 함께 죄인의 조서를 읽고 죄인의 양손을 되찾아서 아홉면을 가진 업경 앞에 이 죄인을 두니,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동안 지었던 죄업이 남김없이 비친다. 옥졸이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얼굴을 잡아당겨 거울에 들이대며 보라고 나무랄 뿐만 아니라, 방망이로 두들겨패면 처음에는 소리를 내서 울부짖지만 나중에는 숨도 다 끊어지고 몸이 티끌처럼 부서진다고 한다.

염라대왕이 거느린 부하들은 주사빙판관, 대산홍판관, 악복조판관, 도사조판관, 의동최판관, 천조귀왕, 감수귀왕, 낭아귀왕, 대나리차귀왕, 주선동자, 주악동자, 일직사자 등이다.

참고 문헌 [편집]

  • Daum 문화원형사전
  •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K.549, T.1509). 《대지도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549(14-493), T.1509(25-57)
  • (중국어)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T.1509). 《대지도론(大智度論)》, 대정신수대장경. T25, No. 1509, CBETA}

주석 [편집]

  1.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T.1509), 제2권. p. T25n1509_p0072b09 - T25n1509_p0072c04.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 
    "復名「富樓沙曇藐婆羅提」:「富樓沙」秦言「丈夫」,「曇藐」言「可化」,「婆羅提」言「調御師」——是名「可化丈夫調御師」。 佛以大慈大悲大智故,有時軟美語,有時苦切語,有時雜語,以此調御令不失道。如偈說:
      「佛法為車弟子馬,  實法寶主佛調御,
       若馬出道失正轍,  如是當治令調伏。
       若小不調輕法治,  好善成立為上道,
       若不可治便棄捨,  以是調御為無上。」
    復次,調御師有五種:初父母兄姊親里;中官法;下師法,今世三種法治;後世閻羅王治;佛以今世樂、後世樂及涅槃樂利益,故名師。上四種法治人不久畢壞,不能常實成就;佛成人以三種道,常隨道不失。如火自相不捨乃至滅,佛令人得善法亦如是,至死不捨。以是故,佛名可化丈夫調御師。 問曰: 女人,佛亦化令得道,何以獨言丈夫? 答曰: 男尊女卑故,女從男故,男為事業主故。 復次,女人有五礙:不得作轉輪王、釋天王、魔天王、梵天王、佛,以是故不說。 復次,若言佛為女人調御師,為不尊重。若說丈夫,一切都攝。譬如王來,不應獨來,必有侍從。如是說丈夫,二根、無根及女盡攝,以是故說丈夫。 用是因緣故,佛名可化丈夫調御師。"
  2.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K.549, T.1509), 제2권. pp. 87-89 / 2698.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 
    "또한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159)라 한다. 진나라 말로 부루사160)는 ‘장부(丈夫)’이고, 담먁161)은 ‘교화할 수 있다[可化]’이며, 바라제162)는 ‘길들이는 이[調御師]’이니, 이는 ‘장부를 교화하고 길들이는 분’이 된다.
    부처님은 큰 자비와 큰 지혜로써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때로는 간절한 말로, 때로는 잡된 말로 길들여서 도를 잃지 않게 하시는 까닭이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불법은 수레요 제자는 말이며
      참된 법보의 주인이신 부처님은 길들이는 분이시니,
      말이 길을 벗어나서 바른 제도 잃으면
      이럴 때에 다스려서 조복시켜 주신다.

      협소해서 길들일 수 없으면 가벼운 법으로 다스리고
      즐겨 선행 이루어 세우면 최상의 도에 들게 하며
      다스리기 어려운 자는 그대로 버려두니
      그러기에 조어사이고 위없는 분이라 하노라.

    또한 조어사에 다섯 종류163)가 있다. 처음은 부모 · 형제 · 자매 · 친척[親里]이요, 중간은 관청의 법이요, 나중은 스승의 법이다. 이 세상에서는 이 세 가지 법으로 다스리고, 뒷세상에서는 염라왕(閻羅王)164)의 법으로 다스린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즐거움과 뒷세상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으로 이롭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스승[師上]이라 한다.
    부처님의 법을 제외한 네 가지 법으로 사람을 다스리면 오래지 않아서 무너져서 항상 참되게 성취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은 사람을 세 가지 도리로써 이루어서 항상 도를 따라 잃지 않게 한다. 이는 마치 불이 자상(自相)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는 사라지기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부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법을 얻게 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버리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을 ‘장부를 교화하고 길들이는 분’이라 한다.
    [문] 부처님은 여자도 교화하여 도를 얻게 하셨거늘 어찌하여 장부만을 이야기하는가?
    [답]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는 남자를 좇기 때문이며, 남자는 사업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니, 전륜왕 · 제석천왕 · 마천왕(魔天王) · 범천왕 ·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또한 만일 부처님이 여자 조어사165)라 고 말한다면 존중하지 못하지만 장부라 말한다면 온갖 것을 모두 포섭하게 된다. 비유하건대 왕이 오면 혼자 오지 않고 반드시 시종이 따르는 것과 같으니, 장부라 하면 양성인 자[二根]나 성을 구별할 수 없는 자[無根] 및 여자가 모두 포섭된다. 그러므로 장부라 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을 ‘장부를 교화해 길들이는 분’이라 한다.
    159) 범어로는 Puruṣadamyaksārathi. 의역해서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도 한다.
    160) 범어로는 puruśa.
    161) 범어로는 damya.
    162) 범어로는 sārathi.
    163) 다섯 종류란 부모, 형제, 친척의 법 · 관청의 법 · 세속적인 스승의 법 · 염라왕의 법 · 부처님의 법이다.
    164) 범어로는 Yama. 염마왕(閻魔王)이라고도 한다.
    165) 범어로는 strīsārathi."


출처; 위키백과

 


한국계 염라대왕 *..역........사..*

역사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는 설화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아무튼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들이므로 역사 카테고리에 넣어 봅니다.

염라대왕은 일반적으로 저승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와 비견되는 명부의 왕이지요. 불교 쪽 전승으로는 저승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다섯번째 왕이라 하고 인도의 전승에서는 최초로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하지요. 이런 걸 히브리 전승과 합하면 염라대왕의 정체는 아담? (퍽!) 월광토끼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일 먼저 죽은 건 아벨...^^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박준규?




아무튼 염라대왕의 정체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도 궁금해 한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승을 다스리는 대왕의 정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에요!

첫번째, 고려 사람 유자량庾資諒(1150~1229).

유자량은 지금의 전남 나주 출신으로 무신정변 때 살아남은 문신으로(무신들과도 친하게 지낸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음) 그 후에도 높은 벼슬을 역임하다가 1213년 은퇴하여 조용히 불법을 닦으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당대의 문필가 이규보가 묘지명을 지었는데, 그 묘지명에 이런 대목이 전합니다.

앞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죽어서 한 곳에 가니 궁전 누각이 매우 장엄한데, 지키는 자의 말이「여기는 유복야(庾僕射)가 올 곳이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 말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생각하면 공의 행적이 이미 부끄러울 것이 없고, 세상을 떠남이 이러하였으니 그 말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이 좋은 곳에서 살아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렇게 유자량은 죽어서 저승의 궁을 차지했으니,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딱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말은없습니다만...

두번째, 박우朴遇.

박우는 선조 때 문신인 박점朴漸의 증조부라고 합니다. 특별한 이력은 전하지 않습니다. 황해도 연안延安에 살던 사람 하나가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알고보니 동명이인을 잘못 잡아온 것이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염라대왕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 자식들이 서울 어느어느 곳에 사는데 살아나면 찾아가서 내게 도포 하나를 새로 지어 보내라고 하라."
"제가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한들 미친 사람 취급받지 않겠습니까? 증험할만 한 것을 알려주십시오."
"시전 3권을 보면 내 옥관자 조각이 있으니 그걸 알려주면 믿을 것이다."
"새 도포는 어떻게 대왕께 전할 수 있습니까?"
"도포를 지어서 내게 제사를 지낸 뒤에 불사르면 되느니라."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박우의 아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도포를 바친 사흘 후 모든 집안 사람의 꿈에 박우가 나타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답니다.

세번째, 김인후金麟厚(1510~1560).

김인후는 지금의 전남 장성 출신으로 이황과 동문수학하고 조정에 나왔으나 인종이 일찍 죽고 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에서 물러나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살았다는 유학자입니다. 천문지리와 역학에도 밝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김인후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김인후와 친하게 지내던 오세억吳世億이라는 인물이 죽었다가 반나절만에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세억은 저승에서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일흔일곱이 된 뒤에 보자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을 해준 이가 바로 으리으리한 자미지궁에 거처하는 김인후였습니다.

역시 엄밀히 말해서 자미지궁은 옥황상제가 있는 곳이고 김인후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을 뿐이므로 김인후가 염라대왕인지는 좀 불명확합니다. 다만 수명을 관장하는 명부를 가지고 있고 저승사자를 부리고 있으므로 염라대왕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박우는 그리 오래 염라대왕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거겠네요.

네번째, 김치金緻(1577~1625).

염라대왕으로 제일 유명한 인물입니다. 안동 출신으로 갖가지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죠. 진주대첩의 주인공인 김시민에게 입양되었으며 선조 말기에 등과해서 광해군 때는 대북파로 이이첨의 심복이었으나 광해군의 학정이 거듭되자 벼슬에서 물러났고 인조반정 전에 반정파와 통하여 처벌을 면했습니다. 천문과 역술에도 밝았다고 합니다.

김치가 흥덕현감을 하고 있을 때, 한 노파가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들 둘이 갑자기 죽어 너무나 원통하다,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데려가는 염라대왕을 불로 호통을 쳐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어이없는 주장이었지만 7일 밤낮을 울어제끼니 김치로서도 더는 말릴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김치는 비법을 써서 호출장을 만들고는 사령 고장금(이 고장금이 제주 전설에서는 그 유명한 저승사자 강림입니다)을 불러다가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합니다.

고장금은 죽었다 생각하지만 현명한 아내의 도움(제주 차사 본풀이에서는 가신(집안신)들의 도움을 받죠)으로 염라대왕 호출에 성공합니다. 염라대왕은 동헌으로 와서 본래 그 노파가 무고한 손님을 잡아서 재물을 빼았고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 원혼들이 그 집안의 아이로 환생했던 것이죠.

김치는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하고, 그 아들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 아버지 염라대왕의 도움을 받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이 김득신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화가 김득신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출처; 초록불의 잡학다식

 http://orumi.egloos.com/4759896


 

[노래하는 신화 | 저승 이야기 ④]

염라대왕은 내 포승줄을 받으시오
사흘 머물며 임무 완수한 강림 이승 귀환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형벌로 과양상이 응징

무시무시한 열 시왕(十王) 중의 한 명인 제2 소간왕으로 추측된다. 머리가 다섯에 뱀 꼬리가 있으며,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있다. 조선시대 무신도첩 당사주책(唐四柱冊)의 한 부분.

이승과 저승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삶의 문제가 죽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삶의 문제는 이인칭이나 삼인칭의 문제가 아니라 일인칭인 ‘나’의 문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우리에게 ‘저승 이야기’를 통해서 어릴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가르친다.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사는 법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늘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삶은 축복이 아닐까, 환희가 아닐까?

우리 신화의 강림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강림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늘 이판사판으로 사는 자의 ‘호탕함’과 ‘연연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 강림이 어떻게 염라대왕을 잡아오는지 구경해보자.

그 힘 그 배짱 쓸 만하구나

강림이 저승문 앞에 적배지를 붙여놓고, 연주문 기둥에 망건을 벗어 머리에 베고 누운 채 배짱 좋게 염라대왕 나오기를 기다린다.

저승문 앞에서 꼬박 이틀을 기다리자 천둥 번개 치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저승문이 열리더니 앞에는 영기, 뒤에는 기류를 세우고 삼만관숙 육방하인이 길을 비키라고 외치면서 연주문을 나온다. 첫 번째 가마가 넘어가더니 두 번째 세 번째 가마가 넘어가고, 네 번째 가마가 넘어가더니 열두 사자를 앞세운 다섯 번째 가마가 멈칫 서면서 무섭게 호령한다.

“연주문에 붙인 적배지가 어떤 적배지냐?”

이원사자가 큰 소리로 말하자,

“이승 강림이가 저승 염라대왕을 잡으러 온 적배지입니다.”

그때 강림이 염라대왕이 타고 있는 가마 앞으로 내달려가 붕어 눈을 부릅뜨고 배에 잔뜩 힘을 실어 소리친다.

“염라대왕은 포승을 받으시오.”

“감히 어떤 놈이 길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난데없는 방해꾼에 염라대왕이 노하여 천둥 번개를 부르니, 세상이 캄캄해지고 천지가 요동을 한다. 강림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쿵더쿵 겁이 덜컥 솟는다. 하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죽을 힘을 다해 열두 사자를 메다꽂은 뒤 세 신선이 준 홍사줄로 염라대왕이 탄 가마를 휘휘 묶는다.

“저승에 관장(官長)이 있으면 이승에도 관장이 있는 법. 아무리 저승 관장이라 해도 이승 관장 명령도 들어야 합니다.”

염라대왕, 그 배짱이 쓸 만한지라. 그도 그럴 것이 산 자가 저승의 열두 사자를 메다꽂으니 그 힘이 쓸 만하고,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염라대왕 앞에서 큰소리를 쳐대니 그 배짱 한번 쓸 만하다.

“넌 누구냐?”

“이승에서 온 강림이오.”

“용맹이 있어서 좋다마는 지금은 심복장자네 집 아기씨가 큰 병 들어 시왕맞이굿을 하며 나를 청하는 중이니 가서 술이나 한잔하고 가자.”

“그것도 좋습니다.”

굿판에 들어서니 시왕맞이하던 신녀가 염라대왕을 청해 음식과 술을 바친다. 염라대왕 말하기를,

“내가 받은 술 한잔 하시게나.”

강림이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는 술에 만족하여 잔칫상에 쓰러져 잠자다 깨어보니 염라대왕 온데간데없구나. 강림이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없던 나무기둥이 보이는지라 강림이 이를 눈치채고 묻기를,

“이 집은 누가 지었느냐? ”

“강태공 서목수가 지었습니다.”

“불러오시오.”

강림 앞에 불려온 강태공 서목수에게 강림이 기둥을 몇 개 세웠느냐고 물으니,

“여든여덟 개를 세웠습니다. 이 기둥, 이 기둥은 내가 세웠습니다마는 저 기둥은 내가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톱 소톱 가져와 그 기둥을 자르시오.”

실금실작 설컹설컹 톱질을 하니 혼비백산한 염라대왕이 부엉이로 변신하여 큰 대 위를 날아오른다. 이에 질세라 매로 변신한 강림이 날아올라 날개로 덮치니 염라대왕이 이번에는 쉬파리가 되어 집구석으로 피했겠다. 거미로 변신한 강림이 거미줄을 쳐서 파리 다리를 옭아매니 염라대왕이 꼼짝없이 붙들린다.

우리 고전소설 ‘전우치전’에 나오는 강림은 모든 거지들을 모아 저잣거리를 다니며 양식을 빌어먹고 세상을 주유한다. 그 강림이 ‘손을 들어 한번 구름을 가리키니 구름 문이 절로 열리는’ 신기한 도술, 전우치를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도술을 부렸다고 한다. 전우치가 “소생이 눈은 있으나 망울이 없어 선생을 몰라뵈었다”고 사죄하고 누군지 알려달라고 물으니, “나는 강림도령이되, 세상을 희롱코저 두루 다니노라” 하였다. 세상을 희롱코저 다닌다는 강림의 술법이고 보니, 염라대왕조차도 한 수 아래로 접어둘밖에!   (계속)



출처; 주간 동아

 


사자후 싸이트의 염라대왕 검색

http://dic.sajahoo.com/Dic_s.php?q=%BF%B0%B6%F3%B4%EB%BF%D5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