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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한글날 특집 인터뷰] 미국 법원에서 성과 이름을 순우리말로 바꾼 사나이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22.10.08|조회수763 목록 댓글 0

 

한글날 576돌을 맞아 성과 이름을 모두 순우리말로 법적으로 바꾼 분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일자 : 9월 22일 오후 10시
장소 : 서울 대림동 커피숍



 

고재섭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GMO, 백신, 우울증과 현대의학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내용으로 인터뷰하기 위해 모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한글날인데 이 한글날과 관련하여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오로지 돌쇠네"라는 성함이 너무나 특이한 순 한글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순 우리말로 바꾸신 분은 제가 더러 만나 보았습니다만 이렇게 성까지 바꾸신 분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에 관해서 얘기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 이렇게 이름을 바꾸시게 된 건가요

 

오로지 최현배 선생님이 쓰신 "나라 사랑의 길"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최현배 선생님은 호가 "외솔"입니다. 혼자서라도 뜻을 펼치겠다는 마음을 담으신 것이지요. 그분은 위대한 한글이 있는데 한문에 묻혀 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이지만 저는 그분의 글을 읽고  그분의 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최현배 선생님은 왜정시대에 오랫동안 감옥 생활도 하셨지만 저는 그분과 달리 편하게 살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독립운동가처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이름을 바꾸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감히 이 이름을 바꾼다는 건, 조상이 물려준 이름을 바꾼다는 거는, 사실 참 건방진 거 아녜요? 이름을 바꾸려는 마음과 그래서는 안된다는 이 두 마음이 항상 부딪혔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군대에 입대해서 직업군인이 되었습니다. 군에 있으면서 시민권이 있어야 훨씬 자유스럽고 규제를 덜 받으면서 군 생활에서도 성공하리라 생각하여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이 때 제 이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성은 장, 이름은 상섭에서 성은 그대로 두고 이름만 오로지로 바꾸었지요. 그때가 1979년이었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님과 저서 "나라 사랑의 길"

 

 

고재섭 그렇다면 성은 어떻게 바꾸시게 되었습니까?

오로지 사실상 군대에서 제 이름을 오로지라고 바꿀 때 성도 순수한 한글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용기가 생기지 않더군요. 조상께서 물려주신 성을 바꾼다면 아버지가 굉장히 화를 내실 거란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글쎄요 제 깡이 점점 세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아내와 애를 낳기 전에도 우리가 가질 새로운 성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했었어요. 우리는 두 개의 성 사이에서 고민하였습니다.

하나는 "모난돌"이었습니다. 모난돌이 정맞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다 안 되려고 하는게 모난돌인데 저는 모난돌이 되고 싶은 거예요.

다른 하나는 "돌쇠네"였습니다. 한국 사회가 너무 계급을 중시하잖아요. 무슨 학위를 받았다든가, 교수라든가, 사장이라든가 하면 더 높이 쳐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랫사람이라고 업신여깁니다. 저는 늘 이게 불만이었어요. 우리 모두는 모두가 다 평등합니다. 그런데 이 높은 사람들한테 '우리가 평등하니까 평등하게 우리를 대해주시오' 하고 요구한다고 해서 먹혀 들진 않겠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그것보다 제가 먼저 제 자신을 제일 낮은 사람으로 내세운다면은 저보다 더 낮은 사람은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저보다 다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특히 그 특권층에 대해서 용기 있게 자신감 있게 대적할 수 있는 격려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모난돌"이 중요한가 아니면 "돌쇠네"가 중요한가를 따져보았습니다. 그 결과 "모난돌"보다 "돌쇠네"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동의를 해주어서 돌쇠네로 정하기로 하였지요.

저는 장교가 되려던 꿈을 접고 사회에 나와 흑인을 상대로 머리 가발과 염색약 등을 파는 미용재료 소매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이 어느 정도 잘 되어서 재정이 좀 괜찮아진 1993년도에 마침내 변호사를 고용해서 우리 가족의 성을 돌쇠네로 다 바꿀 수 있었습니다.

개명을 허락한 미국 법원 문서

 


고재섭 이름과 성을 바꾸기란 사실 법률적으로도 쉽지 않을 텐데요.

 

오로지 이게 1993년도에 판사가 승낙한 판결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름 변경 서류예요. 여기에 보면은 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제일 위에는 여기 "오로지 배킴 장"(Orogee Baekim Jaang) 이게 제가 갖고 있던 이름이에요. "오로지 장" 사이에 "배킴"이 들어간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 배씨와 새어머니의 성인 김씨를 함께 넣었기 때문입니다.

제 처의 이름은 원래는 박양숙이었습니다. 제 처의 이름도 이때 "지무 돌쇠네"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첫째딸은 "소나 돌쇠네"입니다. 아기를 갖고 산부인과 진찰을 받고 오던 길에 갑작스레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태어날 아기가 딸이면 "소나"로 짓고 아들이면 "소나기"로 짓자고 하였는데 딸이 태어났어요.

둘째는 아들인데 "메사내 돌쇠네"입니다. 태몽을 꾸고 지은 이름입니다. 산 사나이라는 뜻이지요.
셋째는 딸로서 "해바다 돌쇠네"입니다. 역시 태몽을 꾸고 해와 바다를 합쳐 해바다라는 이름을 지었지요.

이렇게 해서 돌쇠네 성을 가진 가족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이 결혼하였는데, 미국에선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 성을 따라야 해서 돌쇠네 성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모두 6명인 셈입니다.

 

미국 해군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 "메사내 돌쇠네"는 "산에서 온 아이"라는 뜻으로 태몽으로 이름지었다.



고재섭 아이들도 돌쇠네라는 성을 좋아하는지요?

 

오로지 아이들이 어릴 때 집에 와서 다른 사람들이 돌쇠네라는 성이 우습다고 놀린다고 하면 저는 '아니다. 이 성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성이란다' 하고 얘기를 해줬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돌쇠네라는 성과 자신의 이름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고재섭 아버님은 어떠셨는지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오로지 네 굉장히 화를 내셨죠. 오랫동안 화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셨어요. 조상이 주신 성까지 바꾸었으니 얼마나 건방진 일이라고 생각하셨겠습니까?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용서하지 않으셨어요. 너무나 분노하셔서 저는 아버님이 유산을 전혀 물려주지 않으실 걸로 예상했어요. 그런데도 아버님께서는 제게 유산을 남겨놓으셨더군요.


고재섭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독특한 이름 때문에 오해가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오로지 네 물론 많죠. 많이 겪었습니다. 제 이름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대하는 방식은 항상 뚜렷하게 구분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싫어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무슨 범죄라도 저질러 신분 세탁을 하려고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도 그래서 실은 이름을 바꿀 때 엄격하게 심사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더라도 저 혼자만이라도 우리 가족만이라도 위대한 한국말 위대한 한글을 우리 이름에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한 영감을 주신 최현배 선생님께 굉장히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최현배 선생님의 "나라 사랑의 길"을 꼭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의 한 음식점이 외솔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글씨. 들고 계신 분은 평생을 우리말글 운동에 바치신 이대로 선생님이시다. 



고재섭 사실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그럴까요. 가장 기본이 무엇보다 이름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과 이름을 바꾸신 선생님의 말씀에 저도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처럼 이렇게 성과 이름을 바꿀 의향이 있는 분들께 격려가 되는 말씀을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로지 성과 이름을 바꾼다는 결단은 간단한 게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 부모님이 내 이름을 지어주셨고 조상께서 성까지 다 만들어주셨는데 그것을 벗어난다는 자체가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보면 항상 외세에 짓눌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중국 사대주의,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은 영어에 압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외세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언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위대한 한글과 한국말을 발전시킬 기회가 언제 있겠습니까. 역사는 계속 변합니다. 우리가 이 변화를 우리가 주도하는 쪽으로 이끌고 가는 게 좋지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가는 쪽이 되어서는 않겠지요. 저는 오랫동안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고재섭 선생님 말씀 듣고 정말 순 우리말 이름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맞이해서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우리말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로지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오로지 돌쇠네 님은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다니다 197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UNIVERSITY OF SOUTH FLORIDA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정신연구를 독자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약 20년간의 탐구 결과로 4권의 책(영어로 출판)을 펴냈으며 피어리뷰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독립적인 연구가로서 한국사회에서 등한시되는 다양하고 중요한 이슈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한국의 GMO재앙을 보고 통곡하다", "백신 주의보", "두 얼굴의 미국과 한국전쟁", "정신의학의 불편한 진실" 등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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