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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칼럼

아, 프랑크 수사님(2)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15.03.10|조회수106 목록 댓글 0


프랑크가 속한 화곡동의 떼제공동체는
여느 집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다..
가구라곤 보이지 않고

식기라곤 거리의 선술집에서 볼만한 볼품없는 식기들이 전부였다.

막 이사온 집처럼 썰렁하였고
조명도 그리 밝지 않았다.
가난을 지향하는 많은 다른 수도원들이

건물에서나마 웅장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려하는 데 비해

떼제공동체는 단층 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의

그냥 그렇고 그런 주택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건함과 함께

절제된 미가 느껴졌다.

떼제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매주 갈 때마다 대략 십여 명쯤 되었다.  
막노동하는 노동자로부터, 직장인, 대학생, 신학생, 목사,

때로는 교황청 대사, 김수환 추기경의 형이신 김동환신부도 함께 하였다.

모임에서는 종종 라면을 먹었다.

스텐 그릇에 담긴 라면은 불어 있었고 반찬은 김치가 전부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카세트에서 잔잔히 울려퍼지는 밝은 바로크 현악

그리고 수저와 식기에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식을 씹고 삼키는 생리적인 소리뿐이었다.

침묵 속의 식사는
나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라면마저 귀중한 음식으로 느껴게 하였다..
그리고 묘한 일치감이 우리 가운데 흘렀다.

저마다 사는 삶은 달랐지만

이 자리서 먹는 음식만큼은 똑 같아서일까?...

 

식사를 하고 나면 떼제 수사들과 함께 설거지를 하고
다시 모여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있는 바를 나누었다.

 

떼제 수사들은 가난해 보였지만 궁핍하게는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나 바쁠 터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으로도 늘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항상 미소로 맞이하면서 함께 있는 동안 시간에 쫓기거나 하지 않았다.

(모임에서 우리는 때로 떼제공동체의 창설자인

로제 수사의 편지를 읽었는데 이 때 읽은 귀절 중 하나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가난하게 사십시오.
가난은 창조성을 키워줍니다
.”)

프랑크는 책이 서너 권쯤 들어가는
손가방보다는 조금 큰, 멜빵이 달린 검은 가방을 늘 메고 다녔다.
자기 재산은 이게 전부라며.

프랑크는 선물을 받기를 좋아했다.

선물을 받으면 , 고맙습니다하고 무척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그 선물은 그에게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프랑크는 이내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그 선물을 다시 내주었다.

이렇게 그는 선물을 받으면서 기뻐하고

그 선물을 또다시 누구에겐가 주면서 기뻐하는

두 배의 기쁨을 누렸다.

 

어느 봄날,

나는 프랑크에게 꽃이 핀 조그만 화분을 선물하였다.
프랑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받고는

화분을 마당 한 쪽에 두고 기뻐하였다.

화분은 마당에서 잘 키워지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화분이 보이지 않았다.
여쭸더니 누군가 필요한 분이 있어서 선물로 줬다고 한다.

선물이 그에게 머무르지 않으므로

그에게는 값진 물건을 선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무소유로 인해

나는 그가 진정으로 선물보다 선물하는 마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크와 함께 서울 시내로 나갈 때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앞서 내려가던 나는

프랑크의 뒤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아 뒤를 돌아보았다.

프랑크는, 계단에 엎드려 구걸하는 분 앞에 걸음을 멈춰서서
허리를 숙여 그분께 우리말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구걸하던 분은 무척 당황스러웠으리라.
기대하던 동전 소리가 아니라

갑작스런 밝은 인사 소리가 들렸으므로.

구걸하던 분은 엎드린 채 얼굴을 들고 프랑크를 바라보았다.

프랑크의 환한 미소를 보자 그분도 함께 싱긋이 미소로 답해주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프랑크의 내면에 어떤 힘이 있어서
저렇게 환한 모습으로 인사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거리낌 없는 자유로움을 배우고 싶었다.

 

프랑크는 어떤 가르침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얘기할 때

그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뿐이었다.

난 궁금하고 답답했다.

왜 프랑크는 이렇게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 뜻을 주위에 적극적으로 펼치려 하고 있지 않는 걸까?’
한 번은 너무나 답답하여 나의 이러한 생각을 조르듯이 말해보았으나

그는 다만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프랑크가 드디어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로 간다고 하였다.

그를 배웅하러 김포공항에 나서는 마음이 착잡했다. .

그와의 우정의 증표를 선물로 남기려고 전날 온종일 시내를 헤맸지만

무소유인 그에게 마땅한 선물이 없었다.
프랑크는 내게 포옹을 해주었다.

우리는 결코 헤어지는 것이 아니야.

언제 어디에 있건, 기도하는 그 순간

우리는 같이 있게 될 거야.”
그리고는 선물을 준비 못해 미안해 하는 나에게

웃으면서 자신은 내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는 선물은 간디의 자서전을 읽어보라는 거야.

참 좋은 책이니 너도 좋아할 거야.”

그리고 프랑크는 손을 흔들며 출입문으로 사라졌다.
기약은 하지 않았지만 난 다시 만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안젤라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한국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부임한 후
안젤라 선생님께 보낸 편지를 선생님께서 내게 보여주었다.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적었다.
이곳은 이슬람 국가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제가 하는 일은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뿐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프랑크,

그와의 생활은 아주 짧았지만
그와의 추억은 깊고 강했다.
그가 있는 자리는 어디서건 평화로웠다.

그는 온 세상의 무게만큼이나 내가 소중하다고
몸으로 말해 주었다.

부유함은 분열을 낳지만

가난은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진정한 환대는 가난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보고 싶은 프랑크,

오늘 기도에서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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