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보다 과학, 과학보다 실험
최기현
나는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키워드안에있는 실험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론을 설명 하지못하지만 실험만 하는 과학자 라는 꿈이 있기도했다. 근데 이번 통쌤 실험과학 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을 때 이름부터 그냥 과학이 아니라 실험과학이여서 끌렸다. 만약 통쌤과학 이였으면 안갔을꺼다. 이름에 걸맞게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책을 받고 책에나와있는 실험들을 하고 다른 이론들을 배웠다. 이제 그수업중 제일 기억에남는 두사람을 쓸거다
1. 조지프 블랙 기체의 재발견
2. 존 돌턴 위대한 가설, 원자론
1. 조지프 블랙
우리는 기체 중 여러 가지가 썪여 있다는걸 알고 있지만 18세기중반까지는 공기는 하나의 원소일 뿐 이였다. 그 이유는 4원소설을 믿고있는 아리스토텔레스 때문이였다. 그때 아리스토텔레스를 꺽고 기체를 발견한 첫사람이 바로 조지프 블랙 이다. 블랙은 의학, 해부학을 전공 하였는데 거기있던 윌리엄컬럼교수의 조교로 들어갔다. 1752년 무렵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블랙이 실험했던건 탄산염 이였는데 탄산이온이 칼슘이나 마그네슘을 결합한 상태다.
주재료가 탄산염인 석회석이 생석회로 바뀌는과정을 관찰한뒤 블랙의 루틴인 무게를 재봤는데 바뀌기 전인 석회석의 무게보다 바뀐후인 생석회의 무게가 더 가벼운 것을 확인하곤 무언가 빠져나갔지만 보이지 않으니 이건 기체다 라는 추측을 하였고 변화과정에서 다른물질이 전혀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설을 뒷받침 해주었다. 그는 석회석에 산을 떨어트려 나온 기체를 포집한뒤에 관찰했다. 관찰한결과 1. 잘 타던 촛불을 꺼트린다 2. 동물의 날숨에도 같은 종류의 기체가 있었다. 3. 대기 중에도 이 기체가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그 기체의 이름을 석회석에 붙잡혀 있었으니까 고정된 기체(Fixed air) 라고 이름을 지었다. 오늘날엔 이산화탄소(CO2)
라고도 불린다. 이 이산화탄소라는 기체가 발견되면서 공기에대한 개념바뀐데다가
정량적 실험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과학계에서 깨닫게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이산화탄소 생산실험
준비물:주사기, 기체 발생 실험 장치, 관, 대야, 유리병, 탄산수소 나트륨, 아세트산
실험 방법
1. 대야에 물을 채운다.
2. 기체 발생 실험 장치 안에 탄산수소 나트륨을 넣고 뚜껑을 닫는다.
3. 뚜껑에 있는 두 구멍 중 하나에 주사기를 꽂고 안에 아세트산을 넣는다.
4. 다른 한쪽 구멍에 관을 꽂는다.
5. 유리병에 물을 완전 채운 뒤 대야에 거꾸로 놔두고 관 끝을 유리병 안에 넣는다.
6. 주사기를 살살 누른다.
7. 성냥불을 유리병 안에 넣어서 이산화탄소 인지 확인한다.
실험 결과:탄산수소 나트륨에서 거품이 나면서 유리병 안에 기체가 쌓인후 성냥불도 바로
꺼진다.
2. 존 돌턴
사람은 종교나 오랜 관습을 제외하곤 대체로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면 믿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과학의 영역에선 철저히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연구 대상만을 다룬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첨단 과학일수록 우리가 맨눈으로 보지 못하는 미시세계의 현상을 연구 목표로 삼는다. 또한 그 모든 연구의 바탕엔 일상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atom)다 원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상상 한 건 기원전 400년경인데 20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원자론이 다시 등장했던 19세기에도 원자는 여전히 관찰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상식에 위배 된다는 이유로 고대 철학자들이 원자론을 폐기했던 것처럼 근대의 과학자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에 대해 오랫동안 실랑이를 버렸다. 상상하는 이들과 오로지 실증만을 앞세운 이들이 맞서면서 20세기 초까지 논쟁을 벌이다 그 뜨거운 감자를 들고나온 사람은 자수성가형 과학자 존 돌턴 이였다. 돌턴은 형제가
많고 가난한 집에서 자랐지만 수학과 자연과학에 관심이 높았다. 열다섯 살 때부터 치밀한
기상 관측을 할 정도로 천생 과학자였다. 기상학에 대한 열의는 자연스럽게 기체에 관한 탐구로 이어졌다. 돌턴이 명성을 얻어갈 땐 이미 몇몇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화학 반응에 관한
유명한 법칙들을 내놓은 상황이었다. 라부아지에가 화학 반응의 물질의 반응 전과 후의 질량
총합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고 1779년 조제프 프루스트는 일정 성분비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돌턴도 하나를 발표하였는데 이른바 배수 비례의 법칙이다. 이 법칙들 모두
엄밀한 실험을 통해 얻어낸 사실 이지만 화학 반응에서 원소들이 왜 그런 법칙을 따르는지 어떠한 과학자도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돌턴은 물질의 근본적인 형태와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확신하고 원자량을 매겼다. 기준은 수소의 질량이었다.
그는 물질의 기본 원자량을 매겨갔다. 그리고 돌턴은 원자를 규정하였다.
1. 원자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물질의 최소단위 입자다.
2. 같은 원소의 원자는 질량이나 성질이 같다.
3.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일정한 정수비를 이룬다.
4. 원자는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다른 원자로 변하지도 않는다.
1808년 그 모든 내용을 담은 <<화학 철학의 신세계>> 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그 원자론은 오류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아메데오 아보가드로가 풀어 주었다.
나는 이번 통쌤 실험 과학 수업을 들으며 실험은 재밌고 이론은 재미없다 라는 내 상식을 부순 것 같다. 옆에 있는 책과 함께 듣고 새로운 PPT, 새로운 수업진행 방식 덕분에 원소기호라는 나한텐 골짓 덩어리였던 그것을 내가 완전히 이해한 것 같다.
이번 수업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