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권위주의적 유산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되면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아베는 심지어 트럼프를 능가했다.
제이크 아델스타인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전총리가 목요일, 자신이 무척 사랑했던 야쿠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혈혈단신의 저격수로부터 총에 맞아 숨졌다. 저격수는 도망조차 가려하지 않았다.
일본 국민들은 국영 NHK 보도를 통해 아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여전히 살아남기를 희망했다. 그가 저격 당한 나라현 현장에는 행인들이 꽃을 놓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내생에 다시 올 수 있도록 그의 영혼의 무사한 여행을 위해 기도드렸다.
이 유혈 사태가 발생하기 15년 전, 아베 신조가 첫 총리 임기 중 사임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의 정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쳤고 싫증을 내었으며 자신의 내각을 둘러싼 스캔들의 쓰나미를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2012년 그는 실패한 총리라는 묘지에서 부활하여 거의 8년 동안을 통치했다.
그가 두 번 총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또 육체적으로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고문인 스티븐 배넌이 "트럼프 이전의 트럼프"라고 극찬한 아베는 일본을 영원히 바꿔놓을지 모르는 유산을 남겼다. 그는 일본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영구적인 일당 민주주의(one-party democracy)로 축소한 것이다.
아베는 확실히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한 각본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고 권력을 공고히 한 포퓰리스트였다.
권력에서 떠나 있던 동안 아베와 그의 각료들은 반한 단체와 그 외 외국인 혐오 단체와 동맹을 맺었다. 아베는 자신의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반한 감정을 부추겼고, 자신은 손을 대지 않으면서 동맹 단체들이 바람잡이를 하도록 했다.트럼프는 이민자들을 일본을 위협하는 부기맨(bogeyman, 귀신이나 도깨비 등 두려운 존재)으로 묘사했지만; 아베 총리는 전후에 체류한 재일동포와 일본의 식민지였던 남북한 주민 모두에 대한 뿌리 깊은 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반한파 집단인 재특회(在特會, 재일교포에게 일본인에 준하는 복지와 특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일본 극우 정치조직)와 밀접하게 연관된 여성인 야마타니 에리코를 경찰청을 관장하는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또한 신토(神道)를 믿는 보수적인 정치 단체인 "일본회의"(日本会議, 일본 최대의 극우성향 단체)를 끌어당겼다. 아베가 이들 단체와 맺은 동맹은 트럼프가 티파티나 그 외 공화당의 다른 극우 요소를 흡수한 것과 적절히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집권하지 않을 때조차도 아베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민당은 일본의 새로운 제국 헌법에 대한 계획을 개발했다. 미국 점령의 도움으로 전후에 작성된 헌법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치적 망명 기간 동안 아베는 자민당 의원들과 기타 보수적인 슈퍼스타들로 구성된 극단주의 싱크탱크인 "일본소생"(日本蘇生)의 회장이 되기도 했다. 2012년 5월, 이 조직은 "개정헌법 선언"이라는 모임에서 그와 그의 측근들이 자민당의 대체헌법에 대해 토론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놀라운 순간들도 있었다.
아베 총리가 임기 초에 임명했던 나가세 진엔 전 법무대신은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 이 세 가지는 맥아더가 일본에 부과한 전후 체제와 관련이 있다. 헌법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면 이러한 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집회에서 말했다.
이에 아베는 큰 박수를 보냈다. 기본적인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임금 투쟁을 없애라. 또한 천황의 권력을 되살려라.
다시 말해, 일본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라. 이로부터 몇 년 후, 스티브 배넌이 아베가 트럼프보다 먼저 트럼프였다고 말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베는 수년 동안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목요일에 총을 맞았을 때 다가오는 참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자민당은 1955년 총리를 지냈던 전범, 아베의 할아버지가 창당했다. 창당 자금은 야쿠자와 CIA 요원 코다마 요시오의 돈으로 조달했다.
그러나 그가 은혜를 입으면서부터 자민당의 인기는 가라앉았다.
2009년에는 일본이 정말로 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것 같았다. 영원히 부패할 것 같은 보수적인 자민당이 축출되고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적, 페미니즘적 성향의 일본 민주당이 1955년 이후 두 번째로 집권한 것이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 집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부분적으로 자민당보다 깨끗하고 덜 범죄적일 것이라는 기대 하에 집권했다. 그러나 당의 최고 간부들이 야쿠자와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었다는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들의 삐걱거리는 깨끗한 이미지는 흠집이 났다.
2012년의 하원 선거는 정치적 붕괴였다. 민주당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야당이 몰살했다. 그리고 녹슨 철권으로 일본을 지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정치가가 정치 묘지에서 돌아왔다.
아베 신조는 집권 후 자신을 비판했던 사람들에게 재빨리 복수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문인 아사히 신문을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었다. 나중에 그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내가 아사히를 다룬 것처럼 당신도 뉴욕타임스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좌익 언론을 탄압히고 우익 언론에 술과 음식을 먹임으로써 일본의 언론 자유를 세계 11위에서 세계 72위까지 끌어내렸다. 2014년에 그는 내각인사국을 만들어 관료의 임명을 냉혹하게 관리했다. 정책 노선에 따르지 않거나 정부와 모순되는 정보를 발표하는 공무원은 기피, 배제 또는 해고되었다. 이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일부 고위 관리들은 그렇게 하라는 직접적인 지시가 없었음에도 아베가 관련된 스캔들을 은폐하기까지 했다.
아베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던 텔레비전 앵커와 전문가들은 방송에서 사라졌다. 세계 최대 신문인 요미우리 신문은 아베의 가장 큰 비판가인 전 문부성차관을 “성매매 온상지인 가부키초의 만남바에 자주 드나들었다”며 비방했다. 아베는 미디어를 명예 훼손 도구로 삼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고 요미우리 신문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특종을 열망하며 기꺼이 순응했다.
결국 2020년, 정치 스캔들과 선거법 위반 조사로 인해 아베는 '건강 악화'를 명목으로 사임하게 되었다. 몇 달 후 그는 자신의 정치 비서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그는 거의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몇 달 동안 눈에 띄지 않았지만 주목받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아베 신조는 결국 일본 헌법을 한 마디도 바꾸지 못했지만 일본의 평화주의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 9조를 포함하여 지금도 헌법을 갉아먹고 있는 여러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야당과 비판적인 언론의 신용을 철저히 실추시켜 왔기 때문에 일본은 양당 민주주의라고 부르기조차 어렵다. 언론이 설설 기고 있는 일당 민주주의 나라로서 수십 년 동안 그 모양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 Jake Adelstein은 1993년부터 일본에서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조직범죄 전문가 중 한 명인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작가이자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또한 성매매에서 인신매매와 여성 및 아동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설립된 NPO Polaris Project Japan의 고문이기도 하다. Tokyo Vice: An American Reporter on the Police Beat in Japan (Vintage), The Last Yakuza: A Life in The Japan Underworld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