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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우크라이나 전쟁,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22.11.01|조회수227 목록 댓글 1

우크라이나 전쟁,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다음 글은 일본 도쿄외국어대학 이세자키 켄지(伊勢崎賢治) 교수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 글이다. 원제는 "우크라이나 위기로 배우는 일본 안보와 국제 평화"로서 長周新聞 2022년 9월 27일자에 소개된 전문이다. 분쟁 예방과 평화구축학 전공인 켄지 교수는 유엔과 일본 정부를 대표하여 아프가니스탄 정전 협상에도 나섰을 정도로 세계 각지의 분쟁처리, 무장해제 등에 실무가로서의 경험이 풍부하다. 

켄지 교수는 이 강의를 통하여, 나토의 확장,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원인과 나토측의 패전으로 인한 붕괴 위기, 미국의 양자 택일 강요에 의한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하려 하지만 세력은 오히려 그쪽이 더 커서 실제 배제되는 것은 미국과 나토측이라는 점, 미국의 그늘 아래 있으며 원전 대국인 일본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은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력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우리 나라에도 참고가 되는 좋은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  - 역자 고재섭 주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시되고 7개월이 지났다.  유엔 직원으로 또는 일본 정부 특별 대표로 세계 곳곳의 분쟁지에서 무장 해제와 정전 조정역을 맡아왔던 이세사키 겐지(伊勢崎賢治) 도쿄외국어대학 교수(분쟁 예방·평화 구축학)이 16일, 「우크라이나 위기로부터 배우는 일본 안보와 국제 평화」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주최는 사회복지법인 아사카회이다. 이날 강연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전쟁에서는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전쟁 체험은 가족의 역사로 다음 세대에 계승된다. 아마도 개인들이 갖고 있는 전쟁에 대한 생각은 거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나는 유엔이나 정부 대표로서 현대의 여러 전쟁을 보아왔지만, 나도 가족 역사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체험하였다. 장소는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이다. 이세자키家는 사이판 옥쇄로, 내 어머니와 할머니, 삼촌 등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멸했다. 원래 이세자키가는 오가사와라(도쿄에서 1000킬로 떨어진 남방의 군도)가 본적지이지만, 나라(일본)의 남방 정책에 따라 일가족 전원이 사이판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말기에 미국이 들어왔다.

 미군들이 도망가고 있는 주민과 일본병을 향해 스피커로 '투항하라'고 외치는 가운데 이러한 호소를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이 주민들은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나의 가족도 그랬다. 이른바 '반자이 클리프'(만세 절벽)라고 불리는 장소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할머니로부터 듣기로는 당시 “미군들에게 잡히면 여성은 강간당하고 죽게 된다” “남자는 고문 당하고 살해된다”고 했다. 이처럼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천황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는 동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에 모두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반자이 클리프"(사이판에 있는 만세 절벽. 태평양전쟁 중 약1만여 명의 일본군과 민간인이 미군의 투항 권고에 응하지 않고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를 부르짖으며 80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져 자결한 곳)


 많은 일본군이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고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몇 명도 포로가 되었지만 수용소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오키나와가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는 현실도 있으므로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과도한 악마화」로 희생이 되는 것은 항상 일반 시민들이다.

 동조하라는 압력과 ‘떠나지 않는 죽음’――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하는 전쟁이든 독재주의 국가가 벌이는 전쟁이든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일방적인 정보를 믿게 되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전쟁에 시민을 동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악마화(Demonization)다. 그 당시에는 미국과 영국이 악마 같았지만, 현재의 타겟은 푸틴이다.

 옛날에는 파르티잔(빨치산)이나 레지스탕스 같은 시민의 저항 운동이 영웅시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제네바협약이 태어나 국제법의 발전과 함께 이러한 생각은 바뀌고 있다. 예를 들면 중일전쟁 당시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처럼 국가의 군대가 명령에 따라 서로 죽이는 전쟁에서, "여기에 시민이란 없다"는 이유로 시민들은 싸움을 강요당했고 무차별 죽임을 당했다. 종전 후 민간인을 전투원과 분리하여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군인들이 아니라 민간인이 많이 사망한 것에 대해 반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징병제나 시민총동원은 결코 멋진 것이 아니다. 적에게 무차별 공격할 구실을 주는 것이다. 본래 보호받아야 할 시민을 방패로 하는 것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자위대원으로부터 입헌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전쟁 선전의 10계명"이라는 것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의원이었던 아서 폰손비 경이 '전쟁의 거짓말'이라는 저서에서 전시에 정부가 흘리는 거짓말을 다음과 같이 공식으로 만든 것이다. 이 공식은 이후의 모든 전쟁에 적용된다.

 


① 우리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
② 그러나 적은 일방적으로 전쟁을 바란다.
③ 적의 지도자는 악마 같은 존재다.
④ 우리는 영토나 패권을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숭고한 대의를 위해 싸운다.
⑤ 우리도 의도치 않게 희생자를 내지만 적은 고의적으로 잔학 행위를 한다.
⑥ 적은 불법적인 무기와 전략을 사용한다.
⑦ 우리의 손실은 적으나 적의 손실은 엄청나다.
⑧ 지식인과 예술가는 우리의 대의를 지지한다.
⑨ 우리의 대의는 신성하다. 
⑩ 우리의 선전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배신자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상황을 봐도 현재까지 이 공식은 훌륭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 등장한 악마는 과거와 다르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악마화의 결과로, 전쟁은 계속되고 재앙을 겪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나는 반성하지 않는다, 악마가 나쁘기 때문에...'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반복되는 대리 전쟁,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구도

 나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아니다. 그 나라 말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내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볼 때는 미국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딜레마에서 본다. 나는 별로 반미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미국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을 해왔고, 미군에도 많은 지인이 있다. 그러니까 관점인 것이다.

 NATO는 냉전시대에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동맹이다. 그러므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991년 소련 연방의 해체로 나토는 적이 없어져 존재의의를 잃게 된다. 그로부터 30년, 내가 본 NATO는 "자기 발견의 30년"이었다. 내가 NATO와 관여 해온 것은 이 30년 중에서 후반부 20년이다. 그것도 외부 평론가로서가 아니라 NATO와 함께 현장에서 일해 왔다.
 
 NATO를 이해하려면 NATO 헌장 제5조를 이해해야 한다. "유럽 또는 북미에서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체약국에 대한 무력 공격은 모든 체약당사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즉, 어떤 국가가 한 국가를 표적으로 삼을 경우, 그 국가는 동맹국 전체의 적으로 간주해, 모두 동맹국이 함께 싸워 패퇴시킨다는 군사 동맹이다. NATO가 창립 이래 하나가 되어 싸운 적이 있는데 그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실은 한 번밖에 없다. 그것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나토헌장 제5조를 발동해 모두 싸운 유일한 전쟁이다.

 냉전시의 동서 진영의 경계는, 지난 30년 동안 크게 동쪽으로 이동했다(지도 참조). 이른바 NATO의 동방 확대다. 러시아의 안주머니까지 들어간 셈이다. ‘NATO가 비확장 약속을 깨고 있다’는 게 푸틴의 주장이지만, 일본의 대부분의 식자는 “그건 거짓말이다. 그런 약속은 없다”고 한다. 사실은 어떨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을 때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고 민주화와 자유화의 길을 택했다. 서방에 편리한 이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회의가 활발히 열렸고 거기서 토론된 내용이 공식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다. 미국은 일본처럼 공문서를 곧바로 폐기하지 않는다. 정부의 공문서는 심지어 비밀문서라도 국민의 재산이라는 생각이 있다. 비밀 문서이므로 즉시 공개되지는 않겠지만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공개된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국가안보기록보관소에는 서방 정상들이 고르바초프를 소련 내 정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NATO가 러시아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전보 기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서방 정상들은 더 이상 군사동맹은 필요 없기 때문에, '어머니 유럽'이라는 구상을 바탕으로 나토를,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전역의 신뢰구축을 위한 정치 포럼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양국 정상이 조인한 구속력이 있는 약속인가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구두라도 약속은 확실히 존재했다. 그러니까 푸틴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상황은 급속히 변했다. NATO는 동쪽으로 확대되어 러시아 측도 독자적으로 새로운 군사동맹을 만들고는 탄도미사일과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여 지금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소련군(1979년)

 이와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분쟁(1979~1989년)이 발생했다.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1979년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군벌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모스크바(소련)에 도움을 요청했다. 모스크바는 유엔헌장에 표명된 집단적 자위권을 확대 해석하여 군대를 파병했다. 이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파가 도움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군사 개입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소련(러시아)만 이렇게 해온 것이 아니다. 베트남과 중남미에서 증오할 정도로 이렇게 해온 것은 미국이다. 모두 집단적 자위권의 남용이다.

 소련이 침공하자 아프가니스탄의 군벌들은 스스로를 무자헤딘이라고 칭하면서 소련에 맞서 저항했다. 그것도 지금의 우크라이나군과 같은 전차도 미사일도 없이 경무장으로. 냉전 시대에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무슬림 국가들 그리고 영국, 미국 등의 지원을 받았다. 특히 스팅어 미사일(휴대식 미사일)이 군벌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한 후 전황은 역전된다. 이런 전쟁을 '대리전쟁'이라고 한다. 거기에 미군은 없지만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보낸다. 그들은 미국의 적과 싸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구조가 아닐까? 이제 우크라이나의 전황을 좌우하는 것은 미국의 무기다. 이것을 대리전쟁이라고 하면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실례가 아닌가”라고들 한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대리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똑같은 구도인데 어느 한쪽만을 대리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이때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들은 경무장으로 싸워서 소련군을 물리쳤다. 1989년 소련군은 철수한다. 그러나 약 10년에 걸친 전쟁으로 수만명이 사망했고 아프가니스탄은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리고 소련은 전후 배상금을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다시 되풀이한다고? 그래서 나는 관심 있는 러시아 연구 전문가들과 조기 정전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푸틴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 하루를 미루면 미루는 만큼 사람이 죽어나갈 뿐이다.

시간이 걸리는 전쟁 범죄 기소. 하루 빨리 전쟁을 멈춰야

 당시 미국 무기로 소련과 싸운 아프가니스탄 군벌들은 서방 세계에서 영웅으로 대우받았다. 하지만 소련군 철수 후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아프가니스탄 통치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내전을 시작한다. 원래 다민족 국가로서 공통의 적이 있을 때는 하나로 뭉쳤지만, 그 적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내전 상태에 빠진다. 국가는 더욱 황폐해졌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물라 오마르, 탈레반의 창시자다. 탈레반 운동은 내전으로 파괴된 나라를 어떻게든 일으켜세워, 부패가 없는 이슬람교에 근거한 순수한 국가를 만드는 ‘사회개혁 운동’으로 시작됐다. 탈레반은 서방에서 악마처럼 말하지만 이슬람 측에서는 '로빈 후드'였다. 어쨌든 그는 민중의 지지를 얻어 탈레반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21년 전 9·11 동시 다발 테러가 일어났다. 주모자는 이슬람 무장 세력 알카에다다.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대원들은, 수배자가 되어 세계를 떠돌다가, 당시의 탈레반 정권에 의해 손님으로 머물러 있었다.

 9·11테러 다음날 CNN과 부시 대통령은 이를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애국주의에 돌입해 간다. 그 열광 속에서 미국은 보복 공격에 나섰다. 일단 공격을 받으면 유엔 헌장은 개별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개별적 자위권조차 무서운 것이다. 온나라가 애국주의로 춤추고 있을 때 자신의 판단만으로 저지르는 것이다.

 미국은 지상에서 싸우는 대신 하늘에서 폭탄을 비내리듯 퍼부어 수만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죽였다.  이 때의 희생자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전쟁범죄다. 전쟁은 그 후 20년간 이어졌다. 전쟁의 직접 피해만으로 민간인 5만명이 사망했다. 이에 병행하여 시작된 이라크 전쟁에서는 20만명이다. 미국은 가장 치명적인 국가다. 그렇다고 푸틴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푸틴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나는 온몸을 바쳐 반정부 운동에 뛰어들 것이다. 그만큼 나는 그가 싫다. 하지만 과도한 악마화는 협상 기회를 막아버린다. 과거의 전쟁처럼 전쟁이 장기화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협상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폭격으로 황폐해진 아프가니스탄(2016년)


 원래 전쟁범죄를 소추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국내 중대사건들도 시간이 걸리듯 전쟁범죄의 경우 완료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그것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심판한다. 그것이 내가 몇번이나 보아온 국제사법의 능력이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지속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문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미국이 무엇을 했는지를 잊고 있고, 어쨌든 푸틴이 한 일도 잊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증거와 증언의 수집이다. 이를 위해서도 정전이 필요한 것이다(장기적인 전투는 새로운 전쟁 범죄가 쌓이면서 증거도 풍화해 버린다).

 그리고 국내 사건에서의 소추와 마찬가지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관철한다. 이것은 제네바 조약상의 결정이며 법의 원칙이다. 누구나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는 무죄다. 그 법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나는 감정적으로는 ‘푸틴이 전쟁범죄자다’라고 이해하지만 국제사법의 정합성(整合性)을 훼손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제사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범죄를 끈질기게 소추하려면 이 국제사법의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대부분의 언론이 일방적인 정보를 받아들여서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양자 택일의 압박으로 양분된 세계, 일본 또한 전쟁 당사국

 부시대통령은 국정 연설을 통하여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전세계에 알렸다. "너희들은 어느 편이야?"라고. “미국은 정의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에 협력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하라. 그렇지 않은 나라는 적으로 취급하겠다”며 세계를 분단했다. 그리고 9·11 테러 3개월 후에는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미국은 하늘에서 폭탄만 퍼붓는 비겁한 싸움을 했지만, 지상전을 하지 않으면 제압할 수 없다. 미군을 대신해 지상전을 벌인 것은 아프가니스탄 군벌들이었다. 이번에는 탈레반이라는 공동의 적으로 뭉쳤지만, 원래 탈레반이 발생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후 그들은 다시 내분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큰 실험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정부 대표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분을 시작한 그들이 정전하도록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수중에 있던 스커드 미사일로부터 구 소련제 무기에 이르는 방대한 무기를 포기하고, 미국이 새롭게 창설한 아프가니스탄 국군으로 이관케 하라는 것이었다. 무장해제의 조건으로 전쟁범죄자인 이들이 정치가가 되도록 허용한 셈이었다. 그 책임을 일본의 내가 지게 된 것이었다.

 총과 같은 소형 무기는 회수해도 나중에 얼마든지 들어온다. 중요한 것은 대포, 수송 탱크, 장갑차, 스커드 미사일 등 중화기인데 이들을 설득하여 100% 회수했다. 그렇게 군벌들에게 정치가로서의 길을 걷도록 만들어서 무기가 아니라 연설로 국회에서 싸우는 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리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일시적으로 잘 될 것 같았지만 실패로 끝난다. 오바마 정권은 선거 공약이었던 미군 철수를 취소하고 더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미국은 점점 늪에 빠져 트럼프 정권 때에는 미국 건국사상 최장의 전쟁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전쟁을 싸운 적이 없었던 미국에게는 가장 큰 딜레마였다.

 철수하고 싶지만 지고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종속국인 일본도, NATO 회원국이 아니었음에도 인도양에서 보급 지원 활동 형태로 참가했다. 틀림없는 전쟁 당사국인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완전 철수를 결정한 종주국 미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패주'하게 된다.

NATO 결렬의 위기와 아프가니스탄 패주극의 이면

 그러는 동안, 2014년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당시 한때 함께 일했던 NATO의 장군(독일인)으로부터 “정당성을 잃은 NATO에 다시 결속할 기회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메일이 왔다. 미국과 연합하여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독일도 국내의 전쟁 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전쟁이 실패였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 후 NATO는 존재이유를 시험이라도 하듯, 처음으로 단결하여 용감하게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지만 패배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NATO는 붕괴 직전이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은 NATO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그 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돈바스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는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지금의 전쟁은 이 연장선 위에 있다. 올해 2월 24일 마치 화성인이 습격한 것처럼 갑자기 시작된 전쟁으로 여기게끔 조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틀림없이 내전의 연장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8월 15일 단 하루 만에 수도 카불이 함락됐다. 가니 대통령은 국외로 탈출하고, 탈레반은 대통령 관저를 점령하여 승리를 선언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2021년 8월 16일)

 

국외로 탈출하기 위해 카불 공항에 밀려든 사람들(8월 16일)


 이에 앞서 지난 4월 바이든 전부통령은 9·11테러 기념일인 '9월 11일'에 미군을 무조건 철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철수하려면 모든 참가국 전체의 면밀한 조정과 계획이 필요한데 아무 상담도 없이 마음대로 선언해 버린 것이다. NATO 국가들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소란이 났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뒤를 받쳐주던 미군이 철수하겠다고 정해진 순간 도미노가 쓰러지듯 탈레반 세력은 급증했다. 탈레반의 핵심 병사는 5, 6만명 정도로, 이에 맞서는 아프가니스탄 국군은 30만명, 경찰의 군사 부문은 25만명이다. 보통 이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탈레반이 이긴 것은 농촌의 무장조직들이 차례차례로 현 정권에서 탈레반으로 '귀의' 했기 때문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비명을 질렀다. 관계국과 조정도 하지 않고 무책임한 철수를 결정한 바이든의 미국과 NATO 간의 신뢰가 결렬 상태였다.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혼란을 가져온 불필요한 패주였지만, 이때 미국이나 NATO 국가는, 자국민 뿐만이 아니라, 통역이나 대사관의 현지 스탭, 저널리스트, 교사도, 가족과 함께 구출했다. 하부까지 통제할 수 없는 탈레반 병사들의 보복으로부터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국 대사는 끝까지 남아 '생명 비자'를 계속 내어주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대사관만이 먼저 도망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라가 일본이다. 심지어 '생명 비자'조차 발행하지 않았다. 내가 대사관에 있을 때에는 형제처럼 대해주었던  유능한 현지 스태프들은 위험한 현지에 남겨졌다. 나는 평소 위세를 자랑하던 자민당 의원에게 「그래도 남자인가!」라고 싸워서 자위대기 3대를 보내게 했지만, 초동이 늦었기 때문에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모처럼 구출한 아프가니스탄인도 일본에서의 지옥 같은 대우에 실망하여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돌아간 경우도 있다. 그들이 남긴 친절한 말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탈레반에게 죽는 것은 1번으로 끝나지만, 일본에 있으면 매일 죽을 것"이라고. 현재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왜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똑같이 해주지 못하는가? 이런 인종차별은 없어야 한다.

새로운 냉전을 목표로 러시아와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중국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한 후, 바이든은 또 "당신은 누구 편인가?"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타겟은 중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어 러시아가 표적이 되었지만, 처음에 바이든은 중국을 가상적으로 하여 다시 한 번 세계를 편갈랐다. 원래 중국과 러시아는 사이가 좋지 않은데, 이러한 미국의 말과 행동이 이들 국가가 서로 접근토록 촉진하였다.

 요 전날 상하이 협력기구(중국, 러시아가 주도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8개국으로 구성된 다자협력조직) 회의가 성대하게 열렸다. 그들의 결속력은 증가하고 있다. 대 러시아 제재는 효과가 있지만 전쟁을 멈추는 효력은 없다. 반대로 각각 굳게 닫힌 두 개의 배타적 경제권을 만드는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반대편의 경제권이 더 크다. 교전 중인 인도와 파키스탄조차 반대쪽에 있다. 반대로 서구권쪽이 배타된 모습이다.

상하이 협력기구 참가국 정상들(16일, 우즈베키스탄)


 한편 경제제재로 곤란한 건 서방의 일반 시민들이다. 겨울을 넘길 수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최빈곤국에 중요한 곡물 공급국이지만, 이것이 중단되면서 세계적인 기아가 걱정되고 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원전 입지지대가 전장이 된 최초의 사례임을 일본은 배워야 한다. "스스로를 겨냥한 핵탄두"라고 불리는 원전을, 해안선에 이렇게 늘어놓고 있는 나라를 재래식 전력으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외교의 실패였으며 여기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원전 대국·일본의 무기는 외교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북극권을 두고 벌이는 “뜨거운” 경쟁, 완충 국가의 입장은?

 신냉전은, "뜨거운 신냉전"(New Cold 'Hot' War)이라고도 불린다. 지구본이 있다면 북극에서 세상을 보기 바란다. (지도 참조) 가장 추운 이 지역이 지금은 가장 "뜨거운" 곳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얼음이 녹으면서, 지금까지는 여름철은 쇄빙기를 사용하여 통과하지만 겨울철은 완전히 폐쇄되어 있던 북극해가, 2030년이 되면 연중 통과가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군사적으로 보면, 원자력 잠수함밖에 통과할 수 없었던 곳에, 다른 무기를 배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극권의 대부분은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으며, 반대편 극에는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노르웨이, 그린란드(덴마크령), 아이슬란드와 같은 유럽 국가들이 있다. 이들은 NATO 회원국이다.
 

중국은 북극권에는 접하고 있지 않지만 여기에 지금 중국 자본이 점점 들어가고 있다. 군사적 변화와 함께 경제적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북항로가 연중 지나갈 수 있게 되면 인도양을 돌고 있는 남항로에 비해 중국에서 유럽까지의 거리는 3분의 2로 단축된다. 남항로는 미국의 간섭을 받지만, 북항로는 러시아의 간섭밖에 받지 않는다. 자유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과 함께 20년 이상 전부터 여기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 그 때문에 초조해진 트럼프가 '그린랜드를 사겠다'고 발설해서 거센 반발을 받았다.

 지난 12월, 나는 노르웨이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노르웨이는 NATO 창립 이래 멤버로, 현 NATO 사무총장은 노르웨이 전 총리다. 친미적일 뿐만 아니라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냉전시대에는 NATO 회원국 중 유일하게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나라였다.

 지난해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경을 따라 군대를 집결하기 시작했고, 노르웨이 연구자들은 “분명히 전쟁으로 이어진다”며 절박하게 이 사태를 받아들였다. 거기서 나는 오슬로의 국제평화연구소에 초대되어 여러 대학에서 세미나와 견학을 했다. 거기에는 러시아 전문가도 동행했다.

 일본인은 '완충국가'라는 말을 쓰면 싫어하지만 일본은 전형적인 완충국가다. 러시아와 접하는 노르웨이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2014년까지는 NATO군도, 동맹국인 미군도 국내에 상주시키지 않았다.

 완충 국가란 적대하는 대국의 틈에 위치해 무력 충돌을 막는 쿠션이 되는 나라다. 적대하는 어떤 세력도 이 쿠션을 잃으면 본국에 위험이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침략당할 경우 실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보통 국가보다 훨씬 크다. 즉 완충국가는 가장 먼저 전쟁터가 된다. 그 완충 국가 속에서 특히 국경에 접하고 있는 장소를 국경지대라고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북부 지역, 일본에서는 오키나와다.

 러시아의 완충 국가는 노르웨이, 핀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 여러 국가가 있다. NATO는 동방 확대와 함께 이들 나라들의 인계철선(tripwire, 건드리면 침입한 사실을 알리거나 폭탄이 터지도록 만든 장치)화를 진행했다. 러시아가 공격해 오면, 여기서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미사일이나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크림반도 병합이 일어난 2014년 이후에 미국의 인계철선이 되었지만, 일본은 70년 이상 전부터 미국의 인계철선이었다.

 여기서 우리 연구자들은 먼저 실제로 러시아군이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비록 푸틴이 침공하더라도 인구 4000만명의 우크라이나 전역을 평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만명의 병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육군의 정규병은 30만~ 40만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시리아 등 곳곳에 전쟁터가 있다.

 2017년, 나는 서울에서 열린 PACC(태평양지역 육군참모총장회의)에 초청받았다. 트럼프가 SNS에서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할 것'임을 시사하는 메시지를 게시했기 때문에 모두가 떨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책상 아래에 기어들어가는 훈련을 하고 있던 시기다. 미 중앙 육군 총사령부(하와이)가 동맹국 32개국의 육군 참모총장을 모아 2년마다 하는 회의에서 미 육군이 나를 초대해 '아프가니스탄의 실패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 것이다. 대통령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하였지만 실제로 인구 2500만명의 북한을 점령 통치할 수 있는지 회의에서 시뮬레이션해봤더니 60만~70만명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결론은 "감당할 수 없다" 로 마무리되었다.

 참수작전으로 김정은의 목이 날라가면 그 후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본을 점령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천황을 죽이지 않고 일본군을 무장 해제했기 때문이다. 국가 원수의 목을 친 전쟁은 카다피, 후세인, 탈레반… 모두 실패했다. 그 후부터는 늪이 된다. 32개국(NATO 회원국수)에서 70만명을 모아 보낼 수도 없고 러시아 단독으로 우크라이나를 평정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의 패배를 실시간으로 목격했던 푸틴이 이와 똑같은 무모한 짓을 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국민총동원으로 100만 군대를 보낼 가능성에 대해 코웃음을 쳤다. 푸틴이 두려워하는 것은 러시아 국민이기 때문에 국내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징병제를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당초 동쪽에서 침공해 오데사를 포함한 남동부를 연결하는 회랑을 만들고 우크라이나를 내륙국으로 만들면서 흑해의 패권을 잡는 것이 주목적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나토의 무기지원으로 남부의 회랑화는 끝닜지만 동부는 2월 24일 이전보다 더욱 두꺼운 회랑이 되었다. 일시적으로 키예프를 노린 것은 그동안 동부 전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양동작전이었다. 만약 키예프를 점령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국을 지배해야 하고, 전쟁에서 부서진 것도 부흥해야 한다. 푸틴이 그런 돈을 쓸 이유가 없다. 나토와 미국 사이의 신뢰 구축은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 무너졌다. 나토와 미국의 신뢰 양성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중간선거를 안고 있는 바이든은 새로운 파병을 절대로 할 수 없다. 푸틴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에 대한 안전보장을 젤렌스키는 요구하고 있으며, 정전이 된다면 그것이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서 있지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세계 표준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미일 지위 협정

 지금 자민당은 "일본도 NATO에 가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은 벌써 일본은 NATO의 준가맹국이며, 공동으로 군사 연습을 하고, 자위대가 사용하는 탄도 몇 년 전부터 NATO 사양이다. 최근에는 기시다 총리가 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은 회원국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의 보수도 리버럴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NATO에 가맹한다는 것은 NATO 지위협정에 비준한다는 것이다.

 원래 지위협정이란, 주둔군과 현지 ​​정부의 주권의 관계를 정하는 것이다. 보통 국내에 외국군이 있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사태인데 군이 주둔하면 반드시 사고를 일으킨다. 그것도 중화기나 비행기까지 다루기 때문에 민간 사고와는 다르다.

 주둔군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s=SOFA 외국이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내면서 군대가 파견된 국가와 맺는 협정)은, 전시, 준전시, 평화시라고 하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한다[그림 참조]. 전시에는 주둔군의 주권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시간이 흘러 평화시가 되면 현지법의 영향력이 커진다. 주권이 회복하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시와의 관계성이 변하지 않는 지위협정이 있다. 미일지위협정이다.

 외국군의 주둔을 인정한다는 것은 특정 사건에 대한 주권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 범위를 주둔군과 합의하는 것이 지위협정인데, 그 내용은 크게 3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느 법률로 심판하는가 하는 재판권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환경권이다. 군용차의 배기가스는 일반차량과 비교할 수 없고, 위험물도 취급하기 때문에 환경기준이 문제가 된다. 마지막 하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기지, 영공 및 해역에 대한 관리권 문제이다. 미군은, 단지 방을 빌리고 있을 뿐인 세입자일까, 아니면 , 미군 기지나 훈련장이 그들의 것일까. 주둔군의 자유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낮아지는 것이 지위협정의 운명이다.

 미국이 맺고 있는 지위협정은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시의 지위 협정. 독일, 이탈리아, NATO, 필리핀, 일본 등에서는 평화시의 지위협정이다. 준전시 지위협정에서 전형적인 예는 휴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다.

 평화시의 지위협정에서 미국의 외교방침으로 세계표준이 되고 있는 것은 '호혜성'이라는 개념이다. 그것은 외교 특권과 같은 것이다. 외교관에게는 특권이 있지만 동일한 특권을 서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불평등이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군이 주둔하는 독일과의 지위협정은 독일군이 미국에 주둔했을 때도 같은 권리가 부여된다. 즉, 미국이 자국 내에서 독일군에게 허가하고 싶지 않은 것은 독일에서도 할 수 없다. 이것을 "자유 없는 주둔"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붉은 기둥이 미군이 관리하는 요코타 공역. 위치에 따라 높이가 다르다. 한국 중국 등에서 하네다공항으로 들어가는 민간 비행기는 요코타 공역을 피해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수도권에서 주변의 현까지 요코타공역(橫田空域미군이 점유한 공역)이 거대하게 걸쳐 있는데, 이러한 공역은 독일에도, 이탈리아에도,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라크에도 없다. 요코타공역에 대해 외국 고위 인사들은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일본은 주권국가인가?"라며 믿지 않는다. 미군이 철수한 다음날에 패배할 정도로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라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시 지위협정에서도 '준호혜성'이 있다. 예를 들어 재판권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사가 사고를 일으켜 미군 병사가 본국으로 송환되어 미국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는다. 양국 모두 그 재판에 입회할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 투명성 문제다. 그러나 동맹국 일본에는 그런 권리조차 없다. 요구도 하지 않는다.

자동으로 참전되는 일본은 오키나와를 비무장화해야

 남북한의 휴전선인 38도선에 서 있는 비석에는 참전국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일본은 없다. 주한미군은 유엔군이지만, 진짜 유엔군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이들은 북한과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데, 현대에서 유엔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중국과 유엔군이 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유엔군은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의 관리도 받지 않는다. 1950년 소련이 결석한 유엔 총회에서 유엔군으로 인정한 것으로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그래도 미국은 스스로 유엔군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동서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왜 이것이 일본에 있어서 중요한가 하면, 일찌기 트럼프가 북미전쟁 개전을 시사했을 때, 호주의 군용기 C130이 일본 정부에 통고도 없이 조용히 카데나 기지에 착륙했다. 그 후 나는 요코타에 갔다.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하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왜 일본 정부에 통고의무가 없는가 하면, 이 '냉전의 유물'이라는 지위협정을 아직도 맺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한데, 이 지위협정과 미일지위협정이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코타 미군기지(도쿄도)


 북한과 유엔군 지위협정에 따라 후방사령부는 요코다공군기지에 있으며, 가데나 공군기지를 포함한 9개의 재일미군기지를 후방기지로 지정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한 경우에는 모든 재일미군기지가 유엔군의 후방지원기지가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 조건은 미일 지위협정과 정확히 동일하다. 이게 무슨 말이야?

 주한미군은 어디까지나 유엔군이므로 단독으로 전쟁은 할 수 없다.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 동의의 범위에 일본은 들어 있지 않은데, 그들이 전쟁을 시작하면 일본이 후방지원기지가 되는 관계다. 이는 국제법상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일본은 자동으로 교전국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한다면 자신의 의지로 해야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자위대를 파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법상 동맹국이 시작한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기지를 만들어서도 안되고, 그들을 통과시켜서도 안된다. 돈을 줘서도 안된다. 하지만 일본은 반대로 이 전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국의 외교 방침으로서 세계 표준이 되고 있는 '호혜성'도 '자유없는 주둔'도 없다. 먼저 전쟁터가 되는 완충국가인데 다른 나라의 행동에 의해 자동적으로 교전국이 되는 것이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스웨덴, 발트 3국은 완충 국가로서의 주권이 있어 미국에 자유를 주지 않는다. 비록 NATO 회원국이 되더라도 외국군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은 완충국가가 아니라 '완충재' 국가라고 부른다.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인권대국으로서 세계의 상징적 존재다. 그러니까 러시아가 일으키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재빨리 소리를 내며 규탄한다. 하지만 군사적으로는 자극하지 않는다. 러시아에 굴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세계에 공헌한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완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완충국가로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일본은 러시아, 중국, 북한과 마주하고 있으며 노르웨이보다 취약하다. 완충국가로서의 자각이 있다면, 접경지대를 군사화하기보다는 노르웨이가 2014년까지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온 실례를 배워야 한다. 미국의 동맹국인 아이슬란드도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금 "군사비를 늘려라"라고 해서 자위대까지 미야코 섬과 오키나와 본섬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정말로 국방의 선택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누가 아무리 반대한다 하더라도 오키나와의 완전 비무장화를 지지한다. 미군뿐만 아니라 자위대도 마찬가지다. 일본 국방을 위해. 우리는 홋카이도에 미군기지 건설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배워야 하는 일본의 안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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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온 고재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1.01 원문 : https://www.chosyu-journal.jp/kokusai/2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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