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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철 시집 <다리가 긴 빗방울> 청색종이

작성자김서현|작성시간26.06.07|조회수11 목록 댓글 0

안주철 시인의 새 시집 『다리가 긴 빗방울』은 빗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혼잣말이 오래 이어지는 듯한 시집이다. “안녕하세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나요?”라고 묻는 목소리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끝내 정확히 들리지는 않고, 시는 그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리듬 위에 오래 머문다. 이 시집에서 비는 추락하지 않고, 사물과 존재 곁에 오래 머물기 위해 속도를 늦춘다.

시집에는 폐허와 하강의 감각, 그리고 삶을 견디는 육체의 피로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무너짐을 비극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생활처럼 받아들인다. “피로를 겹겹이 쌓아 올리면서/ 간신히 빈곤을 벗어날 수 있었지”라는 문장처럼, 거창한 절망보다 생활의 남루함과 흐릿한 감정들이 천천히 스며든다.

힘 빠진 농담과 생활의 사소한 장면들은 시집 전체를 과도한 비장함으로부터 구해낸다. 사랑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사랑하게 합니다”라는 문장처럼 멀리 있고 흐릿하며, 어둠은 공포가 아니라 은신처에 가깝다. 과장된 감정을 밀어 올리지 않고 생활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래 망설이는 시. 『다리가 긴 빗방울』은 작은 빗소리와 희미한 감정들을 끝내 시의 자리까지 밀고 가는 성취를 보여준다.

 

목차

 

시인의 말

저 구름은 몇 번째 계단인가요
여행이 되는 곳으로
먼 곳이 열릴 거 같아요
함부르크
다리가 긴 빗방울
모르고 지나칠 수 있어요
여름의 꽃
몰래 대답하고 혼자 웃어요
우중 산책
봄밤 아래서
피로
바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녁의 숲
물의 꽃잎
봄밤입니다

 


새 떼는 날지 않는다
불행만큼 행복이 쉬운 날도 있습니다
등이 열린 사람
비는 걷고 있어요
작은 하늘이 날고 있어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밤
소원 주위를 빙빙 도는 삶
다시 내 안에 들어와서
냉동 연어
아름다운 슬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밤 속에서
열 손가락 다시 열 손가락
얇고 단단한 저녁
질문을 해도 괜찮습니다
고양이의 숲


여름비의 열 손가락
바닥이 짚어지지 않았다
불행
통통이와 나
봄이 올 것 같은 밤이에요
야간 산책
고양이 구름
거품 구름이 흘러가고

고양이의 우주
창문 밖에 트럭이 서 있어요
새벽을 열어 주세요
신의 벽돌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는 사랑
사랑이면 좋겠어요


빗방울 속에서
함부르크
여름밤입니다
반복
천변 산책
폐허의 무늬
건너지 못하는 인사
입술
피로의 활용
쓸쓸하다
바로 보지 못하는 것들
봄날
어슬렁거리는 기억
사막을 심는 가족
불안
내 안에 사랑은 없지만

해설
폐허를 견디기 위한 하강의 미학 | 최진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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