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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여주영릉(驪州寧陵)

작성자남대현|작성시간24.04.24|조회수168 목록 댓글 0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천릉하면서,

인근의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

영릉(英陵)에 병풍석(屛風石)이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역시 설치하지 않았다.

 

여주영릉 돌거리는 인종(仁宗, 1515~1545 재위 1544~1545)

효릉(孝陵) 돌거리를 모방해 제작하였는데,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 장릉(長陵)이 이 효릉을 참고했으며,

장릉을 옛 영릉이 참고했기 때문이다.

효릉 돌거리 모방을 위해 화원(畵員)을 파견해 정밀하게

조사해 돌거리 제작에 이용하였다.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의 능을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의 능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형태와 특징

효종릉과 인선왕후릉은 각각 봉분에 난간을 두르고

양석(羊石), 호석(虎石), 망주석(望柱石),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석마(石馬)를 배치하였으며, 위쪽에 조영된 효종릉에만 곡담을 둘렀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刻),

수복방(守僕房), 수라간(水剌間) 등이 있다.

여주영릉 입구에는 보물로 지정된 여주

효종 영릉재실(驪州 孝宗 寧陵齋室)이 있으며,

이 재실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驪州 孝宗大王陵 淮陽木)이 300여 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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