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작성자막달레나|작성시간26.06.11|조회수29 목록 댓글 0

✠ 마태오복음 10,7-13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세상으로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복음 선포는 무엇보다 먼저 ‘주는 일’이 아니라 ‘받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상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고, 용서를 받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자신들이 받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먼저 묻고 계십니다.
"너는 나에게서 무엇을 받았느냐?"

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쉽게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자비를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이를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내가 받은 용서를 기억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거저 받은 사람만이 거저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매우 이상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이 말씀은 가난 자체를 미화하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 선포자가 의지해야 할 것이 돈이나 준비물이나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돌보심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준비해 놓아야 안심합니다.
통장 잔고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사람들의 인정이 있어야 든든하며, 내 실력이 있어야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따로 주십니다. 그것은 돈도 아니고 지팡이도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빈손으로 길을 떠나게 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얼마나 충실하게 당신 일을 돌보시는지 직접 체험하게 하십니다.
신앙은 결국 무엇을 많이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신뢰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집에 들어가면 먼저 평화를 빌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가야 할 첫 번째 선물은 지식도 아니고 권위도 아니며 논쟁도 아닙니다.
평화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은 많지만,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평화의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가정 안에서도, 공동체 안에서도, 직장과 이웃 사이에서도,
누가 옳은지를 증명하는 사람보다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 평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부당할 때 발의 먼지를 털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상대방을 저주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까지 억지로 설득하려고 애쓰다가 마음에 분노와 상처를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결과는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우리는 맡겨진 사랑만 충실히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몫은 충실히 사랑하고, 평화를 전하고, 복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주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가진 것 없이 길을 떠났지만,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돈이 없었지만 복음이 있었고, 지팡이는 없었지만 주님의 권능이 있었으며, 든든한 보따리는 없었지만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주님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을 수 있다면, 그때 우리도 세상 한가운데서 평화를 전하는 참된 복음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천 사비나 수녀님)



6월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마태오 10,7-13

망해도 이득인 사랑 장사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박사는 그에게 찾아온 우울증 환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 주간만 나의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처방이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그걸 실천하면 됩니다.”

값비싼 약이나 까다로운 처방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찾아온 많은 환자들은 대부분 이 싱거운 처방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을 따른 사람에게는 당장 특효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남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했더니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사랑은 부메랑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주는 만큼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돌아올 것을 위해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부활이 없었으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기쁘려면 기쁘게 해 주어야하고 사랑받으려면 사랑해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랑도 원금이 보장되는 장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내가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이 그 평화를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 평화는 소진되지 않고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사랑은 준만큼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장사처럼 이익까지 얹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제자가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음식을 청했을 때 모욕 받고 매 맞으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랑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라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없는 것을 가지게 되니 항상 이익인 것입니다.

워런 버핏은 투자할 때 원금을 잃지 않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투기성 투자보다는 안전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10년은 가지고 있지 않을 주식은 구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갑자기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기다리다보면 꼭 오르고야마는 그런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이 그를 세계에서 가장 투자를 잘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랑도 반드시 이득을 내는 장사라고 믿으면 누가 사랑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투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어주십시오. 결코 손해 보는 일 없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를 받아들이면 나에겐 평화가 사라질까요? 배로 늘어납니다.
평화를 줄 줄 아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당신 평화로 더 채워주실 것이고 또한 나 때문에 평화를 얻은 사람이 또한 나에게 평화로 보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사랑의 투자법은 ‘선교’입니다.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성령께서는 내려오시면 우리를 선교의 길로 이끕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우리는 누구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로 파견 받습니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길이 그 기쁜 마음을 유지하고 커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100% 수익이 보장되는 가장 안전한 장사입니다.
그 보상은 영원한 사랑이고 영원한 행복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강론>

(2026. 6. 11. 목)(마태 10,7-13)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7-13)>

1) 여기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입니다.
이 말은,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믿고 회개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종말이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 중이고, 마지막 날이 오면 완성된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믿음입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는 것은, 단순하게 표현하면 ‘사랑 실천’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일입니다.>
복음은 ‘말’로도 선포되고 ‘사랑 실천’으로도 선포됩니다.
둘 중에 ‘사랑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은, “복음 선포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을 받은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 선포는(선교활동은) ‘돈벌이’를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 선포의 대가로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가 겪었던 일이 연상됩니다.

“시몬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면서, ‘저에게도 그런 권능을 주시어 제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사도 8,18-20)”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을 돈으로 사거나, 돈을 받고 파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큰 죄입니다.

2)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라는 말씀을 단순하게 줄이면, “빈손으로 떠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돌아올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와라.”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돈벌이’를 하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올 때에도 빈손으로 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1티모 6,7).” 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빈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지고 갈 것은 믿음과 사랑과 자비 등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은 당신의 일꾼을 당연히 먹이시는 분이니, 너희는 먹는 일을 걱정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라는 말씀은, “너희를 맞아들여서 숙식을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 줄 사람을 찾아다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더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옮겨 다니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주는 대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3)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 있는 ‘부자들에 관한 지침’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세에서 부자로 사는 이들에게는 오만해지지 말라고 지시하십시오.
또 안전하지 못한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지시하십시오.
좋은 일을 하고 선행으로 부유해지고,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자기 미래를 위하여 훌륭한 기초가 되는 보물을 쌓아, 참 생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1티모 6,17).”

신앙생활은 돈이 아니라 믿음으로 합니다.
복음 선포 활동도 돈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1-34).”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과 먹을 것이 있는데도 더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고민하는 사람을 구분해야 합니다.
정말로 굶주리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남겨 주신 숙제 같은 것입니다.
<굶주리는 처지가 아니고 더 좋은 것을 먹으려고 고민하고 집착하는 경우라면, 또 ‘믿음의 힘’은 안 믿고 ‘돈의 힘’만 믿는 경우라면,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6월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복음: 마태 10,7-13

바오로 사도의 오른팔 바르나바!


예루살렘에 본산을 두고 있었던 그리스도교 모공동체이자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최초로 정착되기 시작한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큰 관심, 즉 기도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교회는 신생 안티오키아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독 한 명을 임명했는데, 그가 곧 바르나바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으며, 바르나바는 별명입니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용기를 고취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그는 키프로스 출신이고, 직업은 레위계 성직자였습니다.

금수저 가문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금싸라기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수려한 용모에 탄탄한 학문, 깊은 신앙 등, 그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당시의 대세남이었습니다.

원래 바르나바는 열두 사도의 일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두 번 씩이나 사도라는 호칭으로 기록될 만큼, 교우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모두 팔아 사도들에게 갖다바쳤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그는 초대교회의 한 멤버로서 날개를 달고 열심히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큰 업적 중에 하나는 예루살렘 모 교회 공동체로부터 홀대받고 의기소침해 있었으며, 곤경 중에 처해 있던 바오로 사도를 찾아간 일입니다.
바르나바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르소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갔습니다.
바르나바는 긴장 관계에 놓여있던 예루살렘 모교회 공동체와 바오로 사도 사이를 부드럽게 중재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만 1년 동안 의기투합했습니다.
두분의 합심 결과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는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신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교회 공동체 조직도 안정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노력으로 첫 번 째 해외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고,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바오로라는 큰 인재를 알아봤고 지지한 것이 아닐까요?
바르나바 사도는 지금은 비록 곤경 중에 처해 있지만, 바오로야말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서 적임자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갔고, 용기를 불어넣고 격려했으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또한 바르나바 사도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유다 세계를 넘어 이방인 세계로 문호가 활짝 개방될 수 있도록 바오로 사도와 함께 완고했던 예루살렘 모 교회 공동체를 설득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가 이 모든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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