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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칼럼

자연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15.01.12|조회수399 목록 댓글 0

 

 

 

 

 

자연의학은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이용하여 건강을 되찾는 치유 방법입니다. 자연의학은 약이나 수술을 위주로 하는 서양의학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서양의학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올바른 의학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정통의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연의학은 대부분 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의학이라고 불립니다.

침과 약초를 주로 이용하는 한의학은 미국에서는 대체의학에 속하나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통의학에 속합니다. 자연의학의 기본 정신은 자신의 병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자연치유력을 이용하여 스스로 고친다는 데 있으며, 기본 원리는, 우리가 병이라고 부르는 질병들이 사실은 치유과정이라는 증상은 곧 치료라는 명제에 있습니다. 한의학은 자연의학의 역사를 이어왔지만 근대에 들어 치료자가 따로 있으며, 증상이 곧 치료라는 원리의 보급에 소홀하여 참된 의미에서 자연의학을 구현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니시 가츠죠)

오히려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민간의학이 자신의 병은 자기가 고친다는 자연의학의 정신에 좀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민간의학은 단편적인 처방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을 종합한 치유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의학이라고 부르기 힘듭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우리 나라 최초의 자연의학은 1945년 무렵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 있던 정현모 선생이 해방 전해에 귀국하여 일본의 니시 가츠죠(西勝造)가 정립한 서의학(西醫學)을 국내에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현모 선생은 자연의학회를 만들고 김구 선생을 만나 자연의학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정현모)

정현모 선생의 노력은 1971년 대한서회(大韓西會)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한서회는 서의학보라는 회보까지 발행하면서 자연의학의 전파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대한서회는 후에 한국자연건강회로 바뀌었는데 이 단체는 단식, 생즙, 풍욕, 모관운동, 붕어운동 등 당시로선 독특한 방법을 치료법으로 이용하면서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Herbert Shelton)

 

그럼 니시 가츠죠는 어떻게 해서 자신의 의학을 정립하였을까요? 니시 가츠죠는 동경의 지하철을 설계한 유명한 토목공학자입니다. 그는 1917년에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이 무렵은 미국에서 자연의학의 황금시대라고 할 정도로 자연의학이 활짝 꽃피던 시기였습니다. “육체 문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 맥파던(Bernarr Macfadden), 독혈증을 주창한 존 틸덴(John Tilden), 109세까지 장수한 생즙의 아버지 노만 워커(Norman Walker), 단식의 전문가인 허버트 쉘턴(Herbert Shelton) 등 기라성 같은 자연의학자들이 수많은 저술과 강연으로 자연의학을 설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들 미국의 자연의학자들은, 수치료로 유명한 세바스찬 크나이프(Sebastian Kneipp), 빈센츠 프리스니츠(Vincenz Priesnitz), 그리고 동종요법의 아버지 사무엘 하네만(Samuel Hahnemann) 등 유럽의 자연의학자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식 건강법 중의 하나인 배복운동)

 

자연의학의 주요한 원리와 요법들은 니시 가츠죠가 유학을 하던 192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에서 거의 정립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니시 가츠죠는 16세까지 만성 설사와 감기로 고생하였는데 20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 거의 생을 포기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니시 가츠죠는 의사의 치료법과 정반대로 해보기로 합니다. 예를 들면 설사가 있을 때 의사는 끓인 물과 엽차만을 마시게 했는데 그는 집안의 우물물을 시험 삼아 마신 것입니다. 그러자 설사가 멎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그는 현대 의학에 회의를 품고 틈틈이 자연건강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토목공학자였던 니시 가츠죠는 34세 되던 1917년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하면서 의학에 관한 자신의 여러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니시 가츠죠는 미국에서 알게 된 자연의학의 원리와 살천법들로부터 크게 고무되어 이들 이론을 자기 나름대로 정립하여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니시식건강법(西式健康法)만들었습니다.



( 미국 Citizens for Health 로고 )



자연의학에서는 건강의 필수조건으로 영양 공급을 꼽고 있습니다. 건강보조식품은 건강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실제 치료에도 이용되고 있으나 법적으로는 약품이 아니라 식품이라는 이유로 효능에 대한 광고가 엄격한 제재를 받아왔습니다. 국민들로 보아서는 건강에 대한 올바른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셈인데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강을 위한 시민의 모임”(Citizens for Health)이 결성되어 노력한 결과 1994년에 건강보조식품의 효능 표기를 확대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대체의학계의 승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정문)

이에 고무되어 김정문알로에의 김정문 회장은 우리 나라에도 자연의학의 보급을 목적으로 자연건강학회의 김태수 회장과 필자(고재섭)를 미국에 보냈고 이 미국 방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1995 10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서영훈(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강원용(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 강문규(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장), 오재길(정농회 회장) 등 각계 저명인사들을 모시고 건강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발대식을 통해 미국의 Alternative Medicine이 소개되었는데 이 용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대안의학보다는 대체의학이라는 용어가 국민에게 더 큰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되어 대체의학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막스 거슨의 암식사요법, 이 책으로 거슨요법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구미의 자연의학은 건강을 위한 시민의 모임결성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김태수 회장이나 정사영 박사 등이 미국 자연의학자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건강을 위한 시민의 모임의 주요한 과업으로 김태수 회장이 식이 요법으로 많은 말기암 환자를 치료한 막스 거슨암식사요법이란 책을 펴내면서, 발전된 구미의 자연의학이 소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우리 나라의 자연의학은 걸음마 단계에 있습니다. 몇몇 의과대학에서 대체의학연구소 등이 생겨나는 등 주변에 밀려나 있던 자연의학이 중심부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고 서양의학을 하는 분들 중에 자연의학의 원리를 도입하여 치료하는 분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으나 아직 국민들의 의식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고, 또 그러한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연구나 관련 문헌의 소개가 매우 미미한 실정입니다.

농업이 화학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변해가듯이 의학도 서양의학 일변도에서 자연의학으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부름입니다. 그러나 자연의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기까지 나아가야 할 길은 너무나 험하고 멉니다. 자연의학이 제도적으로 억눌려 있다 보니, 전문가의 육성조차 제대로 기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그리고 날로 커가는 의료비용의 절감을 위해 자연의학은 반드시 제도적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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