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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Cancer

암치료법은 왜 개발되지 않을까?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15.12.09|조회수5,130 목록 댓글 0

한국인의 사망원인이 1983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32년째 암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암 치료 신약의 소식이 줄을 잇지만,

암 사망률은 떨어질 줄 모른다.

이는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71년 닉슨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수천억 달러를 암 연구에 퍼부었지만,

암과의 전쟁은 실패(2008년 뉴스위크)라고 얘기되고 있다.


통계에서 보듯이 미국인의 암사망율은 지난 50여년 동안 변화가 없다.


암은 제약회사에 어마어마한 이익을 안겨주어

(미국 NBC News에 의하면 연간 암치료에 드는 비용이

1천억 달러라고 한다)

암산업(cancer industry)이라는 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암산업의 실상은

메모리얼 슬로안케터링 암센터라는

세계 제일의 암연구기관에서 홍보과장으로 일했던

랄프 모스의 내부고발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구조에서 현대의학은 과연 암을 고칠 수나 있을까?


여기 랄프 모스가 직접 들려주는, 암산업의 실상을 알아보자.

 

 

암치료법은 왜 개발되지 않을까?
(
원제: 랄프 모스 스토리)

 

http://itsjustmovies.com/wp-content/uploads/2014/08/ralph-moss.jpg

1974년에 나는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 병원은 세계 으뜸의 암치료 병원이다. 이상주의자였고 진지한 젊은 과학저술가였던 나는, 슬로안 케터링에서 일하면서 닉슨 대통령의 암과의 전쟁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영웅은 주로 과학자들이었다. 슬로안 케터링에서의 일로 꿈이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나는 마침내 암을 굴복시키고 승리하는 팀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 약칭 MSKCC라고 불린다.1894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最高), 최대(最大)의 종합 암센터. 미국 베스트 병원 평가에서 지난 26년간 지금까지 암부문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암과의 전쟁(war on cancer):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71년 ‘국가 암 법’(National Cancer Act)에 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국립 암연구소 설립 등 암 연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미국독립 200주년이 되는 1976년까지 암을 퇴치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지금까지 5000억 달러(55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였으나 실패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3년만에 병원의 홍보과장(Assistant Director of Public Affairs at the Hospital)으로 승진했다. 당시 나는 서른넷이었다. 고교 시절의 여친과 결혼하여 아홉살과 일곱살 난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우린 집을 사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저축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막대한 봉급 인상과 더불어 상사들의 적극적인 격려를 받으며 진급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뻤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뉴욕대 수업료까지 특별수당에 포함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들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우리 모두는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병원에서의 밝은 미래를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곧 내 인생의 방향을 영원히 바꾸게 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홍보과장으로서의 내가 하는 중요한 일은 암에 관한 뉴스를 언론보도자료로 만들고 병원 내부의 뉴스레터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한 암 문제에 관해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들을 다루었다.

병원의 어떤 저명한 과학자와 뉴스레터 기사를 쓰기 위한 인터뷰를 할 때도 나는 평소 하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과학자는 가네마츄 수지우라 박사였는데 아미그달린(레트릴이라고도 불린다)이라는 천연물질이 쥐의 종양을 억제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반복적으로 얻었다고 하였다. 흥분한(나이브하게도) 나는, 수지우라 박사의 실험결과에서 발견한 내용을 홍보국장과 다른 상관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기사 작성 계획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일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가네마츄 수지우라(Kanematsu Sugiura):  메모리얼 슬로안케터링 암센터의 선구적인 암 연구가. 죽기 전까지 250편 이상의 논문을 작성하였다. 생전에 수많은 상을 받았던 그는 1962년에 은퇴했다. 레트릴에 대한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미그달린 : 비타민 B17이라고도 불린다. 살구씨나 복숭아씨, 사과, 포도, 자두의 씨앗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레트릴(Laetril): '아미그달린'이라고 불리는 비타민B17을 정맥주사용으로 결정화시킨 것이다. 암 치료 효과가 알려지면서 대체의학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림은 레트릴의 분자식 구조.

 

상관들은 기사 작업을 당장 중단하라면서 그에 대한 작업을 다시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였다. 왜죠? 그러자 그들은 수지우라 박사의 작업이 타당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눈으로 연구 결과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수지우라 박사가 진정한 과학자이고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관들은,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거짓말을 하란다. 내가 작성하려고 했던 이야기 대신에 아미그달린 연구는 모두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으며 아미그달린이란 물질은 암 치료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하는 기사와 보도자료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항의했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려고도 애썼다. 그러나 소 귀에 경읽기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 기분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결코 잊을 수 없다. 내 머리는 강한 감정들이 뒤죽박죽되어 어지러웠다. 혼돈과 충격, 낙담, 내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모든 감정 뒤로 왜 이러한 은폐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었다. 나는 아내와 부모님 (당연히 깜짝 놀라셨다)과 오랜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아미그달린 보도자료 작성을 늦추었다. 그 동안에 시간을 갖고 전체적인 것을 차근차근히 들여다 보았다. 계획을 전부 내려 놓으니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행복한 듯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덜 논쟁적인 프로젝트들로 바빴다.



 


 

그래서 다음 몇 달 동안에 나는, 결코 단념할 수 없었던 커다란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조사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해 주고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들은 왜 암 연구의 긍정적인 결과를 억누르려고 하는 걸까? 너무나 흥미진진하면서도 조마조마한 사실들을 밝혀낼수록 나의 파일들은 두꺼워졌다. 나는 이전에는 암의 정치학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제 나는 내가 배웠던 조각들을 함께 맞추기 시작했다.

 


 

슬로안케터링 암센터의 이사들은 석유화학 및 기타 오염 산업의 저명 투자자들이다. 달리 말하면 지상에서 가장 나쁜 발암물질에 투자함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에 의해 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항암제를 생산하는 주요 제약회사의 경영자들이 병원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항암요법을 권장하고 자연요법을 폄훼함으로써 분명히 이익을 얻는다.

세계의 선도적인 항암제 생산회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Bristol-Myers Squibb) 이사장이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암치료센터 이사회의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병원에서 가장 힘이 센 기구인 정책위원회 위원 9명 중 7명이 제약회사와 연계되어 있다.

병원 자체가 바로 이 제약회사들의 주식에 투자를 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큰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와 RJR 나비스코 이사들이 이사회 명예직을 차지하고 있다.

● 6명의 이사들은 또한 뉴욕타임즈, CBS, 워너 커뮤니케이션즈, 리더스 다이제스트, 그리고 그외 거대 언론의 이사들이기도 하다.



항암제로부터 얻는 이익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고 신약이 나올 때마다 암치료에 획기적이라며 휘황찬란하게 언론들이 써대는 것이 놀랍지 않다. 나는 나의 파일링 캐비닛에 모든 노트를 간직했다. 이 노트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단지 스스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한편, 레트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가로질러 멕시코의 병원에 가서 그 물건을 구했다. 슬로안 케터링 병원은 레트릴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전화로 내 비서는 바빴다. 나는 다시, 아미그달린 연구 결과가 완전히 부정적으로 나왔다는 뉴스를 내보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집에서 나는 가족 회의를 하였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나는 병원의 뜻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77년 봄에 나는 기자회견에서 벌떡 일어나서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가 아미그달린의 긍정적인 결과를 은폐하려 한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마치 아주 높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짓이었으나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다음날 병원은 뉴욕타임즈에 밝힌 대로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잘못을 이유로 나를 해고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미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이 해고 사유였다.  

물건을 챙기기 위해 사무실에 가보니 내 파일은 반출금지되어 있었다. 두 명의 병원 경비가 현관에서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현명한 아내가 내 연구 노트를 모두 완벽하게 복사해서 안전한 장소에 따로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이 노트들이 나의 첫 저서, “암 산업” (The Cancer Industry)이 되었다. 이 책은 아직도 판매되고 있고(업데이트된 버전으로) 서점에서 구입 가능하다.


 


랄프 모스의 저서 암산업

 

기자들이 꽉 차 있던 회견장에서, 벌떡 일어나 진실을 말했던 드라마틱했던 날. 이 날이 내가 결코 예견치 못했던 여정을 시작한 첫날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이 사명을 띠고 항해를 하고 있다. 암환자들이 가장 좋은 암 치료법에 대한 진실을 발견토록 돕는 사명을.

그렇다. 우리는 몇 년 후가 될 때까지 집을 살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장학금과 융자로 대학을 갔다. 아내는 우리가 함께 지내기 위해 풀타임잡을 해야 했다. 그러나 회고해 보면암 산업에 근무하면서 겪은 내부자로서의 경험은 내게 일어난 일 중에서 최상의 일이었다. 나의 가치관은 시험을 받았고 나는 진실로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택해야 했다. 슬로안 케터링에서의 이 어려운 경험 덕분에 나는 진정으로 나의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의미있는 방향을 발견한 것이었다. 슬로안 케터링의 경력 사다리를 오르면서 그 과정 중에 내 영혼을 잃지 않고.

그는 암환자들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MOSS REPORT를 발행하고 있다. 사진은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cancerdecisions.com)

 

랄프 모스의 내부 고발 이야기는 작년, “세컨드 오피니언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다.

다음은 영화 세컨드 오피니언의 소개문이다

미국의 암과의 전쟁은 197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안케트링 센터는 임무를 이끌고 가는 연구기관이었다. 새로 발간된 서적과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암센터는 미국민들이 항상 신뢰할 있는 기관은 아니었다. 당시 대체요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레트릴요법에 있어서 우리의 다음 게스트는 암센터가 레트릴의 효능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자신들의 긍정적인 실험 결과를 숨기고 있다고 하였다. 은폐하려고 하였던 것인가? 그렇다면 ? 우리의 게스트는 랄프 모스이다. 지난 40 이상 과학 저술가로 일해왔다. 그는 10권의 책을 썼고 암에 관한 3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새로 펴낸 책은 치료된 결과들:슬로안케터링 연구소의 레트릴 은폐이다. 영화제작자 에릭 메롤라가 만든 세컨드 오피니언 책에 근거하여 만든 다큐멘타리 영화다






글쓴이: 랄프 모스


원제 : Ralph Moss Story


번역 : 고재섭


출처 : http://www.whale.to/cancer/ralph_moss_story.html





의학 저술가 랄프 모스는 12권의 책을 펴내고 암 연구 및 치료에 관한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스탠포드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과학 저술가인 그는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안케틀링 암센터 홍보과장으로 일했다.

지난 40년 동안 모스는 독자적으로 암치료에 관한 서양의학 및 대체의학의 주장들을 평가해왔다. 모스 박사는 현재 모스 리포트라는, 25가지의 가장 흔한 암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펴내고 있다. 암에 관한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있다.

그는 대영백과사전에 처음으로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글을 썼으며 법의학 교과서인 법정의학에 대체의학 암치료에 관한 글을 썼다. 그의 글은 미국의학협회지, 랜싯, 미국국립암연구소저널, 임상종양학저널 등 저명한 학술지에 종종 실린다.

모스박사는 연방정부의 대체의학국 설립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미국국립보건원의 암에 관한 대체의학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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