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그가 42세가 되던 해, 두 번째의 심장발작 이후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된다.
의사의 사형선고에 불복하여 레스터는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하고
나는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어요. 언제 쓰러져 죽을지 모르니까 한 발짝도 걸으려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죠. 평생
나는 삶이 더 이상 가치가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난 결단을 내리게 되었죠. ‘해답을 얻느냐, 아니면 세상을 뜨느냐
죽기가 너무 싫어서 나는 극도로 처절하게 물음을 던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난 행복에 관련된 가장 가까운 것이 사랑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지난날의 사랑의 순간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지
그런데 그 행복은 바로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이 가져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 행복의 원인은 주변 경치의 아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한 나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그녀가 나에게 자신
나는 나의 행복이 나의 사랑과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내가 사랑을 더 많이 하면 더 행복해지겠구나!’ 이것
나에게 사랑이 없었던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보며,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랬던 마음 대신, 그들을 사랑하는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에 따라 정해진다는 이 통찰은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통찰로 인해 나는 해방감을 맛보기
나는 더 큰 자유를 느꼈습니다. 그 해방감 덕분에 쉽게 마음을 집중시킬 수 있었죠. 그래서 나의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보기
그러다 갑자기 어떤 영상이 마음 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건 놀이공원에 있는 범퍼카들이 계속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천장에 있는 전기에너지원은 나와 모든 사람에게 막대기로 연결되어 에너지를 공급하는 보편적 지성과 우주 에너지를
나는 내가 원한다면 보편적 지성을 더더욱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나는 생각과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의 관
모든 사건이 그 일이 있기 전에 생각된 것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생각만 잘 붙잡는다면 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무엇보다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세상이 나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생각,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세상의 결과가 아니
나의 탐구가 시작될 무렵, 나의 병은 너무나 위중해서 무덤 속에 이미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나는 점점 더 큰 자유를 누렸습니다. 일을 해야한다, 여자를 얻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충동에서 해방되었
게다가, 내가 경험하게 된 새로운 행복은 너무나 컸습니다. 전에는 있으리라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기쁨을 경험했어
나는 내가 가장 원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내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친구가 결혼하여 서로 즐거워하는 것을 상상
나중에는 나에게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이것을 시험해보았습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 때 의식적으로 그들에
나는 행복의 끝까지 도달하기까지는 사랑 키우기를 멈추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갔
나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기도 했어요. 너무나 큰 기쁨과 황홀함에 가득 차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어요. 정말
지성과 에너지의 근원에 대해 깊이 명상하면서, 그것은 무한한 양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을 단지 모든
내가 할 일은 오로지 그 댐의 통나무를 느슨하게 열어주는 것뿐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했던 일이지요. 마치 댐에서 통나무
이것을 알고 나자, 나의 마음 바로 뒤편에 있던 힘이, 전에는 한번도 흐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흘러들기 시작했지요. 나의 본
이른 아침 뉴욕의 거리를 쉬지 않고 걷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주 빠른 속도로 걷기만 했어요. 그렇게 걷는 것 외에는 아무것
나는 이 모든 에너지와 지성의 근원이 근본적으로 조화로운 것이고, 그 조화야말로 우주의 법칙이라는 걸 알았습
나는 절대적인 물질주의자였죠. 만질 수 있는 것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었어요. 나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콘크리트처럼 단단
그러자, 나의 몸이 흔들렸습니다. 아주 심하게 말입니다. 여러 날을 흔들리기만 했죠. 꼭 신경쇠약에 걸린 늙은이처럼 몸을
그런 뒤에는 몇 달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되는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진정으로 견고한 것은 물질계도 아니
그렇게 알아차리자, 나는 존재 그 자체가 되어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제한적인 육체가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했었
나는 몸과의 동일시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나의 존재는 즉 모든 존재라는 걸 알게되었어요. 그 전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이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모든 존재, 모든 사람, 심지어 이 우주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게 했어요. 그러고 나면 분
사실은, 유일한 실재는 존재뿐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진실하고 변함 없는 무엇입니다. 이 깨달음 이전과 이후
뉴욕 도심을 차를 몰고 다닐 때,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내가 주차를 하려하면, 두 세 명의 사람들이 멈추
가게에 들어갈 때에도, 판매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행복한 마음으로 나에게로 와서 도와줍니다. 식당에서 내가 주문을 해놓
조화 속에 있는 것은 기분 좋고 유쾌한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을 도우러 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신
우리가 조화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이 극대화되어, 극도의 강렬함으로 모두를 사랑하게 되며, 그로
[출처] ♣ 100프로 나의 책임, 레스터 레븐슨 이야기 (펌) (비욘드 더 시크릿 Beyond the secret) |작성자 화안애어
사랑을 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세도나 명상센터는 상당히 유명하다. 특히 그 형성 이야기는 매우 많은 것을 암시하므로 여기에
소개한다.
창시자의 이름은 레스터 레븐슨. 1994년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물리학자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뉴욕에서
살았는데, 1952년 42세의 어느 날 갑자기 두 번째의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갔으며, 의사로부터 더 이상 병
원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집에 가서 요양을 하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병이 깊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생명이라는 말이었다.
행복은 내면에 충일한 사랑의 감정
있으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면서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의 몸과 감정
과 정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고요히 앉아서 그 동안 삶의 본질에 대해서 궁금했던 '삶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머리 속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언제 행복을 느꼈는가?' 라는 질문에 '사랑 받을 때'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것은 진실이 아님을 알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 친구, 연인이 있지만 늘 행복한 것
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공통점을 찾아본 결과 사랑 받을 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과거에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순간들을 지금이라도 다시 행복한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자기의
내면에서 불행했던 순간들을 행복한 순간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증오의 감정을 사랑이 감정으로 바꾸다
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위험을 떠맡기 싫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자기를 퇴원시킨 사람이지만, 그 의사도 환자에
게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의사를 향한 증오의 감정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계속 분노의 감정을 삭이고 삭이자,
마지막에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녹아 없어지며, 그 의사를 사랑의 마음으로 떠올리게 되었고(용서), 스스로 행복하
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그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그는 세 달 동안 매일 의자에 앉아 과거의 모든 사건들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부정적인 감정(미움)
들을 녹이고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때까지(용서) 집중했다. 가슴속에 사랑의 감정이 솟구치자 그의 몸과
마음에 기쁨의 에너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났다. 가장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감정의 근원임을 자각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활짝 열자 그 두려움을 활활 태워 없앨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놓음으로써, 생사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까지
놓음으로써, 죽음을 넘어설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자 몸은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고,
스스로 건강하게 치유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세 달이 다 되어 갈 무렵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고, 기쁨을 넘어 고요한 평화의 상태까지 도달했다. 그는 지극한 평화 속에서 자신에게는 몸과 마음
을 넘어선 영원한 존재, 본성(Beingness)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두려움도 감추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야 태워진다”
그는 자신이 느끼고 안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근처의 작은 명상그룹을 찾아가 강연을 했고, 그의
놀라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더니 나중에는 수백 명, 수천 명이 그의 강연을 들으러 찾아오곤 했다.
1958년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애고로 이사
가던 길에 애리조나 주를 지나며 '세도나'라는 도로 표지판을 보자 갑자기 그의 내면에서 "저 곳으로 가라!"는 소리
가 들려왔다. 내면의 소리에 이끌려 세도나로 향한 그는 세도나의 기운과 풍광에 크게 매료되었고, 인적이 드물고
사방이 바위와 수목으로 둘러싸여 평화로운 이 땅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 정착하여 큰 계획을 세우고 명상센터를 지었으며, 자신이 깨달은 과정을 '세도나 메소드
Sedona Method'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렸다. 그 명상법은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보급되었다. 뉴욕에서
그를 따르던 이들이 세도나에 다녀가기도 하고, 몇몇은 아예 세도나로 이주하여 하나의 그룹을 형성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의식혁명power vs force』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다.
42세에 곧 죽게 될 것이라던 레스터 레븐슨은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세도나 메소드 명상법의 “미움의 감정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꾸는” 방법은 기독교 계통의 많은 목자들
도 강조하고 있으며, 아직 확고하게 자리를 잡진 못했지만 최근의 의료기관에서 암을 비롯한 난치병의 치료방법
으로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