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요시토시의 묘역에서
임진년 침략 깃발 피바다로 물든 산천
적막한 만송원에 옛 흔적이 우울하다
돌계단 그늘진 곳에 덧없는 산새 울음.
토요토미 히데요시 고니시 유키나가
거침없는 해풍 따라 조선 강토 유린했지
대마도 이즈하라에서 그 역사를 되새겨.
유키나가 사위로서 조선과 소통하고
히데요시 지원 아래 대마도 번주 됐지
우람한 삼나무 바람이 오백 년을 이어줘.
소씨가(宗氏家)의 양자 되어 덕혜와 정략 혼인
흘러간 역사마저 족쇄로 채운 야만
빛바랜 석등의 이끼 어둠만이 불탄다.
부부연이 정략이니 사랑마저 아픔이지
소씨 가문 뒤를 이어 옹주와 맺은 그림자.
문학을 촛불 삼은 소 다케유키도 쓰렸다네
돌아다 돌아보니 역사는 음습하나
반쇼인 돌담 따라 아픈 사랑 남아 있어
길섶에 한 잎 낙엽이 눈앞에서 서럽다.
* 소 다케유키 :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영문과 수료, 시인, 소 요시토시 가문의 양자가 되어 뜻하지 않게 덕혜옹주와 결혼.
덕혜옹주가 우울증과 정신병으로 시달릴 때도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 함, 이혼 후 재혼. 종전 후 대학 교수.
쓰시마에서 77세로 사망.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25년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옹주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기에 그들은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았다고 한다. 소 다케유키가 평생 침묵했기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 다케유키는 말년에 수필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25년은 내 인생의 공백기이다."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
대마도 宗氏 도주들의 거주지 금석성 뒤편 만송원(입구), 임진왜란 기의 대마도 도주 宗義智(소 요시토시) 및 후손 묘지.
1568년~1615년. 사찰 겸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