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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루치아의 칼럼

[스크랩] 밤톨이

작성자가온|작성시간10.02.01|조회수102 목록 댓글 3

 

 

 이녀석, 일어나야 해. 기운내.

주님, 녀석에게 생명의 힘을 주세요.

사지를 늘어뜨린 채 제 무릎 위에 누워 있는 녀석의 몸을 조심조심 어루만지며

나즈막이 읖조립니다.

 

 

밤톨이는 숙이네 아롱이가 첫배로 나은 네 마리 새끼 중 한 마리입니다.

 

오후 나절, 제설용 모래를 가지러 트럭 몰고 나간 라이몬도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전화라도 해볼 양으로

숙이네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물론 숙이는 단식하러 검마산에 갔기에 집에 없고

(지난 여름에 살림집을 손봐 민박 겸 식당으로 오픈했기에 자주 이웃 분들이 드나들어

집에서 3주라는 긴 단식에 집중하기엔 아무래도 어렵다고 판단한거죠.)

동철씨는 볼일보러 안동 나가 없고

집엔 작은 아버지 혼자 계셨습니다.

(대구 사시는 동철씨 작은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하신 곧은 어른입니다.

최근 부인과 사별한 후 적적할 때마다 조카인 동철씨 집에 놀러 오십니다.

당신 고향이기도 하고 조카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카 며느리인 숙이가

털털하니 편안하게 해드리기에 자주 오실 수 있지요.

이번에도 1 1일이 당신 생일인 데다 신정 연휴라고 세상이 떠들썩한데

집에 혼자 계시기엔 너무 쓸쓸해 홀로 나선 여행 끝에

조카집으로 오신 것이에요.)

 

거실 화장실 문앞에 새끼 밤톨이가 몸을 달달 떨면서 호흡도 가쁘게 누워 있지 않겠어요?

작은 아버지는 걱정스런 얼굴로

아침에 나가보니 이녀석이 저만치 눈속에서 몸을 떨며 꼼짝 못하고 있는거야.

지 에미랑 다른 새끼들은 개집 근처에 모여있는데 말이야.

그대로 두면 도저히 안되겠기에 데리고 들어왔지.

야쿠르트도 주고 멸치랑 라면을 줘도 전혀 입에 대질 않네.

이렇게 계속 떨고만 있어.

 

아마 이녀석이 그 밤톨이일 거에요.

엊그제 섣달 그믐날 새끼 두 마리가 없어져서 사방 찾고 난리였거든요.

혹시 새끼냄새를 맡아내지 않을까 하여 지 에미를 풀어 찾게 해도 찾질 못하는 거에요.

늦은 밤 날은 추운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다들 몹시 심란했었어요.

개장수가 집어갔나?

이웃 사람이 집어갔나?

야생동물이나 다른 큰개한테 해꼬지 당했나?

밤이 깊어 찾기를 포기하고 아무쪼록 어디서든 살아만 있기를 바랬죠.

이튿날 정월 초하루였어요.

낮에 근석씨네서 떡만두국 먹자고 불러서 숙이네랑 막 다리를 건너가는데

강아지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다리 아래 그랑가 얼음 옆 낙엽더미 속에서 두 놈이 저희들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거에요.

저?따!!!

저희들은 냅다 그랑가로 뛰었어요.

 

 

 

바들바들 떠는 두 놈을 동철씨와 제가 조심조심 안고 올라왔습니다.

동철씨는 알록이를 저는 밤톨이를

품에 안겨 달달 떨며 우는 밤톨이를 계속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이젠 괜찮아, 걱정하지 마, 에미한테 가자 ---

 

 

아마 그날밤 에미 잃고 한데서 밤을 새면서 축난 몸이 채 회복되지 못하다가

어제의 폭설과 추위로 이놈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무릎 위에 놓고 한참을 쓰다듬으며 지켜보고 있는데

점점 이녀석의 사지가 늘어지는 거에요.

침도 지일 흘리면서요.

순간 끔찍한 생각이 들어 떨리는 손으로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제 품에서 죽음을 느끼는 게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근데 이녀석이 발딱 몸을 일으키는 거에요.

그리고선 몸을 크게 털더니 라면쪼가리도 먹고 멸치도 먹고 야쿠르트도 쩝쩝 먹는 거에요.

, 밤톨아, 너 살아난 거야? 그래, 그래야지!!! 주님, 감사합니다!!!

녀석은 이제 캥캥 짓기도 하다가 오줌도 싸다가 똥도 싸다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봄되면 제가 키울려구요

이녀석 밤톨이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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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신암에서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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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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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산적(주정필) | 작성시간 10.02.02 태어난지 6~7주가 되면 아주 치명적인 '파보' 바이러스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피설사를 하게 되면 이미 때는 늦은거랍니다. 그러니 태어난 날짜를 여쭈어 보고 잘 계산 하셔서 가축병원에서 예방 백신을 사다 피하 접종하면 됩니다. 그리고 백신 접종후 기생충약을 먹여야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 작성자가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2.02 그렇군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주신 분이 없었는데.. 이놈 밤톨이의 집을 곧 지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데려올 수 있거든요. 주인도 얼른 데려가라고 재촉하고 있구요.
  • 작성자푸른잎 | 작성시간 10.02.02 천만 다행이네요.. 넘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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